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그는 오늘도 좌불안석이다. 여자친구가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분명 퇴근했을 시간인데, 두세번 전화해도 응답이 없다. 순간 ‘혹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맞아. 지난번에 회사 동료랍시고 같이 퇴근하던 사람과 유난히 친해 보이던데, 혹시 둘이 만나고 있는 거 아냐?
의심은 이내 확신으로 바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화가 치민다. 몰래 알아둔 비밀번호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이런 짓 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한참 뒤에 전화를 해온 여자친구에게 이죽거리다가 결국 화를 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 어디서 뭘 했느냐 닦달을 해대자, 처음엔 미안하다던 여자친구도 화를 냈다. 헤어지느니 마느니 한바탕 난리를 치고 휴대전화를 집어던지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니 후회가 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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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의심이다. 의처증, 의부증 같은 의심병이 심해지면 망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냥 한번쯤 의심이 드는 정도면 괜찮은데, 의심이 드는 순간 그걸 기정사실화하고 아예 소설을 쓰니 문제다. 보고 싶었다고 하면 딴 짓 하고 나서 괜히 나 안심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훔쳐보기도 하고, 몰래 지갑을 열어 카드 영수증을 살펴보기도 한다. 심하면 속옷을 뒤집어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치료도 잘 되지 않는다.
의심이 드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병적인 의심은 대개 선천적이다. 순식간에 떠오르기 때문에 이성으로 막기는 힘들다. 문제는 섣부르게 단정짓고 난 뒤에 생기는 후유증이다. 충동적으로 폭언하거나 계속 따지고 추궁하고 닦달하는 것. 그런 행동은 부메랑처럼 내 손해로 돌아온다. 그래서 막아야 한다.
의심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 잘못돼 있다. ‘여자친구가 전화 받기 어려운 곳에 있나보구나’ 이렇게 해석하면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모종의 비밀이 있다고 해석하면 의심은 증폭된다. 자신의 해석이 ‘맞는 생각인가?’를 확인한다. 여자친구가 전에도 이중으로 교제한 적이 있다면 내 해석이 맞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의심이 사실일 근거와 사실이 아닐 근거를 죽 꼽아보자. 대개 머릿속에서 자가발전된 망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게 이익이 안 되는 의심은 과감히 버린다. 의심 많은 사람은 사실 외로운 사람이다. 자신감도 부족하다. 그런 와중에 의심으로 대인관계마저 망쳐버리면 갈 곳이 없어진다. 의심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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