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타이]
그래 당신은 너무 부자야, 가정부와 운전기사까지 백만장자로 드러났으니…
▣ 방콕= 페나파 홍통(Pennapa Hongtong)/ 기자
“날 믿어라. 난 바보가 아니다. 날 비판하는 이들은 무지한 놈들이다. 그이들은 오직 해묵은 후렴을 나불거릴 뿐이다.” 이건 매주 토요일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비판자들에게 대놓고 쏘아붙이던 탁신 사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가 최근 했던 말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느닷없이 놀랐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영리하고 결의에 찬 우리들의 총리 탁신은 이미 수도 없이 시민들을 감동시켜왔기 때문이다.
탁신, ‘정직한 잘못’을 고백하다
2001년 총리가 된 타이 최대 갑부 탁신, 그 슈퍼 최고 경영자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난 너무 부자다”라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그래도 모자랐던지 “어머니께서 내가 만약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충분한 부자가 아니라면 정치에 발을 담그지 말라고 하셨다”며 지극한 효성까지 들먹였다. 그이는 어떻게든 정치와 사업이 무관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 3년 만에 총리 개인 자산은 190억바트(5700억원)나 늘어났다. 그사이 슈퍼 최고경영자 총리가 운영한 타이라는 나라는 국민평균부채지수가 40% 이상 늘어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55년 동안 좋은 일과 궂은 일들을 두루 경험해왔을 탁신은 총리를 포함해서 사람이라면 모두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 갑부를 총리로 앉힌 이 타이 현대사의 비극은 처벌의 불평등, 말하자면 같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같은 ‘처벌’을 내리지 않은 데서부터 비롯됐다.
“나는 재산을 숨길 의도가 없었다. 단지 재산 양식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건 진짜로 ‘정직한 잘못’일 뿐이다. 그 실수란 건 신고를 빠트린 결과다.” 총리가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직자재산등록 허위 보고로 헌법재판소에 선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타이 최대 갑부가 재산 양식을 몰랐다고 한다! 총리가 되기 전 부총리까지 지낸 이가 실수로 재산등록을 빠트렸다고 한다! 미국에서 범죄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온 전직 경찰이 ‘정직한 잘못’이라는 희한한 초법적 용어를 구사했다!
그렇게 ‘실수한’ 재산 목록들이 그의 자동차 운전사와 가정부 이름 아래 들어 있었다. 시민들은 비로소 탁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깨달았다. 운전기사와 가정부마저 백만장자라니! 물론 타이 법에 따르면, 일반 공직자들에게 그런 유의 ‘정직한 잘못’이나 ‘등록 실수’ 같은 따위가 인정될 리도 없고, 더욱이 그런 변명을 늘어놓을 만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총리이자 최대 갑부인 그는 거뜬히 살아났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끝장나고도 한참 뒤였을 그런 사안을 놓고 말이다. 다 좋다. 그렇게 ‘돈’과 ‘권력’을 모조리 우리들의 총리 탁신에게 몰아준 것도 우리들의 결정이었고, 철 지난 후회를 하는 것도 모두 우리들의 권리니까!
그러나 탁신을 총리로 뽑은 시민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마약 거래라고? 오케이, 현장 사살해버려.” 지난해 탁신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2500여명을 웃도는 시민을 길거리에서 ‘막’ 사살했다. 7살 먹은 아이도, 젖먹이를 안고 있던 아주머니도 그 총에 맞아 죽었다.
“남부 지역에서 무슬림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문제 없다. 까짓 잔챙이 강도떼들이야!” 올해 새롭게 타오른 남부 무슬림주 분리주의 기운쯤이야, 탁신에게 장난이었다. 무장 해결사로 등장한 그이는 기어이 역사 유적지 크르 세(Krue Se) 모스크에 피난한 무슬림 젊은이 32명을 로켓포로 몰살시키며 본때를 보였다.
그렇게 국내 사안에서 ‘지성’과 ‘야성’을 마음껏 발휘한 그는 국제 무대에서도 거침없이 위용을 과시했다. 우리들의 총리 탁신에게는 외교적 의전이나 공식마저도 하찮은 존재였다. “주석이 될 당신에게 미리 축하를 보낸다.” 우리들의 탁신은 지난해 2월 중국을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후진타오 중국 부주석이 주석에 오르기도 전, 대뜸 축하 인사를 했다. 국제 외교가와 언론에서 관례를 무시한 그를 두들기자, 탁신은 “친구에게 보낸 축하였다”고 오히려 짜증을 부렸다. 우리들의 총리 탁신은 그렇게 외교 의전을 무시하고 후진타오를 축하한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인물이 되었다.
탁신은 국제사회에서 타이가 혼자일 수 없다며 친구가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타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모조리 “쓸모없는 친구”라고 했다. 그 결과, 탁신 정부의 인권유린을 비난한 국제사회는 모조리 쓸모없는 친구가 되고 말았다. 유엔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민사회보다 아내를 더 신뢰한다?
탁신은 그동안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이들을 ‘단골손님’으로 부르며 사정없이 몰아쳤다. 그런 그이에게 오직 하나 예외가 있다. “늘 나를 일깨우는 이가 있다. 내 아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 말을 경청해왔다.”
사회 어떤 분야의 전문가보다, 우리들의 총리 탁신은 아내를 더 믿고 따랐다. “사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일깨우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아시아, 타이의 허탈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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