<font color="darkblue"> 시라크의 중국 방문에서 드러난 특별한 우정… 미국 눈총 받으며 “무기금수 조치 해제” 필요성 외쳐</font>
▣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10월8일부터 12일까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린 하노이를 거쳐, 무려 닷새 동안을 중국에 머물렀다. 시라크는 40억유로어치의 엄청난 비즈니스 계약 실적을 올렸다. 인권의 나라로 상징되는 프랑스가 그 반대편의 인권 후진국인 중국과 전례 없는 경제협력을 누리고 있는 풍경이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닷새 동안 머물며 40억유로어치 계약
파리 시민이라면 지난 1월 말 구정을 전후로 파리 시내에서 발생했던 교통 혼잡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 주석 후진타오의 파리 방문을 계기로 이뤄졌던 대대적인 환영 행렬과 빨간 꼬마전구로 장식된 에펠탑 등은 다소 호들갑스럽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게다가 올해는 프랑스가 주최하는 ‘중국 문화의 해’라서, 파리 거주 중국인들의 구정축하 퍼레이드가 샹젤리제에서 열렸다. 후진타오의 파리 방문이 그 시기에 맞춰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10월10일 베이징의 도심에서는 ‘프랑스 문화의 해’ 행사가 화려한 막을 올렸고, 이번엔 시라크가 중국을 방문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프랑스 음악가 장미셸 자르의 전자악기 연주 콘서트를 필두로 시작된 이 문화행사는 프랑스에서처럼 중국에서도 두 나라 사이의 돈독한 문화교류가 이뤄졌다.
지난해 이라크 전쟁 발발 이전에는 중국이 반전 노선에 가담해 프랑스와 대의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프랑스와 중국 사이의 정치적 우호 관계도 순풍에 돛을 단 듯하다. 사실 프랑스는 벌써 40년 전 다른 서방국들보다 훨씬 앞서 ‘중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문화 및 정치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지만 경제 관계는 기대에 못 미쳤다. 프랑스는 중국 해외시장의 1.4%(2003년)만 차지할 정도로 수입은 미미하지만, 반대로 중국의 11번째 수입국일 정도로 무역역조는 큰 편이다. 중국의 전략적이고 주요한 경제 파트너가 되는 것이 바로 이번 시라크의 중국 방문 목적이었다. 그는 50여명의 프랑스 기업 대표들을 대동했다.
프랑스는 지금 세계적인 불경기에다 유럽화와 세계화의 물결에 실려 국외로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문을 닫는 국내 기업이 속출하고 있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태다. 따라서 중국 투자가 모두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아무리 전망 있는 경제시장이긴 하지만, 중국 투자는 곧 프랑스의 기술과 자본, 노동의 이동을 뜻하므로 위험한 모험이 아니냐”는 질문에 시라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일 우리가 안 간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갈 테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 프랑스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수입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위생과 인권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시라크의 말처럼 내가 가지 않아도 남이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어물쩍거리다가는 남에게 다 뺏기고 마는 거대한 공장이자 경제시장이 바로 중국이다. 그래서 중국 내 외국기업 투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의 두 번째 큰 무역상대국이다. 그리고 중국에게는 일본에 이어, 유럽과 미국이 나란히 무역대상국 2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2003년 EU와 중국간 무역은 135조유로에 달해 최고 기록을 세웠다. 또 EU는 2억5천만유로를 투자해 중국을 위한 전략적인 개발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경제사회·환경·인권 분야에 각각 50%, 30%, 20%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 이 계획은 유럽과 중국 경제의 구조적 협력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총리 원자바오의 유럽 방문 때 EU 상임위원장인 프로디는 공식 연설에서 중국과 EU의 긴밀한 무역 및 경제 관계를 “사랑하는 사이 이상으로, 결혼한 사이에 버금갈 정도의 진지한 관계”라고까지 극찬했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인정하는, 그야말로 희망의 경제시장 중국이지만, 이구동성으로 우려하는 대목도 있다. 바로 위생 및 환경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인권 문제다.
중국의 보건과 의료 상태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얼마 전 중국을 휩쓸고 지나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여파로도 짐작되지만, 위생관념의 부족이 낳는 다양한 결과들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100만명이 넘는 에이즈 양성보균자, 전체 인구 60%에 달하는 B형간염자, 여기에 급속히 사기업화되고 있는 의료기관의 증가로 의료비가 폭증해 기본적인 치료도 못 받는 빈민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외에도 사형제도와 언론통제를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인권 유린과 공권력 남용 등은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를 꽉 메우고 있다.
중국의 다양한 인권 문제들은 그동안 중국을 향한 서방 사회들의 비판의 초점이 되어왔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은 대중국 무기수출 금지령을 내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어가 아닌 공격 무기에 중점을 둔 수출금지령이다. 중국의 가속화된 시장 개방화에도 무기수출 금지가 현재까지 지속된 데는 티베트나 대만 등을 향한 중국의 강경 태도와 중국 내의 심각한 인권 문제들이 주요 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몇년 전부터 중국에서 금지령 해제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슈뢰더 독일 총리는 중국 방문시 해제 요구를 받아들을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올해 초 후진타오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시라크도 넌지시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만의 안보와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무기수출 금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미국은 해제 요구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며, 유럽쪽에서 계속 금지령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미국쪽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무기 판매로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유럽 무기수출국들은 금수조치 해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 문제는 10월11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다시 거론됐다. 아일랜드와 덴마크가 역시 인권 문제를 우려하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여 다시 물밑으로 들어가긴 했다. 만장일치를 얻어야 해제가 가능하므로 당장은 해제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가 얄미운 대만과 티베트
그러나 시라크는 이번 중국 방문 중에 또 한번 금수조치 해제의 필요성을 외치며 적극적으로 프랑스의 무기판매 전략을 펼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 금지령은 아무런 당위성이나 결과를 갖지 못한다. 단지 중국에 단순한 적의를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북한 같은 나라는 금지령을 따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무런 신뢰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10월11일 베이징에서 행한 시라크의 연설 한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공격무기를 스스로 만들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으므로 무기금수 조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무기판매 외에 프랑스가 중국 시장에서 노리는 것은 항공 및 지상 교통과 관련된 첨단기술 분야와 원자력발전협력, 그리고 더 많은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이다. 시라크는 이번 방문에서 40억유로어치의 엄청난 계약성과를 올렸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계약성과를 이룬 기업은 알스톰인데 단독으로 14억유로의 계약에 서명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파산 위기가 나돌던 알스톰이었다. 상하이 지하철 확장공사 덕분에 파산 위기를 벗어난 셈이다.
“시라크는 나의 친구이고 티베트의 친구다. 그러니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안부나 전해주길 바란다.” 최근 달라이 라마가 한 프랑스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었다. 인권보다는 경제적 욕심에 눈먼 시라크의 중국 방문에 가장 실망한 나라는 아마도 티베트와 대만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조바심을 부추기는 경쟁이라도 벌이듯, 시라크가 떠난 중국에 이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문해 중국과 긴밀한 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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