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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눈’ 사건의 역사

등록 2012-02-25 14:04 수정 2020-05-03 04:26
스페인 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신문광고에서 두 둔을 벌리는 포즈를 취한 모습. <가디언> 캡처.

스페인 농구 대표팀 선수들이 신문광고에서 두 둔을 벌리는 포즈를 취한 모습. <가디언> 캡처.

얼마 전 미국 애틀랜타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국인 고객이 주문한 커피 컵에 손님의 이름 대신 ‘찢어진 눈’을 그려넣어 논란이 됐다. 찢어진 눈 모양은 오랫동안 지속돼온 아시아인 비하의 상징이다. 불과 10여 일 전 뉴욕의 파파존스에서 한국 여성의 주문을 받은 영수증에 ‘찢어진 눈의 여성’(lady chinky eyes)이라고 기입한 사건이 일어났던 터였다.

스포츠계에도 ‘찢어진 눈’ 사건은 흔하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페루 카를로스 바살라르와 토고 라라웰레 아타코라 선수는 각각 한국과의 예선 1·3차전에서 골을 넣은 직후 눈 찢기 세리머니를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스페인의 스포츠전문지 에는 스페인 농구대표팀이 웃으며 양쪽 눈을 잡아당겨 가늘고 길게 표현한 광고가 실려 전세계적 비난을 받았다.

스페인은 유독 인종차별 문제에 둔감한 대응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2004년 스페인의 대표팀 코치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티에리 앙리에 대한 인종 비하 발언을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스페인 축구연맹에 벌금을 부과하고 경고를 내렸다. 2008년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에서는 자국 선수 페르난도 알론소의 경쟁 상대인 흑인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에게 관중이 ‘puto negro’ (f××king black), ‘negro de mierda’(black shit) 같은 심한 욕설을 던졌다고 한다.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경우 스페인의 그랑프리 경기 개최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최근에는 리버풀 소속 선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2월1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25라운드에서 파트리스 에브라가 청한 악수를 거부해 팬들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수아레스는 지난해 10월 경기 중 에브라에게 흑인 비하 발언을 10회 이상 한 혐의로 8경기 출전 정지를 당한 뒤라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버풀의 케니 달글리시 감독은 적극적으로 수아레스를 감쌌으며 구단 차원의 대응도 물론 없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수아레스가 다시는 리버풀에서 뛰면 안 된다며 직설적으로 비난했고, 존 반스의 일을 언급해 역사적인 맥락을 짚었다. 반스는 1987년 리버풀 입단 전 리버풀 팬들에게 입단을 거부한다는 편지를 받았고, 입단 뒤에도 경기 도중 바나나 세례를 받는 등 차별을 당했던 흑인 선수다. 그러나 이후 리버풀은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쳐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퍼거슨 감독이 반스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수아레스와 에브라의 개인적 반목으로 여겨지던 사건은 리버풀의 인종차별 옹호 문제로 확대됐고, 당당한 태도를 취하던 리버풀은 전세계 팬들의 이목을 의식해 결국 홈페이지에서 공식 사과를 표했다. 수아레스는 퇴출 위기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참고 http://blanc.kr/624, 2월14일치 기사 ‘리버풀은 왜 고개를 숙였나… 인종차별과 자본의 함수관계’

김지현 작가

*‘판다의 시시콜콜 스포츠사’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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