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베글시에서 논란 속에 열린 게이 커플 결혼식… 법적 권리는 주되 결혼은 안된다?
파리= 글 · 사진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6월5일 토요일 오전, 프랑스 남서부 도시 베글의 시청 앞은 평소와 달리 시끌벅적했다. 곧이어 치를 결혼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가 동성이다. 이날 예식은 결혼 반대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 예식으로 기록될 만하다. 또 프랑스에서 처음 열린 동성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동성간 결혼은 합법적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을까.
커밍아웃한 정치인들
프랑스에서는 결혼할 때 종교예식과 함께 행정예식을 치른다. 가톨릭 풍습에 기반해 성당에서 행하는 종교예식은 선택사항이나 행정예식은 필수다. 보통 신부나 신랑의 거주지인 시청 혹은 구청에서 시장의 주례 아래 이뤄진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해당 시청을 거쳐야 하며, 시청에서는 한국처럼 결혼신고만 받는 게 아니라 결혼신청서를 비롯해 결혼 자격 여부를 심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그리고 바로 이 자격을 민법이 규정하고 있다. 결혼 자격을 규정한 프랑스 민법의 내용은 이렇다. “18살이 되지 않은 남자와 15살이 되지 않은 여자는 결혼할 수 없다(제144항).” 프랑스 민법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200년간 이어져온 법이다. 그렇다면 동성간 결혼은 어떻게 규정되어 있나. 이와 관련해서는 “결혼 당사자의 나이만 명기할 뿐 성(性)에 대한 자격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금지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18살 이상의 남자 둘 혹은 15살 이상의 여자 둘이 결혼하는 일은 위법이 아니다”라는 견해가 있다. 바로 결혼식 주례를 본 베글시의 시장 노엘 마메르(녹색당 소속)의 입장이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당사자들도 30살이 넘는 남성들이었다.
반대쪽 의견도 있다. “동성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명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합법적이지 않을뿐더러,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사실 예식 절차에는 “이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구절이 있다. 이런 문제의 결혼식에 대한 찬반 격돌은 예식이 행해지기 한참 전에 정치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지난 4월 프랑스 녹색당 상임의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의 결혼권을 추진하는 안건이 절대적 찬성으로 통과된 바 있다. 따라서 베를시의 시장이자 지난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였던 마메르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동성간 결혼식을 주도한 것이나, 결혼식이 유럽의회 의원 선거 직전에 치러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현 집권당인 우익 ‘민중운동 연합당’이 결혼식을 강하게 반대하며 법을 위반한 시장 마메르를 고소하겠다고 한 것도 각 당의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다.
문학이나 예술, 철학 속에서는 동성애 장면이 오래 전부터 드러났다. 20세기 서구에서는 유명한 예술·문학가들이 동성애 성향을 노출시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오스카 와일드,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미셸 푸코, 데이비드 보위 등은 익히 알려진 이름들이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이나 법적 권한이 본격적으로 논쟁에 부쳐진 것은 20세기 말부터다.
‘팍스법’ 이후 동성애자 인권에 관심
유럽에서는 1994년 유럽의회가 회원국들에게 “동성애자들에 대한 모든 차별 정책을 없애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되, 구체적인 법안은 각 나라에 적절하게 실시할 것”을 권장했다. 북유럽의 다수 국가에서는 동성애자의 결혼권이 이미 인정되고 있다(도표 참조). 스페인은 지난 봄 새로 들어선 좌익 정부가 동성애 이슈와 관련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나라마다 동성애 문제가 정치화되는 시기나 과정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1981년 가장무도회식 거리시위인 ‘게이 프라이드’가 뜨면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한 사회·정치적 관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0만여명이 참석한 게이 프라이드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제 성년기를 넘겨 성숙기로 접어든 행사다. 동성애자들의 인권표명 운동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령 1980년대 세계에 몰아친 에이즈 파동은 동성애가 에이즈 전염의 주범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양산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80년대 게이 프라이드 참가자 수는 겨우 1만명선에 머물렀고, 그들의 외침도 ‘동성애자 존재인정’ ‘차별대우 타파’ 등 이미지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신중하게 논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은 ‘팍스법’(시민연대 협약)이 실행되기 시작한 1999년을 전후해서다. 동성이나 이성 동거자들에게 결혼한 커플이 갖는 권리의 일부를 부여하게 한 팍스로, 당시 프랑스 사회에는 찬반논쟁이 들끓었다. 동거가 보편화된 프랑스지만 동성 동거 커플에게 부여하는 법적 권리에 대한 호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대쪽의 의사가 강경하게 맞섰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국회나 언론에서도 수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터부로 여겨지던 동성애자들의 현황과 양상들이 언급되고 노출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관심도 크게 고조됐다. 더불어 동성애 인정 여부를 떠나 이들의 권리와 관련된 세부사항을 짚어보는 단계로 진입했다.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눈도 훨씬 관용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현재 프랑스법은 동성끼리의 동거는 법적 권리를 갖지만 결혼권은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파리 게이 프라이드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인물이 사회당 소속 파리 시장인 들라노에다. 그해 봄에 선출된 들라노에는 팍스법 논쟁이 한창이던 1998년 텔레비전을 통해 커밍아웃했고, 2001년에 파리 시장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커밍아웃이 성공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커밍아웃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최고 우익당 소속 고문관인 로메로는 커밍아웃을 한 뒤 당내에서 고역을 치른 경우다. 그는 2000년 그의 커밍아웃 계획을 알고 있던 한 기자가 본인보다 앞서 한 게이 사이트에 폭로하면서 이뤄진 간접적인 커밍아웃이었다. 결과적으로 로메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온 비겁한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당시 로메로의 커밍아웃은 소속 당의 이미지에 먹칠을 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
동성애자의 권리와 정치 및 권력의 관계는 동성애 정치인들이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에 그치는 게 아니다. 게이 프라이드에 참석하는 파리 시장의 양 어깨에는 ‘게이로서 자부심’과 더불어 그가 소속된 사회당의 정치색이 나란히 자리한다. 그래서 권력자와 그의 성적 성향은 개인의 영역을 떠나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들라노에는 2002년 동성애자 시장이라는 이유로 시가 주최하는 축제에서 폭행당했고, 2003년 게이 프라이드를 앞두고는 한 우파 정치인이 “개인의 성적 성향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파리 시장이라는 신분으로 특정 시위대의 선두에서 그 운동을 옹호하는 일은 또 다른 책임의 문제”라고 나무랐다.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찬반 견해를 떠나 동성애자 문제를 성역으로 남기지 말고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회적 이슈인 만큼 함께 생각해보고 얘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화야말로 불협화음을 줄이고 시민의 권리에 대한 숙고를 가능케 함으로써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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