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벗어나 독립적 활동 시도… 국제 NGO들의 중국 활동 무대도 넓어져
▣ 베이징= 글 · 사진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만난 세계 각지의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을 보면서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당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 이제는 당의 주인인 인민이 직접 행동하면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독립적인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때입니다.”
정식 등록된 단체만 12만여개
중국의 8대 인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전국부녀연합회 산하 가정폭력 법률상담소를 책임지고 있는 의 말이다. 이 상담소는 전국 20여개주에 지부를 두고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 참가한 뒤 자극을 받은 그는 더욱 독립적인 NGO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가정폭력 법률상담소를 만들었다. 비록 정부기구의 인민단체에 소속돼 있지만 활동은 자유롭다. 농촌에서는 경제난으로 인한 가정폭력이 심하고,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도시에서는 외도하는 남편 때문에 부부간 갈등이 심하단다. 농촌에서 올라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매매가 늘어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과 여성 지도력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은 이제 아시아 여성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문화·역사적으로 엇비슷한 한국 같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싶어한다.
중국에서 NGO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사회단체 등록을 해야 하는데 절차가 참 까다롭다. 지방 또는 중앙정부 해당 부서에서 지원보장을 받아야 하고, 재정보증액으로 3만위안(전국 단위는 10만위안, 1달러는 8위안)이 있어야 하며, 활동 지역에 같은 성격의 단체가 없어야 한다. 중국 칭화대학교의 공공대학원은 NGO 연구와 지도자 발굴을 위해 98년 ‘NGO연구소’를 세웠다. NGO대학원 과정을 설치해 중국 NGO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NGO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최근 조사 자료에 따르면 400여개 사회단체 중 절반가량이 당 간부가 이들 단체의 직무를 함께 맡고 있다. 또 정부 지원과 보조가 전체 수입의 50%를 넘어서고 있고, 자체 회비는 전체 수입의 21.2%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정부 기구에 정식 등록된 단체는 12만여개지만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30~40만개에 이른다.
의 로빈 윅슬러는 “지난 몇년 사이에 상당히 독립적이고 의식 있는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NGO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의식이 있는 사회단체 규모는 전국에 1천여개 정도라고 한다. 사회복지 단체, 여성과 환경사회단체들이 대다수이다. 최근에는 도시와 농촌 지역의 주민 자치 관련 조직들이 늘어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100여개 국제 NGO들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교도로 몰려 탄압을 받고 있는 파룬궁 사건이 발생한 1999년 한해에만 무려 3만5천여개의 사회단체가 등록 취소됐는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중국 NGO 활동은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와 96년 세계정주회의 등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 지식인들이 참여하면서 점차 일반화됐다. 중국 정부는 NGO를 또 다른 외교 수단이자, 정부 차원에서 해결 못하는 사회 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인식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제회의에 나오는 중국 NGO의 대부분은 관변 NGO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독립적 활동을 모색하는 사회단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에서는 대규모 시위와 행진은 강하게 제지하고 있으나 지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위까지는 손이 잘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대중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NGO들도 생겨났다. 1980년대 이래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과정으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농촌에서 대거 도시로 이주하는 노동자들, 즉 농민공들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베이징 주변만 해도 이런 농민공들의 촌락이 200여 군데 있고, 800만명이 살고 있다. 90년대 이후 중국 농민들의 시위와 저항은 조직적 양상을 띠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한해에만 모두 7650건의 폭력·저항충돌 사건이 일어나 약 80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 저항 지원하는 NGO도
대부분의 NGO들은 정부에 정면 도전하기보다는 개혁 차원에서 정부 정책을 바꾸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농민 저항에 어떤 식으로든 정책 대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삼농문제’(三農問題, 농업·농민·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농민공의 공회 가입을 사실상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1989년 톈안먼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력이 사회단체 등 민간조직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커뮤니티’라는 NGO와 관련된 체계적인 관리 제도를 마련했다. 덩샤오핑 시절에 경제개혁 조처와 함께 나온 커뮤니티는 바로 지역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90년대 들어 시범적으로 몇몇 지역에서 주민위원회 직접선거를 치르면서 주민들이 지역생활 공동체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다양한 클럽과 모임을 만들고, 직장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지역 안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당의 후원과 조직 안에서 이뤄졌다.
첸이 광저우에 만든 장애인단체는 이제 전국 8개 지부로 늘어났다. 그는 중국의 사회복지가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래로부터 대중의 참여를 통한 개혁과 연대를 꿈꾸면서 2년 전에는 전국연대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서방 NGO들의 지나친 참여와 우려가 오히려 방해가 됐단다. 국제 NGO 조직의 대부분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월례포럼(BINGO)을 통해 정보를 정기적으로 나눈다. 최근에는 이웃 티베트와 가까운 인구 4200만명의 중소지역인 윈난이나 인구 6500만명의 후난, 홍콩의 인접한 인구 7300만명의 광저우를 활동 무대로 삼고 있다. 중앙정부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고, 홍콩이나 티베트와 가까워 국제교류에 용이하다. 후난에서 활동하는 미국 퀘이커 교도들의 국제단체인 ‘미국친우회’의 동북아시아 담당 제임스 레일리와 그의 부인 우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 사회에 NGO 모델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베이징이 아니라 후난처럼 일반 대중들을 쉽게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는 NGO 늘어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옥스팜’의 치안은 “이전에는 옥스팜 아시아지부가 있는 홍콩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고 활동했지만 3년 전부터는 이곳 상하이에 사무실을 열었고 내년에는 중국 본부를 별도로 둘 예정이다. 현재 지원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대폭 늘려 전국 단위로 지부를 늘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제 NGO들의 활동 무대가 지방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국제 NGO들은 중국 NGO들이 국제 감각을 빠르게 익히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늘어나면서 대중들의 참여도가 높은 지역사회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NGO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베이징의 서민아파트에서 활동하는 ‘지역사회행동조직’(CAO)은 지난 2년간 지역사회에 모범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중하층 지역 아파트이다. 도둑이 많고, 쓰레기더미를 처리하는 게 골칫거리였다. 우리는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이 문제는 주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주민들이 잘 안 모여 주민위원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가가호호 방문해 부채 같은 선물을 건네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주민들간에 몇 차례 토론과 워크숍이 진행됐다. 결국 쓰레기 문제는 쓰레기를 줄이고, 특정한 곳에 모으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도둑은 자체 방범을 세워 막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중요한 건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해결방법을 제시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녹색의 힘’은 대학자치클럽에서 만나 인근 지역의 재개발과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동료들과 교수들 모임이 발전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지역 환경 문제를 조사 연구하고 지역 주민들을 만나 그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관련 모임을 만들어나갔다. 이제는 아시아 연대를 목표로 이웃 나라들과 다양한 교류를 펼치고 있다.
지금 중국 시민사회는 경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발전 측면에서도 아시아의 중심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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