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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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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겨자 먹기식 ‘저가 수주’

빅3에도 같은 부실 원인 존재
등록 2014-04-16 17:06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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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TX조선해양은 이미 수주한 선박 50여 척에 대한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 2012년 하반기 이후 수주한 선박의 가격이 원가보다 낮아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국제 조선해운 시황을 분석한 ‘클락슨 리포트’를 보면, STX조선해양의 수주잔량(남은 일감)은 지난해 12월 81척에서 올해 2월 57척까지 줄어든 상태다.

‘저가 수주’로 문제가 된 배들은 영국 선사 BP시핑으로부터 수주한 탱커선 13척(7500억원 규모)과 캐나다 티케이탱커스로부터 수주한 탱커선 4척(2천억원 규모) 등이다. STX조선해양의 채권단 쪽은 회사가 내부 견적에 견줘 상당히 낮은 가격에 이 배들을 수주했다고 본다. STX조선해양은 그동안 재무 상황이 악화되면서 자금 융통을 위해 낮은 가격에라도 일감을 확보하려 했다. 저가 수주된 배들은 건조 과정에서 비용이 더 들게 돼 나중엔 제 살을 깎아먹게 된다.

여기에 더해 조선소가 뱃값을 받는 방식이 ‘헤비테일’로 바뀐 것도 STX조선해양의 자금 사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해운사들이 배를 발주하면서 선박 대금을 20%씩 나눠서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은 최근엔 해운사들이 선박대금을 초기에 적게 주고 나중에 한꺼번에 치르고 있다. 조선소로서는 운전·건조 자금의 압박을 받게 되고 금융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STX조선해양의 경우엔 건조 뒤에 뱃값의 대부분을 받는 방식(10:90)으로 수주한 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는 저가 수주를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하는 파도로 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으로 전세계의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가 감소했고, 조선소들이 수주 경쟁을 벌이면서 뱃값이 떨어졌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조선소를 놀릴 수도 없고, 우선 일감을 확보해 생존하기 위해선 손해를 보더라도 수주를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저가 수주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STX조선해양만이 아닌 한국 조선업 전반의 고민거리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이른바 조선 ‘빅3’ 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자세히 드러난다. 현대중공업 조선 부문은 지난해 매출액이 17조원을 넘었지만, 영업이익은 ‘고작’ 125억원에 그쳤다. 매출액은 2011년 19조698억원에서 1조6500억원 정도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11년(2조5001억원)에 견줘 2조원 넘게 사라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2011년(1조887억원)에 견줘 반토막 난 4409억원에 그쳤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9142억원으로 다른 업체보다는 선방했지만, 올 초 삼성그룹의 경영진단을 받는 등 수익성 악화에 따른 고민이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모두 해양플랜트 등을 건조하면서 들어간 비용이 예상보다 커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업계는 금융위기로 상선 발주가 줄어들자, 원유·가스 시추설비 등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는 데 공격적으로 뛰어든 바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2011년과 2012년에 저가 수주한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해양플랜트도 조선소들이 건조 경험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익성을 당분간 높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론 저가 수주 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선소는 경기가 좋아졌을 때 선박 계약을 ‘싹쓸이’할 기회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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