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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북한과 친구한 뒤 일본에 조사받다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네팔]

‘네팔-북한 친선협회’를 아십니까? ‘네팔-일본 상호불가침조약’을 아십니까?

▣ 카트만두= 쿤다 딕시트(Kunda Dixit) / 편집인 겸 발행인

네팔 시민으로서 나는 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매력적으로 여기며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얼마 전 카트만두 시장 케샵 스타핏(Keshab Sthapit)이 평양을 공식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카트만두와 평양이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떠들어댔다. 시장은 입이 닳도록 평양 방문을 자랑했다.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더라. 교통체증도 없고 길거리에 개들도 보이지 않고… 정말 대단한 도시였다.”

평양 거리에 감동 먹은 카트만두 시장

특히 그는 개 없는 평양 거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수많은 개들- 사실은 우리 시민들과 가장 친밀한 네발짐승으로 도시 곳곳을 돌며 ‘청소원’ 노릇을 충실히 해내는 이들- 이 온 천지를 돌아다니는 카트만두를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오죽하겠는가마는! 누군가 개 없는 평양 거리의 ‘비밀’을 시장에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이 개를 모조리 잡아먹어버린 탓”이라고.

우스개지만, 개는 개다. 다만 그 개가 네팔에서는 숭배의 대상이고 신이란 게 다를 뿐. 참고로 말하자면, 네팔에서는 1년에 한번씩 개를 모시는 제사를 지낼 정도다. 그렇다고 네팔 시민들이 무슨 대단한 동물보호주의자라 할 것도 없다. 대신 네팔 시민들은 지구 한쪽 어떤 이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염소를 마구 잡아먹는다.

어쨌든 평양에 감동한 스타핏 시장은 즉석에서 카트만두와의 자매결연을 요청했고, 그를 초대한 위대한 ‘지도자 동지’는 흔쾌히 그 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린 두 도시의 자매결연이 뭘 뜻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앞으로 ‘자매’라는 이름 아래 두 도시 사이를 많은 이들이 오갈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물론 우리는 ‘존경하는’ 카트만두 시의원 나리들이 평양 유람에 별 관심이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이들이 평양시 청결교육 방문길에 틀림없이 한 1주일간 홍콩에 ‘도중 하차’해서 쇼핑한 영수증을 카트만두 시민들에게 내밀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다.

혹시 한국 독자들께서는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빈손으로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제국주의자들을 격파한 김일성을 놓고 규칙적인 세미나를 여는 ‘네팔-북한 친선협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친선협회와 주체연구소 의장을 겸한 마닉 랄 슈레스타(Manik Lal Shrestha)라는 자는 현재 혁명의 불길에 싸인 네팔에서 ‘주체’야말로 가장 실효성 있는 사상이라 외치고 있다. 나라얀 만 비죽흐헤(Narayan Man Bijukchhe) 네팔노동자농민당 의장도 절대적인 ‘주체’ 팬으로 김일성의 자력갱생과 자주에 심취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네팔 생화학무기가 의심스럽다고?

그런데 네팔이 그렇게 북한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마침내 국제적 눈총을 사고 말았다. 얼마 전, 일본이 네팔에 고위 인사를 파견했다. 네팔이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조사하겠다는 명목이라고 했다. 물론 네팔엔 그런 무기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지만, 세상이 네팔을 그렇게 본다면 그건 자유다. 적어도 세상이 히말라야 한 구석에 박힌 손바닥만한 네팔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네팔 시민들은 기뻐할 노릇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모든 은총은 북한이 내린 간접적인 선물이었다.

부디, 놀라지 마시라! 일본이 네팔을 조사한 다음, 네팔과 일본 사이에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거리로 따져도 한참 멀기만 한데다, 무슨 그럴듯한 이문이 남는 일도 없는 네팔과 일본 사이에 맺은 이 난데없고 불쾌한 상호불가침조약이야말로 21세기의 최대 코미디라 아니할 수 없다. 돈으로 따져 일본의 한 지방도시 예산보다 적은 규모의 네팔 정부가 대체 그 먼 일본을 어떻게 침공할 수 있다고 상상했기에! 네팔 군대가 일본까지 갈 차비도 없는 판에 상호불가침조약이라니!

북한이 일본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는 그렇게 히말라야 산골에서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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