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유럽 축구계에 등장한 첼시의 갑부 구단주… 왜 돈을 물쓰듯 쓰고도 성적은 초라했나
한준희/ 문화방송 유럽축구 해설위원
〈CNN〉의 테드 터너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소유한 바 있고,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이 LA 다저스의 소유주임을 감안한다면 ‘스포츠’와 ‘거부’의 연결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축구 클럽을 ‘지역 공동체 모두의 유서 깊은 자산’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강한 유럽 축구계는 클럽을 쥐락펴락하는 1인의 존재를 반기지 않아왔다. 루퍼트 머독이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들(사실상의 소액주주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던 스토리는 대표적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은 변함없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슈가 대디’(Sugar Daddy)가 필요하지 않다”고 외친다. 하지만 축구계 최고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불황에 휩싸인 최근의 유럽 축구계에서 어쩌면 ‘예외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집단일지도 모른다.
‘슈가 대디’를 찾는 클럽들
90년대 이후 유럽 축구계에서는 선수들의 이적료와 연봉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1990년 로베르토 바지오가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 옮길 당시의 이적료 신기록은 770만파운드에 불과(?)했으나, 2001년 레알 마드리드가 유벤투스의 지네딘 지단을 데려오는 데 사용한 이적료는 무려 4600만파운드를 호가한다. 다른 분야의 경제 지표를 감안하면, 극심한 ‘인플레’인 셈이다. 90년대를 전후해 유럽 축구계에 뛰어든 몇몇 ‘슈가 대디’들이야말로 인플레에 ‘자발적으로 공헌’(?)한 장본인들임이 틀림없다. 그들 중 일부는 그 인플레에 ‘부메랑’을 맞기도 했다. 선수들의 금전에 대한 눈높이, 스타 영입에 대한 서포터들의 기대 심리는 한껏 높여놓은 반면, 예기치 못했던 중계권료 하락, 입장수입 감소 등에 직면해 적지 않은 클럽들이 산더미 같은 부채를 안게 됐다.
이러한 문제는 유럽 축구계 전체로 번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대형 클럽들이 선수 영입에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규모가 작은 클럽들이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됐다. 재정이 취약한 작은 클럽들은 ‘선수 방출’이라는 소득 수단마저 상실하는 처지로 몰린 까닭이다. 따라서 매우, 매우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의 유럽 축구계는 다시 한번 ‘새로운 슈가 대디’들을 갈구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1986년부터 AC밀란을 맡아온 ‘슈가 대디’의 선구자 격인 미디어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최근 “이탈리아 클럽에 투자하는 러시아 기업 환영”의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는 또 10여 개월 만에 유럽 축구계 전체에 ‘회오리 바람’을 몰고 온 한 사나이에게서 영향받은 것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의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호화로운 스타일의 축구 클럽임에도 불구하고, 첼시는 지난해 7월 초까지만 해도 9천만파운드를 넘는 천문학적 부채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36살의 러시아 거부의 등장은 첼시의 암담한 현실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은 물론, 삽시간에 첼시를 세계 축구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자금력을 지닌 클럽으로 재탄생시켰다. 거의 모든 클럽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구단주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대’에 가까운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클럽이 등장한 것이다.
