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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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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게임

심판이 오심에 불만이 많지만… 기계에 판단 맡기지 않는 인간의 놀이터로 남길
등록 2016-03-26 22:55 수정 2020-05-03 04:28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가 펼친 일주일간의 바둑 전쟁은 더 이상 사족을 다는 것이 미안해질 만큼 숱한 화제를 남기고 끝났다. 사람들은 선거철을 앞둔 시점에 의례히 터져나오는 현실의 전쟁위기론보다 인간과 기계가 펼치는 가상의 미래 전쟁에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감정 기복도, 정서적 동요도 없는 알파고의 능력은 충격적이었고, 알파고의 능력치를 알지 못하고 이세돌의 낙승을 예상한 프로기사들은 알파고의 수를 해석하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 세기의 대전 이후 인간계 최고의 아날로그 두뇌 게임이라 일컫는 바둑은 종목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맞닥뜨리고 있다.
측정과 연산장치를 넘어 자가 판단의 영역으로까지 진화하는 기계를 보면서,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야구의 스트라이크 판정과 축구의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해 불만이 많은 스포츠팬이었다.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은 모든 구기종목을 망라하고 가장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가진 룰이다. 기본적인 정의는 있지만, 타자에 따라, 주심에 따라, 리그의 특성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모든 투수와 타자가 불만을 토로하고, 스탠딩 삼진을 당한 타자가 주심과 언쟁을 벌이는 일도 허다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해석과 시각의 차이에 불과한 이 스트라이크 판정은 야구 경기를 진행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가 되지만 여전히 주심의 육안에 그 판단을 맡기고 있다. 현대의 프로야구 중계 기술은 매 공마다 스트라이크존 통과 여부를 판정해내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모든 경기에서 주심의 성향에 선수들이 맞춰가며 경기가 진행되고 마무리된다는 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축구의 오프사이드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구성하는 모든 원리의 시발점이 되는 가장 엄격한 규정이다. 하지만 ‘공이 발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공을 받는 선수의 위치’를 동시에 인지해내야 하는 이 규정은 축구에서 가장 잡아내기 어려운 파울인 동시에 가장 오심 논란이 잦은 규정이기도 하다. 현대 축구 중계의 초고속 카메라가 수많은 오심을 제보(?)해주며 중계진을 당황시키거나 팬들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축구 경기도 여전히 부심의 눈에 이 모든 판단을 일임하고 있다.
야구와 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도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항의와 결정적 오심으로 승패가 뒤바뀌는 오프사이드 판정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판단을 기계에 맡기라는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말은 인간의 게임은 인간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오심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인류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저항선에 대한 선언으로 보인다. 오심을 인정하거나, 오심이지만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야말로 최후까지 남아줄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기계가 인간의 그라운드를 집어삼키기 전에, 인간의 눈과 판단으로 진행되는 스포츠는 오랫동안 인간들만의 놀이터로 남아주길 바란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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