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집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중산층 혁명’… 실제로는 ‘빚쟁이 부르조아’들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아까 그 차, 방금 산 새 차 같은데 맞아?”
“어, 두달쯤 됐어. 장학금으로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저축한 거 좀 보태서 분할납부로 산 거야. 그리고 정부에서 유학갔다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1만위안(약 150만원)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주잖아.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돈은 안 들었어.”
“집도 샀다며?”
“방 두개짜린데, 회사에서 조금 보태주고 은행 대출 받아서 역시 분할납부 방식으로 사니까 많은 부담은 안 되더라고.”
“조만간 아이만 낳으면 넌 아주 완벽한 중산층이 되는 거네. 부럽다 부러워.”
“중산층이 별거냐. 니네들도 은행 대출 받아서 집 사고 자동차 사면 중산층이 되는 거야. 그 정도 능력들은 되잖아?”
계급 분화의 출현
일요일 저녁, 오랜만에 대학원 동창들이 모였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한 동창 부부가 오늘 저녁 모임의 주인공이다. 그동안 살이 좀 쪄서 돌아온 동창에게 제법 ‘부티’가 나 보인다는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화제가 자연스럽게 그가 몰고 온 자동차에 집중됐다.
이제 막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어느 중국인들의 저녁모임 대화는 유학파 동창의 자동차에서 시작돼, 모임이 끝날 때까지 ‘중산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그 유학파 동창처럼 자동차와 집을 소유한 중산층 대열에 진입하는 것을 향후 5년 이내의 삶의 ‘분투’ 목표라고 했다.
중국의 한 일간지 독자상담 코너에 화이트칼라 여성이 자문을 구해왔다. 내용은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사귄 이들은 졸업 뒤 각자 직장을 구한 다음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수입 격차는 큰 폭으로 벌어졌고, 급기야 그 여성이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남자친구는 졸업 뒤 별다른 승진 욕심이나 돈 욕심 없이 그저 다니는 직장과 집만을 오고 가는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반면, 그 여성은 남다른 승부욕과 노력으로 매년 승진을 거듭해 지금은 월급 1만위안(약 150만원)을 받는 고소득 중산층이 되었다. 그에 비해 남자친구의 월급은 불과 3천위안(약 45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여성은 이미 집과 차도 구입한 상태였다. 게다가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면서 두 사람이 어울리는 부류들에도 일정한 신분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이 여성의 고민은 과연 이러한 ‘격차’가 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가였다.
이 내용을 읽은 한 중국인은 ‘신계급분화의 출현’이라며 앞으로 그 여성과 같은 고민이 줄줄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출발선은 같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이 연인처럼 각기 다른 계층, 신분으로 분화할수 있는 가능성은 지금 중국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졸업 뒤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평가받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신세대들은 더 많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보다 더 빨리 부와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 이른바 ‘출세욕’이다.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증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자동차와 집으로 상징되는 ‘중산층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예전에는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으로 나타나던 신분의 상징이 불과 몇년 사이 자동차와 집으로 변했다.
중국 정부도 이 중산층 혁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지난 2001년 7월, 당시 국가 주석이던 장쩌민 주석이 공산당 창당 80주년 기념연설에서 “개혁·개방 이후 우리나라 사회계층 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사영기업주, 외자기업 관리인 등 광범위한 중산층의 등장을 인정하며 이들을 노동자, 농민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주력군으로 추켜세웠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에서 수석 대표이자 전 대외무역부 부부장이던 롱융투(龍永圖)는 2001년 싱가포르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향후 10년 내 중국 중산층은 4억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 많은 중국인들이 ‘중산층 꿈’에 포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리적 중산층’ 비율만 높아
“당신은 중산층이십니까?” 최근 2~3년 사이 중국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화법이다. 언론매체와 잡지의 표지이야기에도 중산층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또 각종 자동차 광고나 아파트 광고, 전자제품 등에 등장하는 광고의 주인공들도 중산층이 대부분이다. 지난 6월17일 사상 최고의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폐막된 베이징 국제자동차박람회 이후 해외 언론들도 중국의 자동차 소비혁명을 노래하며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신흥 중산층을 주목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이들 중산층은 누구이며 그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01년 중국의 국책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에서는 전국 12개 성과 직할시에서 16~70살 인구를 대상으로 ‘당대 중국 사회구조 변화 연구’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는 직업과 소득, 소비, 주관적 인정 수준 네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중산층 비율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직업이 중산층인 비율이 15.9%, 소득 수준이 중산층인 비율이 24.6%, 그리고 소비 수준이 중산층인 비율이 35%인 데 반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적 인정 비율이 46.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네 가지 항목을 종합했을 때 실제로 중국에서 중산층이라고 인정되는 비율은 불과 4.1%에 불과했다. 즉, 실제 비율과 달리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중산층 비율이 의외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조사 책임자인 중국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의 리춘링(李春玲) 부연구원은 중국 시사주간지 과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중국 중산층은 일부 언론매체 종사자나 학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와 거품에 불과하다. 또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 현황에 대해 맹목적으로 낙관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허위 비율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 난징대학교 사회학과 저우샤오훙(周曉虹) 교수 역시,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는 많은 중산층들이 출현했고 현재 맹렬한 속도로 그 수가 확대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듯 중국이 이미 중산층 사회로 진입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서방 선진국에서 중산층이 인구의 80%를 차지하며 안정된 ‘올리브형’의 중산층 사회를 이루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도농·지역간 소득 격차 등으로 인해 여전히 저소득 계층이 압도적으로 많은 ‘양파머리형’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샤오쯔’에 이어 ‘신중산족’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는 중국의 소비혁명에 주목했다. 백색 가전제품 전쟁으로도 불리는 가전업계의 치열한 판촉 경쟁과 중국인들의 소비 증진은 가전제품 소비혁명을 가져왔다. 이는 9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와 주택 구매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는 ‘샤오쯔’(小資·소부르조아)라고 불리는 일군의 ‘분위기파 중산층’들이 출현했다. 이들은 주로 도시의 화이트칼라층 중심으로 소득이나 직업과는 상관없이 일종의 부르조아적 취향을 즐기는 ‘족’들이었다. 90년대 중·후반 중국 사회에 이들 ‘가짜 중산층’ 샤오쯔의 물결이 휩쓸고 간 자리에 지금은 당당히 “당신은 중산층이십니까?”라고 말을 건네오는 ‘신중산족’들이 들어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둘 다 ‘중산층’을 꿈꾼다는 것이다. 하지만 샤오쯔들이 그저 중산층 분위기를 흉내내며 스타벅스나 고급 술집 등지에서 고상한 격조와 품격을 중얼거린 반면, 신중산족들은 아침이면 자가용을 몰고 베이징의 최신식 상업중심지구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하며, 저녁이면 30분 거리에 있는 교외의 전원빌라로 퇴근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중국의 진정한 중산층이라고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대부분 빚쟁이 부르조아들이다. 20~30년 할부로 은행 대출을 받아 집과 자가용 등을 산 이들 21세기 중국의 신흥 중산층은 꿈을 이룬 대신 평생 은행에 저당잡힌 몸이 되어 빚쟁이 중산층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빚쟁이일망정 수많은 중국인들은 그들처럼 중산층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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