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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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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질병’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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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자살이 뉴스가 되지만, 이번만큼 많은 사람의 연민을 불러일으킨 사건도 드물었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로서 병원에서 입원치료까지 권유했는데 발길을 돌렸던 게 안타깝고, 개인적으로는 영화 <오, 수정>에서 보여준 그의 재능이 안타깝다.

그는 해가 지면 잠들지 못해 괴로워했고, 해가 뜨면 검게 몰려든 우울의 먹구름에 시달렸던 듯하다. 사람들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물어본다. “우울증이 그렇게 흔한가?” 그렇다. 여성 6명 중 1명이 평생 한번 이상은 우울증을 앓는다. 남성은 그보다 적지만, 그래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흔하다. 세계에서 가장 흔한 질병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이런 질문이 따른다. “그게 병인가?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역시 그렇다. 살다 보면 우울한 때가 있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했거나 입시에 실패했다면 우울해진다. 이땐 우울한 게 정상이다. 문제는 특별한 일이 없는데 갑자기 잠도 안 오고 식욕이 떨어지거나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의욕을 잃는 상태가 몇주, 몇달을 지속한다는 거다. 그건 우울증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그렇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45분마다 한명씩 자살한다는데, 70% 이상은 우울증 환자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막상 목숨을 끊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병적인 상태가 되니까 모진 행동도 하는 것이다. 자살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울증을 제때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되는데, 왜 그리 정신이 약하냐?” 이런 말은 우울증 환자를 두번 죽이는 소리다. 자기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병이 아니다. 질병은 개인의 자질이나 인격과는 관계가 없다. 우울증이 ‘마음의 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영혼이나 도덕성에 병이 생긴 것으로 오해한다. 차라리 ‘뇌’의 병이라고 하는 게 낫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우울증은 뇌의 신경에 이상이 오는 질병임이 이미 밝혀졌다. 혈당을 분해하는 호르몬이 부족하면 당뇨병이 오듯, 의욕이나 관심, 정서를 조절하는 뇌신경에 이상이 오면 우울증이 온다. “우울증도 약 먹으면 좋아지는가?” 당연히 그렇다. 약으로 고장난 뇌신경을 바로잡는 원리다. 마지막 질문. “그런데 정신과 약 먹으면 중독되는 거 아니냐?” 답답한 노릇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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