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에서 역공으로 돌아선 한나라당, 보수 정권에 대한 공격까지 생각해야 하는 ‘반이명박’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해석이 제각각이다.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애초 검찰에 건 신뢰의 차이도 컸다. 그래서 검찰이 12월5일 발표한 ‘BBK 사건’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명박 후보와 다른 후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열나흘 뒤에 있을 대선 개표 결과 공개나 마찬가지 순간이었다. 결국 검찰이 대선판을 결정했다.
1년여 동안 줄기차게 했는데…
“작금의 후보들이 한국 검찰보다 범죄자의 말을 더 믿는 세상이 됐다.”(이명박)
“오늘 대한민국 검찰은 정치검찰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정치적 경호실로 전락했다.”(정동영)
“과연 우리 국민이 검찰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국민 의혹을 전혀 풀지 못한 발표다.”(이회창)
“검찰의 수사 결과를 단 한 글자도 인정할 수 없다.”(문국현)
“핵심 피의자(이명박)에 대한 단 한 차례의 소환 조사 없이 발표한 검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국민은 없을 것이다.”(권영길)
“검찰의 판단과 국민의 판단은 명백히 다르다.”(이인제)
1 대 5였다. 검찰의 ‘면죄부’를 받은 이명박 후보 이외엔 어느 정치 세력도 검찰의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사 결과를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은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 반이명박’의 전선을 형성했다.
국민들도 둘로 나뉘었다. 크게 쏠린 건 아니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여론이 믿는다는 여론보다 많았다. 국민의 절반은 검찰이 이 후보를 ‘무혐의’ 처리했음에도 이명박 후보가 ‘BBK 사건’과 무관하다거나, 단순한 피해자로 보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검찰의 결론과 상관없이 반이명박 정서를 더욱 굳히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정치권은 이런 반이명박 정서 위에 올라탔다.
반대로 이명박 후보는 BBK 의혹에서 거의 완벽하게 탈출했다. 불안감을 털어내고 지지층을 굳히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의 단합도 강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선 전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할 기회’가 사라졌다. 정몽준의 입당과 김종필의 지원 등 외부의 줄서기도 밀려들었다.
‘BBK 공방’을 단순한 정치 공방만으로 치부할 순 없다. 물론 대선의 마지막 역전 카드로서 기대감을 지녔던 정치세력들에겐 검찰의 발표는 분명 큰 상실감이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언론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BBK 사건’에 이 후보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BBK 국감’으로 치르다시피 했다. 그런데 1년여 동안 줄기차게 제기된 의혹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무혐의 결정과 함께 이 후보와 관련된 의혹을 100% ‘클리어’(해소)해준 것을 대통합민주신당이 쉽게 받아들일 리 없다. 대선 주자 가운데 정동영 후보의 반응이 가장 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 효과나 결과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을 ‘BBK 특검법’을 추진하는 데 정치적 계산을 넘어서 이런 부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공방으로 흘러가다 투표일 될 것”
대통합민주신당은 수사 결과 발표 바로 다음날 김경준씨를 접견했다. 그리고 한글판 이면계약서뿐 아니라 BBK 실소유주 의혹, 검찰이 김경준씨를 회유했다는 메모 등에서 김씨의 진술은 검찰의 발표와 모두 다르다고 밝혔다. 전날 이회창 후보 법률지원단장인 김정술 변호사가 김씨를 접견한 이후 발표한 내용과 똑같았다. 이를 통해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물론 검찰은 재반박했다. 이후 며칠째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과 공방을 벌여야 했다. 국회 법사위에선 특검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나라당과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특검법 통과는 한나라당이 수용할 확률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합민주신당은 12월7일 임채정 국회의장을 찾아가 법사위를 건너뛰어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나라당은 느긋하게 앉아 승리를 즐기진 않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의 BBK 방어에서, 이제 역공으로 돌아섰다. 이명박 후보는 12월6일 첫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대한민국 검찰 누가 임명했습니까? 정동영 정권,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들을 믿지 않는다면 혹시 북조선 검찰이 와서 조사했다면 믿겠습니까?”라며, 검찰의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않는 세력을 비난했다. 당 차원에선 ‘공작정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후보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남은 선거 기간에 김경준의 송환 과정을 여권의 정치 공작으로 몰아가겠다”며 “그러다 보면 공방으로 흘러가다 투표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언론도 이에 가세했다. 박세환 한나라당 의원은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김경준씨를 면회해 여러 거래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공작정치와 흑색선전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반박해야 했다.
한나라당이 공세적인 대응으로 나서는 까닭은 대선 이후를 고려한 때문이기도 하다.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은 이 후보의 BBK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최대한 씻어내야 집권 이후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12월8일엔 “이명박이 김경준에게 사기당한 것이 아니라, 도곡동 땅을 25억원에 사서 포스코에 압력을 넣어 250억원을 만들고 그 돈으로 주가조작의 종자돈을 만든 것”이라고 발언한 이해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정동영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BBK 사건으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주고받은 고소·고발 건은 10여 건에 이른다.
‘반이명박’ 하나될 수 있나
BBK 수사 결과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발표되면서, 대선은 ‘이명박이냐 아니냐’의 구도가 한층 뚜렷해졌다. 반이명박 진영은 겉으로는 ‘반부패’란 공통어로 연대도 모색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BBK에 대한 이해와 ‘반이명박’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중심당·민주노동당·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창조한국당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결코 유기적으로 화합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게 반이명박 전선이든, 아니면 반부패 세력 연대든 어느 쪽으로 외형을 갖추기도 어렵거니와 거기서 어떤 ‘힘’이 나올 수도 없다. 다만 각자 이 후보에 날을 더욱더 세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호소할 뿐이다.
BBK 사건의 수사 결과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은 대선 때까지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 다른 새로운 쟁점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방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도 강도는 훨씬 낮아지겠지만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김경준씨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지금의 여당이 새롭게 출범할 보수 정권의 도덕성을 공격할 소재로서 활용할 ‘가치’가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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