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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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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 간디도 별 희망 없나

등록 2004-04-15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시아의 총선/ 인도]

극우 힌두 집권당과의 광적 민족주의 경쟁… 누가 승리하든 대파키스탄 평화협상에 찬물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편집장 · 핵 전문 칼럼니스트

집권당인 힌두 우익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이 하원 조기 해산과 선거를 결심하며 들고 나온 건 ‘개발’이었다. BJP는 경제성장이라는 단골 메뉴에다, 도로·전기·수도 확충 같은 공공사업을 약속하며 지난해 12월 북부 3개 주 입법의회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다.

BJP는 그 여세를 몰아 4월20일부터 시작하는 인디아 전역 선거에서 ‘주적’인 소냐 간디의 인디아 국민회의당(INC)을 내동댕이치겠다며 의지를 불태워왔다. BJP는 ‘빛나는 인디아’를 외치며 농업과 통신 그리고 자동차 부문 개발에다, 치안과 성 평등 확보를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선전했다. BJP는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노동자 복지까지 자신들의 치적이라 우기며 대대적인 선거운동을 벌여왔다. 그렇게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BJP는 자신들이 집권한 지난 6년 동안 인디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개선되었는지를 선전하는 일에 수백만달러를 웃도는 공공자금을 뻔뻔스럽게 쏟아부었다.

‘반외국인’ 정서 드높이는 힌두정당 BJP

그러나 불행히도 인디아 시민들은 그 ‘번쩍거림’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지난 6년간 해마다 5~6%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지만, 그 ‘빛나는 인디아’는 모두 극소수 엘리트들의 것일 뿐, 거대한 주류 시민사회는 여전히 고통을 받아왔던 탓이다. 오히려 바지파이 총리가 집권한 지난 6년간은 탐욕스런 엘리트들이 폭리를 취하면서 수익구조 왜곡과 지역불균형이 깊어졌다. 게다가 불길한 농지 위기마저 겹쳐 1만명이 넘는 농민들이 자살했다. 결국 경제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 야당 정치가들은 저마다 ‘빛나는 인디아’를 부정해왔다.

BJP는 그렇게 자신들의 개발 선전 ‘강령’이 사회로부터 난타를 당하자, 지난 선거(하원 의석 3분의 1 선출)에서 만끽했던 승리감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기감을 느낀 BJP는 ‘악당들의 마지막 은신처’로 ‘애국심’을 찾아냈다. 그 애국심은 민족주의였고, 그 민족주의는 소냐 간디의 ‘외국 혈통’을 타격점으로 삼았다.

“위대하고 자부심 강한 국가에서는 결코 ‘외국인’을 총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인디아의 힌두 주류라 선언한 BJP는 한껏 목청을 높였다. 한술 더 떠, BJP는 “선거에서 이겨 새 정부를 구성한다면 외국인이 고위 공직에 진출할 수 없도록 단단한 법을 만들겠다”며 선거운동판을 온통 반외국인 정서로 뒤덮어버렸다.

BJP는 그렇게 추잡한 외국인 혐오증을 조장하고 인종파벌주의를 퍼트리며 오직 인디아에서 태어난 이들만이 ‘순종’이라고 외쳤다. 그 밖에는 모두 믿을 수 없는 ‘불순자’ ‘외국인’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국가의 이익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고 몰아붙였다.

소냐 간디의 INC, 핵문제 사안에 타협

BJP가 살포해온 ‘인종중심주의’는 인디아 헌법 정신을 치명적으로 손상시켰고, 세계 시민사회의 평등권을 침해하며 인디아에 ‘나치’의 유령을 되살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BJP는 중세 이슬람 ‘공격자’들로부터 파괴당한 인디아의 ‘힌두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의욕적인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선언해 인디아의 ‘비종교주의’ 원칙에도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BJP의 이런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주의 오만은 인디아 국내를 넘어 이웃 나라들에도 곧장 인디아 중심주의 ‘슈퍼파워’에 대한 경계심을 유발했다.

