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분석으로 탐구해 본 유로2004와 한국축구의 유기적 패스연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처럼 한 선수에게만 의존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어
▣ 이제구/ 보스턴 칼리지 경영학 박사과정 jegoo.lee@bc.edu
‘박주영 신드롬’은 정말 대단하다. 박 선수는 국가대표로는 처음 뛴 두 경기 모두에서 골을 넣어 일약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곧 벌어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이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밝게 해주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수 아래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대표팀간 경기에서 박 선수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축구의 벽이 그만큼 높다고들 한다. 그 높다는 세계 축구의 벽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유럽의 변방’ 그리스는 어떻게 우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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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의 흐름은 유럽 축구에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는 세계 축구의 새로운 판도를 알려줬다. 더구나 이 대회에서 유럽 축구의 변방에 머물던 그리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애초 그리스의 우승 확률은 150 대 1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다 할 스타 선수도 없었고, 세계 랭킹 순위는 한국보다도 한참 아래였다. 이런 그리스가 유럽 축구를 평정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2002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이변이다. 그리스는 어떻게 그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필자는 유로 2004에 참여한 모든 경기를 네트워크 분석으로 탐구했다(상자기사 참조). 각 팀의 패스 구조를 분석한 결과, 패스의 유기적 연결이 팀 성과에 영향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결승전을 예로 들어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수들의 패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팀이 승리했다. 그리스가 그랬다. 반면 포르투갈은 패스 제공권이 한두 선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패스 형태는 단조로웠고 그만큼 상대 팀은 수비하기가 편해진다. 결국 원활한 공격을 하기가 힘들다. 둘째, 공격적 패스 빈도가 높은 팀이 유리했다. 그리스 팀에는 공격적인 전진 패스가 많았지만, 포르투갈 팀에는 소극적인 횡패스 빈도가 높다. 그리스가 수비에 치중했다는 비판과 달리, 오히려 포르투갈이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요약하면 그리스는 유기적 패스 연결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와 원활한 공수 연결을 이뤄 마침내 유럽 축구 정상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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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경기를 모두 이런 방식으로 분석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패스가 여러 선수에 분산돼 있을수록 승률이 높았다(그림 참조). 곧, 스타 선수 한두명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체 선수들이 유기적 패스를 통해서 팀을 활성화했느냐가 열쇠였다. 유로 2004가 끝난 뒤 국내외 축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스피드와 조직력이 세계 축구의 새로운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스피드’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지만 ‘조직력’이란 팀 전체의 역량이다. 조직력이 좋다는 말은 패스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니던가. 결국 패스의 유기적 연결이 관건이었다.
동료들의 도움 없으면 스타도 없다
박주영 선수가 대표팀 경기를 끝내고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형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박 선수 말대로 대표팀에서 그는 걸출한 선배와 동료들의 지원을 받은 덕에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대표팀에서는 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니 상대팀은 박 선수를 집중 수비했을 것이다. 박 선수가 뛴 한국대표팀의 모습이 유로 2004 결승전에서의 그리스와 같다면, 청소년대표팀의 모습은 같은 경기의 포르투갈과 같았을 것이다(청소년대표팀에서 박 선수의 위치도 중앙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대표팀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두 선수에 대한 의존은 상대팀에게는 ‘수월한 수비’를, 우리 팀에게는 ‘부실한 패스 구조’를 낳은 것이다. 결국 박주영 선수에 의존하기보다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 협력을 해야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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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국제네트워크학회에서 이 결과를 발표하자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보였다(역시 축구는 대단한 스포츠다.) 특히 스타덤과 조직 성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스타 인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타 인재에게만 의존하거나 동료들의 도움이 부족한 경우, 스타들은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유기적 네트워크는 하나의 스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동료들의 도움 없이 스타가 돋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쇠는 ‘유기적 협력’이다.
학회에서 만난 몇몇 유럽 학자들은 한국의 2002 월드컵 4강도 같은 이유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한국 속담을 공부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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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와 네트워크 |
네트워크 분석(또는 사회연결망 분석)은 사람이나 사물의 연결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다. 특히 직위나 직함 같은 공식 관계 못지않게 친구나 대화모임 같은 비공식 관계에서 비롯하는 창발성에 관심을 둔다.
아래 그림은 유로 2004 결승전에서 그리스(파란색)와 포르투갈(빨간색)의 패스 네트워크를 나타낸 것인데, 원은 선수를, 선은 패스를 가리킨다. 선수들의 위치는 위로부터 공격·허리·수비·문지기 순이다. 그리스는 4-3-3, 포르투갈은 4-2-3-1 형태의 전술 진영을 썼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전술 형태가 바로 공식적 관계다. 반면 패스로 이루어진 연결관계는 경기마다 상황마다 다른 유동적 관계다. 따라서 패스 네트워크를 보면 경기장에서 일어난 생생한 관계를 알 수 있다. 아래 패스 네트워크를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원의 크기가 클수록 패스가 집중된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경우 여섯개의 큰 원이 양쪽 수비, 허리, 공격에 자리한다. 곧 패스가 이 여섯명에게 고루 집중된 것이다. 포르투갈의 경우 두개의 큰 원이 공격과 허리에 각각 하나씩 자리한다. 허리의 이 두 선수에게 패스가 집중된 것이다. 패스가 집중된 선수에 대한 전체 팀의 의존도는 그리스의 경우 9.7%, 포르투갈의 경우 15.9%였다.
둘째, 선의 굵기는 바로 패스의 빈도다. 그리스에는 굵은 선이 주로 수비나 허리에서 공격에 이르고 있다. 포르투갈에는 굵은 선이 주로 수비와 허리간 이루어졌다. 언뜻 포르투갈이 중앙을 장악한 것 같으나, 패스가 소수에 집중됐고 주로 횡적 패스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소극적이고 수비지향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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