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0일,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축구 본선 출전권이 달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한국은 이미 준결승전 승리로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확보해 목표를 달성한 상태였으나, 일본이 기다리고 있는 결승전은 자동적으로 선수들에게 목표의 초과 달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결과는 2 대 0으로 앞서던 한국이 후반 막판에 무너지며 일본의 3 대 2 대역전승으로 끝났다. 일본에는 드라마였고, 한국에는 대참사였다. 후반전 일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일반적인 한국인의 탄식과 함께 ‘스포츠 관람용 욕설’을 난사하고 있었다. 어떤 스포츠 종목을 망라하고 일본에는 지면 안 된다는 것이, 특히 이런 드라마의 조연이 되면서 지면 안 된다는 것이 한국 스포츠팬의 심리다.
‘역대 최약체’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올림픽 출전권 확보라는 최우선 목표를 달성하고도, 결국 일본과의 결승전 패배 탓에 귀국길의 선수단은 웃지 못했다. 마치 올림픽 출전권은 당연히 따는 것이라는 양, 목표를 달성한 선수들에게 일본전 패배에 대해 원망하는 팬들의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인상적인 것은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다. “만약 최종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경기였다면 2 대 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에 안정적인 수비 전술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준결승 승리로 이미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라 결과에 대한 부담이 덜한 경기였고, 전반전을 2 대 0으로 끝내고 나니 이번 기회에 일본에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싶었다.” 한국의 어떤 감독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다. 신태용은 한일전에 단순한 1승을 추가하는 것보다, 압승의 역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원망이 옅어지니 신태용 감독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사실 한일전에서 1승을 더 추가하고 말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한일전에서 1승을 더했다고 더 강팀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며, 세계가 최종적인 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비난과 실패가 두려워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결과만 따내려던 역사에서, 한 번쯤은 이렇게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을 때) 모험적인 경기 운영으로 압승의 기억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다시 그 경기를 되돌아본다. 후반 막판 내리 3골을 내주며 현대 축구에서 보기 드문 대역전패를 허용하긴 했지만, 후반 20분까지의 한국팀은 경이적이었다. 완벽하게 중원을 지배하고 쉴 틈 없이 짧고 정교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일본의 문전을 농락했다. 수많은 추가 골 찬스에서 1골만 더 들어갔더라면 이 경기는 길이 남을 압도적인 승리의 역사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1골만 더 들어갔다면’은 축구에서 가장 부질없는 가정이고, 후반 마지막을 기다려온 일본의 공격 카드는 한국의 급속한 체력 저하와 맞물리며 일본에 완벽한 역전승을 선물했다. 그러나, 역대 어떤 연령별 대표팀을 불문하고 일본을 상대로 가장 완벽하고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후반 20분까지 한국팀의 경기력은 한국 팬들이 충분히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했다.
불과 2개월 전, 우리는 일본 대표팀에게 9회 말 4점을 뽑아내며 기적의 역전승을 일궈낸 한국 야구에 열광한 바 있다. 일본 대표팀은 무적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를 일찍 강판시킨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대역전승을 거두었지만, 우리에게 일본의 선발투수 오타니가 남긴 인상은 강력했다. 이번 축구 결승전에서 후반 20분까지 한국 축구 대표팀은 우리가 오타니에게 느꼈던 동일한 공포를 일본팀에 안겨주었다. 물론 오버 페이스로 대역전패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한국팀이 후반 20분까지의 경기력에서 체력마저 뒷받침되었다면 일본팀에 지옥 같은 시간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어떤 종목에서든 영원히 서로 드라마를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허무하게 무너진 마지막 25분은 뼈아프지만, 상대를 압살해버렸던 그 전의 65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신태용이 우리에게 선물해주려던 압승의 역사, 우리가 한일전에서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승리에 대한 도전. 나는 신태용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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