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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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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도시’ 런던, 수상도시로?

등록 2004-06-04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온난화로 홍수와 범람 우려되는 영국… 온실가스 줄이기도 시늉뿐이었네

런던= 글 · 사진 줄리언 체인 전문위원 juliancheyne@onetel.net

‘비의 나라’ 영국에서 일기예보는 뉴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날씨에 관심이 높다 보니 일기예보 해설자들도 눈길을 끈다. 한 여성 해설자는 만삭의 배를 드러낸 채 당당하게 텔레비전에 등장해 한동안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언제나 비에 민감한 영국인들은 특히 온실효과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범람에 관심이 크다. 최근 이에 대한 심각한 경고가 나왔다.

제방 허물어 농지를 습지로

정부의 수석 과학자인 데이비드 킹 경이 이끄는 60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전망 프로그램’(Foresight Programme)을 통해 “영국은 앞으로 더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취한다 해도 극적인 기상 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수십년 안에 홍수와 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비상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2080년까지 매년 200억~270억파운드의 물적 피해와 360만명의 인적 피해가 날 것이며, 2천억파운드에 달하는 재산이 이미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킹 경은 보고서 서문에서 “실제로 모든 시나리오를 다 생각해봐도 위험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커지고 있다”며 “우리는 범람에 대비해 지속 가능한 대책을 세우고 연안지역 관리를 위해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범람 위험 지대에 속하는 곳은 북쪽의 맨체스트, 리즈, 브레드포드, 헐, 그림비 등의 도시이고, 남쪽의 런던이 포함된다. 템스, 트랜드, 세븐 등 강 유역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세븐강 유역은 이미 최근 수해를 여러 차례 겪었다. 템스 게이트웨이라고 알려진 회랑지대에 있는 런던 동부 마을들은 새 타운의 건설에 한창이지만 실은 위험지대에 속한다. 제방을 쌓는 데만 수억파운드를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앞으로 영국 해안을 따라 광범위한 해안침식과 재해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스트 앵글리아와 요크셔 지방은 물 속에 잠길 것으로 예측된다. 해안관리의 책임당국은 이제 해안선이 침식되는 사태에 대해 더 이상 어떤 대처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한 상태다. 재래식 제방시설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해안 한쪽을 막아봐야 바닷물은 다른 쪽으로 밀려들기 때문이다.

제방 쌓기는 경제·사회적 요소가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가령 특정 거주지를 보호하기 위해 그 주변에 제방이 건설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인위적으로 어떤 지역을 선택해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방해하면 그만큼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스트 앵글리아 지방의 매립지인 와시 지역은 자연 제방을 만들었다. 수백년 동안 제방으로 바다를 막아 만든 농지는 원래 습지였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물이 점점 빠졌고, 계속 지대가 낮아져 끝내는 해수면보다 낮아지게 됐다. 반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면 제방 이편의 농지와 저편의 바닷물 수위의 격차는 벌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제방을 높이 쌓아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이 상태에서 바닷물이 제방을 넘으면 바닷물은 훨씬 내륙쪽으로 밀려들게 된다. 결국 당국은 제방을 서서히 허물고 바닷물이 다시 농지에 서서히 스며들도록 했다. 다시 바닷물이 유입돼 농지였던 토지는 물을 먹으면서 불어나 지대가 높아지고 습지로 변해 결국 더 이상의 범람을 막는 자연 제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습지가 회복되면 자연 제방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관광자원이 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대처하든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안선 침식 문제는 피할 길이 없는 것 같다. 해수면 상승으로 영국 해안과 도시가 피해를 보는 것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지표가 1980년대에 세워진 ‘템스강 수문’(Thames Barrier)이다. 이 수문은 런던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을 막기 위해 건설됐으나 애초 예상보다 훨씬 더 자주 닫히게 됐다. 템스강 수문은 지은 지도 얼마 안 돼 일년 내내 사용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는 해수면이 건설 당시 예상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조수가 밀려오면 런던같이 지대가 낮은 곳은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할 때 침수할 수도 있다.

