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용 괴자금 170억 전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추정… 증여경위 · 해외유출 검찰수사 박차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재용(40)씨의 괴자금은 과연 전씨의 숨겨둔 재산일까. 전재용씨 괴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함에 따라 그의 은닉 재산이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재용씨의 170억원 괴자금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확신’하고 있다. 재용씨가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고 이규동(전 대한노인회장·2001년 사망)씨한테서 이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였지만, 검찰은 재용씨의 해명을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의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지난 9일 “수사팀은 재용씨의 괴자금이 적어도 이규동씨 자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괴자금의 원출처가 어딘지 곧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명채권 통한 ‘증여’
검찰이 재용씨의 괴자금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보는 근거는 지난 1996년 전씨 비자금 사건의 수사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검찰은 전씨가 1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모은 뒤 880억원에 이르는 무기명채권과 120억원대의 가차명계좌에 보관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특히 전씨의 무기명채권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재용씨의 괴자금이 무기명채권 형태로 숨어 있다가 사채시장에서 ‘세탁’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검찰은 재용씨의 돈이 아버지 전씨한테서 ‘증여’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기명채권은 일반 채권과 달리 제3자에 대한 양도·양수가 현금처럼 자유롭게 이뤄지기 때문에 거액의 ‘검은돈’을 숨기는 데 최적의 수단으로 꼽힌다. 검찰은 무기명채권 형태로 숨어 있던 전씨의 비자금 중 일부가 재용씨에게 넘겨진 뒤 세탁되는 과정을 거치다 꼬리를 밟힌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재용씨는 검찰에서 2000년 말에 이규동씨한테서 직접 170억원을 받은 뒤 2001년 8월 한 차명계좌에 130억원을, 2002년 6월에 40억원을 입금했다고 진술했다”며 “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재용씨 외에 다른 친인척들에게도 흘러들어갔는지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현대비자금 사건 초기에 사채업자들의 조사 과정에서 출처 불명의 뭉칫돈을 발견했는데, 이 돈 중 일부가 전씨 가족과 관련돼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쪽은 검찰의 수사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발하였다. 전씨 비자금 사건 당시 전씨쪽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한 변호사는 “당시 재판에서 전씨의 비자금이 대부분 민정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됐고, 민정당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를 증언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전씨쪽에 따르면 전씨가 재임 때 조성한 2천억원 규모의 비자금은 대부분 민정당의 대선·총선 자금으로 모두 사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씨쪽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서 당시 재판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재용씨가 괴자금의 일부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실제로 재용씨는 정보통신(IT) 관련 업체인 O사와 P사의 미국 현지법인에 각각 60만달러와 40만달러 등 모두 1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는 본사와 별다른 관계가 없고 실적도 올리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사고 있다. O사의 한국법인 관계자는 최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재용씨가 미국에 설립한 회사는 우리 회사와 이름만 같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송금과정 등을 조사해봤지만 불법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탤런트 박씨 소환조사 방침
검찰은 대신 재용씨의 괴자금이 흘러들어간 여성 탤런트 박아무개씨의 계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의 초기 수사과정에서 재용씨의 괴자금이 입·출금된 박씨의 통장을 발견했다. 검찰은 또 재용씨가 무기명채권을 사채시장에서 세탁해 박씨의 어머니 계좌에 입금한 정황도 확보했다. 검찰은 재용씨가 박씨의 계좌를 괴자금 세탁에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재용씨의 조사가 일단 마무리되면 박씨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해 3월 이후 6차례 홍콩과 싱가포르, 일본, 미국 등을 방문한 출입국 기록이 재용씨와 일치해 검찰의 주목을 받아왔다.
검찰은 재용씨가 서울 이태원의 호화빌라(시가 10억원대) 3채와 외국인용 임대주택(6억원) 등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괴자금의 일부를 사용한 것을 밝혀냈지만 별다른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용씨가 괴자금으로 기업어음을 매입하는 등 여러 곳에 투자했지만 재미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용씨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잠적한 뒤 지난 1일 귀국할 때까지의 행적도 관심을 끌고 있다. 재용씨는 이 기간 동안 미국에서 머물며 한국의 유력한 정치인으로 행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 규모가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지난 7년여 동안 전담반까지 구성해 추적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아버지 전씨가 워낙 교묘하게 재산을 숨겼기 때문에 이번 수사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철저한 정치인 비리 수사로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검찰이 ‘5공 청산’ 작업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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