첼시 인수 당시 아브라모비치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2위의 갑부였으나 이후 1위에 해당하던 미카일 코도르코프스키가 러시아 당국에 의해 구금돼 현재로선 ‘자유롭게 활보하는 러시아 최고의 갑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옐친 치하에서 급성장한 대표적 ‘올리가키’(Oligarchs·신흥재벌)인 그는 몇달 전의 포브스 집계에서도 세계 부자 순위 25위에 등극했다. 축구계 인사 중에는 베를루스코니마저 따돌리며 세계 1위. 현 집권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구주류 재벌’에 대한 강공 드라이브 속에서도 아브라모비치는 푸틴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줄타기’에 성공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첼시 인수를 통한 서방 스포츠계 진출은 러시아의 상황에 따른 정치적, 실리적 계산에다 축구에 대한 그의 개인적 관심이 복합돼 나타난 결과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다음 시즌의 첼시, 무엇을 이룰까
첼시 구단주에 등극한 아브라모비치는 역시 즉각적인 ‘머니 파워’를 발휘했다. 첼시는 지난해 여름에만 약 1억1100만파운드의 이적료를 뿌렸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다시 1천만파운드 근방의 이적료를 추가 투입했다.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의 선수 영입이었다. 실로 영입 선수 목록의 ‘화려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크레스포(이적료 1680만파운드)와 플레이메이커 베론(1500만파운드)을 거금을 들여 영입했고,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수비형 미드필더 마켈렐레(1600만파운드)를 빼앗다시피 했다. 아드리안 무투(루마니아·1580만파운드), 대미언 더프(아일랜드·1700만파운드), 조 콜(잉글랜드·660만파운드) 등 세계 축구계의 신성들도 줄을 이어 첼시로 향했다. 같은 시기에 ‘지구 방위대’로 불리는 스타군단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영입이 베컴(2500만파운드) 정도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의 영입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화려한 멤버에 초호화판 영입까지 더해져 첼시는 후보 선수들만으로도 세계 정상급 클럽에 버금가는 팀을 만들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게다가 최근에는 호나우두, 베컴 영입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아브라모비치 도착 이전 프리미어리그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괜찮은 팀’이었던 첼시가 일약 놀라운 클럽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전력 상승에도 불구하고 첼시는 ‘쓸 돈이 그다지 많지 않은 클럽’ 아스날의 벽을 프리미어리그에서 끝내 넘지 못했으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도 규모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AS 모나코에 패했다. 잉글랜드 제패와 유럽 정복의 꿈이 좌절된 것이다. 야심적으로 영입했던 선수들 가운데 일부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거나 부상을 입었던 것이 첼시에겐 뼈아픈 일이었지만, 더 근본적으로 스포츠에서 오로지 돈만으로 단숨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상식’이 통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브라모비치는 올 시즌을 통해 그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금력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요령’은 물론, 돈에 ‘다른 무엇’이 추가돼야 스포츠에서 영광을 이룰 수 있는가를 깨달았을 법도 하다. 바로 이것이 다음 시즌의 첼시를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지금 아브라모비치는 첼시를 이끌어갈 승부사 기질 강한 새로운 감독부터 영입할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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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4대 빅리그(스페인·이탈리아·잉글랜드·독일) 소속이 아닌 팀들이 만났다. 포르투갈리그의 FC 포르투와 프랑스리그의 AS 모나코가 그 주인공이다.
포르투갈 1부 리그의 전통적 삼두마차(벤피카·스포르팅·포르투) 가운데 90년대 이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포르투는 1987년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우승 이후 17년 만에 정상 고지에 도전한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컵을 거머쥐었던 포르투가 만약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연이어 제패한다면 이는 리버풀(1976·1977) 이래의 두 번째 기록이 된다. 그리고 ‘2년 연속 3관왕’(포르투갈리그·포르투갈컵 포함)이라는 희대의 업적 또한 여전히 가능한 상황이다.
작은 나라 모나코의 클럽으로서 프랑스 1부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AS 모나코에겐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이다. 모나코의 유럽 클럽대항전 결승전 진출은 1992년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베르더 브레멘에 패한 이래 12년 만이며,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세 번째 만에 이뤄낸 결승행 쾌거다.
올 시즌 이 두 클럽의 결승 조우는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이른바 빅리그의 강팀들이 아니더라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음을 증명했다. 포르투는 16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4강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스페인)를 끈끈한 승부 끝에 눌렀고, 모나코는 8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4강에서 첼시(잉글랜드)를 화끈하게 무찌르고 올라왔다.
두 팀에는 녹록지 않은 선수들을 짜임새 있게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젊은 감독들이 있다. 이들의 힘이 두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르투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뤄낸 뒤 다른 곳(아마도 첼시)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조세 모우링요, 그리고 선수 시절의 영광을 감독으로서도 이어가고 있는 디디에 데샹이 그들이다. 만약 모나코가 우승한다면 데샹은 미구엘 무뇨즈,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요한 크라이프, 카를로 안첼로티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사나이로 남게 된다.
두 팀이 올 시즌 펼쳐온 내용은 약간은 차이가 있다. 단순하게 말해 포르투가 좀더 안정적이고 영리한 경기 운영에 능한 반면 모나코는 화끈한 득점력이 강점이다. 포르투는 코스팅야와 마니세의 중원 장악을 바탕으로 데코의 재기 넘치는 플레이, 그리고 카를로스 알베르토와 델레이의 폭넓은 움직임을 앞세운다. 모나코는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와 다도 프르소라는 무게감 있는 공격수들을 위해 역동적인 재간꾼 루도비크 지울리와 크로스의 명수 제롬 로텡이 확률 높은 어시스트를 공급한다. 전 세계 축구팬을 열광으로 몰아넣을 결승전은 오는 5월27일 독일 켈센키르헨의 아레나 아우프샬케에서 단판 승부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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