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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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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농담의 꽃, 전쟁터에 피어라

등록 2004-08-20 00:00 수정 2020-05-03 04:23

[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아랍]

이집트 무바라크는 웃는 암소, 시리아 아사드는 사자, 사우디 파드는 표범?

▣ 라말라=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 팔레스타인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

요르단 의회 선거에 맞춰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중 투표를 방지하겠다며 ‘요르단의 별’을 유권자들의 신분증에 새기는 특수한 장치를 고안했다. 그러나 단 몇 시간 만에 더 창조적인 한 후보자가 다리미로 그 각인을 지워버리고 다시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선거는 온통 우스갯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코미디언들은 요르단 사회의 온갖 부정부패를 반영한 그 일을 본떠 희극을 만들었다. 총리와 장관들도 자신들을 풍자한 그 희극을 대중들과 함께 관람했다. 그러나 그 희극이 국왕까지 건드리지는 못했다. 요르단 법이 왕실에 대한 희롱을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요르단의 별, 다리미로 지우다

맞은편 국경 팔레스타인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 대통령이 희롱거리의 표적이다. 정작 독립도 못한 채 오랫동안 권좌에 머물러온 그이는 떨리는 입술에서부터 의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나친 키스에서 일벌레 같은 일정에 이르기까지 자주 농담거리가 돼왔다.

이웃 이집트의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도 아랍에서 가장 익살스럽기로 소문난 이집트 사람들의 통속적인 농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무바라크는 유명한 방언으로 쏟아내는 즉흥적인 설명과 그이의 명랑한 겉모습 탓에 ‘웃는 암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아랍 정치가들은 그 이름이 짐승을 나타내다 보니 범아랍계 희롱거리가 돼왔다.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는 사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드는 표범이듯이. 그리고 무슨 말을 할지 또는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도 자주 아랍의 농담거리가 돼왔다.

그러나 아랍 정치 지도자에 대한 그런 희롱들을 공개적인 자리나 만화에서는 많이 볼 수 없다. 만화가들이 공직자들을 조롱하지 못하도록 한 법을 어기고 지도자를 희화화하면 당장 감옥살이를 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오직 예외가 있다면, 특이한 인상과 옷차림새로 가장 그리기에 적합한 인물이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다. 그건 아랍 대중들의 관심이 팔레스타인에 쏠려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독립국 지위를 지니지 못한 팔레스타인 관리들의 높은 관용성 탓이기도 하다.
정치를 떠난 사회적 부문에 대한 농담, 예컨대 전세계적인 농담 발원지인 ‘섹스’ 같은 것들은 어린 사내아이들 영역을 제외하면 아랍세계에서 결여된 상태다. 게다가 종교라는 농담 재료도 아이들 사이에 나도는 진부한 유대교 관련 내용을 빼고 나면 매우 드물다.

활기와 희극성 별로 없는 아랍사회

그러다 보니 아랍 사회는 활기나 희극성이 별로 없는 편이다. 입담용 코미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야 예외지만, 대다수 아랍 사람들은 극적이고 어두운 편이지 희극적이거나 즐거운 쪽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웃음과 농담이 없는 이런 아랍세계를 팔레스타인 상실과 아랍국가 통일을 이루지 못한 무능함을 되풀이한 재앙이 사람들에게 반영된 20세기의 특수한 상황 탓으로 돌렸다. 또 어떤 이들은 전반적으로 명랑한 분위기가 결여된 아랍세계는 기본적으로 반대 의견 수용에 편협한 비민주적 특성을 지닌 아랍 정권들 탓이라고 보기도 한다.
분명한 건, 아랍 전역이 지금 전쟁터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명을 화두로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아랍세계에서 멋들어진 농담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만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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