민족주의를 내건 BJP의 ‘유독성’ 선거운동에 맞서 INC는 영국 식민통치기에 해방투쟁을 이끌었던 자신들의 또 다른 ‘민족주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나왔다. INC는 1885~1947년 식민통치 기간에 자신들이 주도했던 해방투쟁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최고급 무기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INC는 늦게 태어난 BJP가 독립투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사실을 비굣거리로 내세우며 선거판을 만만찮은 민족주의 경연장으로 몰아갔다.

돌이켜보면 광신적 힌두 애국주의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부의 적’인 무슬림과 싸우는 일을 식민주의자들과 싸우는 일보다 더 우선했던 게 사실이다. 많은 힌두 광신자들은 1942년 민족운동 과정에서 영국 식민통치자들과 협력했다. BJP를 이끄는 바지파이 현 총리도 그 1942년에 수상쩍은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 1948년 무슬림에게 ‘유화적’이며 ‘비종교주의’를 내걸었던 마하트마 간디가 광신적 힌두 애국주의자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인디아의 망측한 민족주의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BJP와 같은 민족주의 경연장에서 싸웠던 INC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핵 능력을 지니는 것이 인디아의 명예다”라고 외쳤던 INC의 전력이 좋은 본보기다.

1974년 소냐 간디의 시어머니였던 인디라 간디 총리 시절 인디아는 ‘평화적’ 핵개발을 놓고 국제사회가 야단법석을 떨자 그 프로그램을 중단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1979년 바지파이가 외교적 반발을 두려워하며 핵개발 프로그램 재개를 반대하자 INC는 바지파이- 사실은 본디부터 핵무장 강경 옹호론자- 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면서 INC는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인디아가 핵 능력을 가지되, 무기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INC는 병적인 핵무기 보유 망상에 사로잡힌 BJP가 1998년 핵실험을 하자 이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질퍽한 ‘핵 민족주의’에 발을 담갔던 INC는 결국, 핵무기와 남아시아 무기 경쟁을 거부하며 1988년 유엔 ‘세계비핵화계획’에 참석했던 소냐 간디의 남편인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뜻을 공식 입장이라고 되풀이해왔다. 그러다 별안간 얼마 전부터 INC는 “인디아가 확실한 핵무기 계획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INC의 ‘유턴’은 오직 민족주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일 뿐이다.” 최근 BJP는 때를 만난 듯 인디아-파키스탄 전쟁 종식과 평화재건을 주장한 INC와 좌파 정당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INC가 느끼는 민족주의 발호에 대한 ‘두려움’은 분별력 부재에서 출발했다. 핵무기 사안을 놓고 타협하는 건 평화적인 유권자들의 지지와 신용을 동시에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INC가 지금 와서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들, 갑자기 광신적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INC에 표를 던질까?

INC는 경쟁적인 선거정치에서 광적인 민족주의에 휘말려 스스로 무덤을 팠고, 그런 INC의 태도는 BJP가 우익 정당들의 중심지가 되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INC는 또 자신들이 지녔던 국민적 인기를 광신적 주전주의와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말았다.

주전론 견제할 만한 정치집단 없어

그렇게 해서 인디아는 5월20일부터 뚜껑을 여는 선거에서 누가 승리를 하든, 2003년 중반부터 겨우 시작해놓은 파키스탄과의 평화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불길함을 안고 달려가고 있다. 반무슬림과 힌두 민족주의로 무장한 호전주의 BJP나 외국 혈통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소냐 간디의 INC 모두에게 전쟁만큼 근사한 민족주의 과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주류 좌파 정당들을 제외하고는 그 광적인 민족주의 주전론자들을 견제할 만한 강력한 정치집단이 없다는 데 인디아의 고민이 있다.

그래서 인디아 시민사회에서는 ‘BJP류’ 민족주의에 대해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시민들의 ‘울음’이 필요한 계절이라고 말하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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