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의 오래된 물건] 내 외로움의 동반자, 색소폰

등록 2007-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성택 대전시 중구 용두동


굳이 이런 얘기까지 밝히긴 뭣하지만, 나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딸과만 살았다. 지나온 세월 동안 ‘외로움’과 ‘가난’이란 이중주의 악재에 시달리면서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아까운 딸을 봐서라도 항상 착하고 성실하게 살자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럼에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허구한 날 때에 맞춰 몰려오는 밀물과도 같은 외로움. 밤마다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정말이지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재학 당시 밴드부에서 배웠던 가락을 재원으로 하여 색소폰을 샀다. 요즘엔 ‘색소폰 3개월 단기 완성-○○음악학원’이란 광고가 거리마다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내게 색소폰은 선배들에게 북처럼 맞으며 배운 어떤 ‘예술의 장르’였다.

어느 날 새벽, 집에 있던 색소폰을 사무실로 가지고 나왔다. 그러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마구 색소폰을 불러젖혔다. 그러자 쌓였던 이 풍진 세상사의 앙금과 이런저런 스트레스까지 일거에 풀리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 색소폰을 불면서 어린 딸을 키워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면서 그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뜨거워졌다. 비록 홀아비로 외롭고 힘겹게만 살아왔으되 사랑하는 딸을 봐서 정말이지 열심히, 그리고 이를 악물며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날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은 올해 모 대학의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울 아빠의 건강까지 챙길게요!”라는 딸의 말을 들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까지 잡으면 시집을 보내야 할 텐데 과연 딸내미에게 혼수라도 제대로 해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열심히 살면 되지 않겠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나를 보고 어떤 이는 참 멋있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이 구슬픈 색소폰 소리에 실은 슬픔의 심연까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색소폰은 나로서는 슬픔을 대변하는 악기였지만 딸에게만은 그 슬픔을 숨기고자 앞으로도 경쾌하고 즐거운 음악만 연주해주련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