런던에 높은 조수 밀려오면…

위원회는 낡은 하수구와 배수 시스템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했다. 영국의 많은 도시의 하수 시스템은 200년 전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졌다. 범람이 발생하면 오수가 이를 통해 주택으로, 길가로 넘쳐들어와 온갖 건강·위생상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홍수, 범람 등으로 불어난 물이 자연적으로 들고 나가는 저지대에 무모하게 택지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저지대에 주택을 세우면 지역민이 위험할 뿐 아니라 설사 제방 등으로 보호해도 결국 이 물이 수해와는 무관한 지역으로 돌아가서 침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지구온난화설에 대한 경고에 앞장섰던 나라다. 처음에는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지만 영국인들은 지구온난화설을 지지했다. 영국 정부는 연구를 지원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교토협약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막상 실천은 미미했다. 재생에너지 투자정책을 보면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영국은 엄청난 재생에너지 자원, 특히 풍력과 조수 에너지가 풍부한 나라지만 막강한 원자력 산업계의 로비와 허위 통계로 이 분야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가 일반 시민에게 공급되고 있지만 조수에너지 개발은 아직도 미진하다. 풍력 터빈이 주로 풍광이 아름다운 바닷가 등에 설치돼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 때문에 이제는 좀더 내륙쪽에 설치하고, 풍력에너지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 진보라면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0년대 영국은 독일과 함께 온실효과 대처에 앞장서는 나라로 비쳤다. 그러나 이는 곧 착각임이 드러났다. 그간 영국에서 이산화탄소 방출이 준 것은 친환경정책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 싼 가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스 가격이 오르자, 전기회사는 전력생산을 위해 다시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어 이산화탄소 방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온실가스는 2003년에 3% 늘어났다. 이는 전년도 1.5% 상승률에 견주면 딱 두배가 오른 것이다. 영국은 이제 오염배출권 거래제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제안한 안으로, 먼저 정부가 이산화탄소의 일정한 총허용배출량만큼만 배출할 수 있는 권한을 기업들에 파는 것이다. 이 권한은 기업끼리 사고팔 수 있고, 오염이 심해지면 이 권한의 시장가격은 높아져 오염을 덜 배출하는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준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해당 국가나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집행 강제력이 강하지 않으면 실효를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국은 이 정책을 지지했으며 현재 유럽 국가들과 기업들 사이에 이 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했다.

또 영국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배기가스를 줄일 수 없었고, 대중교통 수단을 늘린다는 공언도 공수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연료에 세금을 많이 매겨 도로 건설을 억제한다는 계획도 농민들과 트럭 운전사들의 저항에 부닥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해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예전의 정책으로 돌아갔다. 또 매립지에 묻은 쓰레기가 메탄가스를 계속 발생시키고 있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2010년까지 산업부문의 방출탄소를 20% 줄인다는 목표도 스스로 포기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위원회’에서 지적한 대로 영국 정부는 환경정책의 핵심 분야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또 정부의 지속 가능한 성장정책은 정작 중요하지 않은 정책만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이라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중지해야

올 2월 미 국방성은 지구온난화는 “이제 과학적인 논쟁을 넘어서 미국 안보 차원의 문제로 격상했다”며 “기상 변동은 이제 지구적 차원의 안보, 기근, 역병, 전쟁 문제를 몰고 올 것”이라고 묵시록적 예언을 했다. 하지만 지구 기관차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몇몇 큰손들은 석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것 같다. 세계은행의 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환경 영향을 조사한 한 연구 보고서는 앞으로 8년 동안 세계은행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중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세계은행은 이 분야에 매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나 이제 재생에너지쪽으로 집중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은행은 에너지 차관의 94%를 석유부문에 쏟고 있는 만큼 이런 권고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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