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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추안4] 나에겐 결코 정계은퇴란 없다

등록 2004-08-27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시아 정치지도자의 고백 | 추안 리크파이 타이 전 총리 4(마지막회)]

정치가는 내가 원했던 전문적 직업… 시민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

▣ 추안 리크파이(Chuan Leekpai)/ 타이 전 총리

2001년 우리 민주당은 총선에서 패했고, 승리한 탁신 시나왓 타이락타이당 대표가 제23대 총리로 취임했다. 그렇게 이미 직업 정치인으로 35년, 그리고 민주당 대표로 12년을 지낸 나는 2002년 4월 새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했다. 66살이 된 나는 젊은 정치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정치가의 비즈니스 마인드, 위험하다

내가 경험한 한 정당의 지도자라는 직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당 지도자는 의회 안팎으로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데다, 정치가로서도 개인보다는 국가를 생각해야 하는 큰 열정과 인내심이 필요한 자리였다. 그렇게 해서 민주당은 2002년 반얏 반타드탄(Banyat Banthadtan)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그리고 나는 대표를 돕고 조언하는 임무를 하는 자문위원장을 맡아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실 민주당은 대표뿐만 아니라 조직을 총체적으로 정비해야 하는 과도기를 맞았다. 바깥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현재 위기에 빠져 있다. 그런 가운데,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이탈한 민주당 집행부 3명이 새 정당을 만들어 민주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현재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정치와 정당은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처럼 영광이 있으면 위기도 있다는 믿음에서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늘 전문적인 정치가가 되려고 애썼다. 내게 정치는 특별한 장이었다. 나는 사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정치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고 믿어왔다. 비즈니스 마인드를 지닌 비전문적 정치가들은 정치를 그저 권력과 이익을 좇아 오르는 ‘사다리’쯤으로만 여기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전문 정치가는 절대로, 어떤 사업에도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확신을 지녀왔다.

정치가는- 물론 전문적 정치가를 뜻하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직업이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국가와 시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입장에 선 정치가라면 개인적 사업을 위해 단 1분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정치가에게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살 수 있는 월급을 준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 사업을 하는 정치가들을 도저히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정치가는 그럴 만한 물리적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이 정치가로서 또 시민으로 35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좋은 시절과 그렇지 못한 시절을 두루 체험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타이 정치가 위기를 맞은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1년 탁신 총리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민주주의 뼈대인 인권이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법과 상관없이 길거리에서 경찰 총에 맞아 죽고, 사회운동가들이 소리도 없이 살해됐다. ‘이중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모두 비전문적인 정치가들이 정부를 운영한 데서 비롯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원칙만 좋다고 모든 걸 인정할 수 없다. 그 원칙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실을 비교하자면, 군사독재 시절보다 오히려 현 정부 아래서 더 심각한 사회적 손상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타이 시민들은 군인 독재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자를 익히 봐왔다. 그러나 시민들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 독재자로 탈바꿈하는지는, 그리고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정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일본 총리 무라야마를 그리다

아무튼, 그렇게 민주당 대표직을 그만두고부터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얻었다. 요즘은 정치와 관련 없는 옛 친구들도 만나고, 고향 뜨랑에 있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고 있다. 또 그림을 그릴 시간이 생겼다는 게 큰 행복 가운데 하나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참으로 좋아하지만 정치 일선에 있는 동안 그림을 위한 여행을 따로 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정치가로서 나라 안팎 어디를 가든 그림 도구를 챙겨다니며 틈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내게 그림이란 내가 만나고 경험한 사건들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나는 그동안 내 그림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는데, 1992년 첫 번째 총리가 되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가 내 그림을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며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3분 만에 그이를 그려주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내 그림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현재 모든 직함을 버리고 오직 의원으로서만 일하고 있다. 민주당 회의에 참여하고 의회에서 내 의견을 다른 정치가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사랑해왔고 나를 만나고 싶어했던 이들을 찾아뵙기도 한다. 또 고참 정치가이다 보니 선거가 있을 때마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민주당 후배 정치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나를 놓고, 나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내가 정치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녀왔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려 나는 명확하고도 직설적으로 대답하고자 한다. 나는 결코 정치에서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는 내가 원했던 전문적인 직업이었다. 아무도 내게 정치가가 되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고, 모든 판단과 결정은 내 스스로 내렸다. 나는 죽는 날까지, 만약 그날까지 시민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정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5년 동안 내가 경험한 정치는 나와 시민들을 한 몸으로 엮어놓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칠 때마다, 나를 지켜주었던 시민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화난 어머니가 선거에서 나를 찍지 않겠다고 말하자 울음을 터트렸던 소년, 맨주먹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내게 밥이라도 먹으라며 50바트(한국돈 1500원가량)를 꼭 쥐어주고 갔던 할아버지, 전봇대에 붙은 내 선거 홍보 포스터가 비에 젖을까 우산을 받치고 있던 할머니….

나는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며 시민을 위한 올바른 정치가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결코 배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을 바쳐 정치를 지키겠노라 결심했다.

지난 35년의 정치 역정은 내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겨주었다. 또 많은 좋은 친구들과 나쁜 친구들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나와 민주당이 정점에 오를 때 몰려들었던 친구들과 반대로 나와 민주당이 하락할 때 힘이 되었던 친구들을 나는 뚜렷이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거쳐온 인생을 명예롭게 여긴다. 평범한 시골 아이에서 한 나라의 최고위직 정치가가 되었고, 그리고 정치가로서 비록 모든 정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와 시민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롭고 젊은 정치가들을 위하여

정치가로서 나는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타이의 민주주의 건설 과정을 시민들과 함께했다는 점을 큰 명예로 여긴다. 그리고 나는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나는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지만 시민들은 내 가슴과 충성심을 들여다봐왔다. 정치인 추안으로서 내 기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정치가로서 내가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면, 그건 새롭고 젊은 세대 정치가들이 마음껏 뜻을 펼 수 있도록 떠받치는 밑감 노릇인 듯싶다. 지금 타이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도덕성이 높은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지금 타이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문적인 젊은 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끝으로 내 글을 읽어준 한국 독자들과 지면을 만들어준 에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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