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잠복기간을 거친 중국 출장… 베이징 공기 맡는 순간부터 불안은 증발

중국 현지취재 계획이 확정됐을 때, 개인적으로는 그저 담담했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소심한 나를 자꾸 위축시켰다. “왜 다들 베이징에서 돌아오는 이 시기에, 굳이 그곳을 가려 하느냐”는 일반적인 만류야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국제분쟁 지역만 취재하는 한 선배까지 “위험부담이 너무 큰 거 아니냐”는 의견을 밝힐 때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에게 출장사실을 통보하는 일도 고민이었다. 떠나기 5일 전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베이징 추가 사망자 10명.” 분위기 안 좋으니 내일 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와중에 말하려는데, 앵커가 사스를 들먹인다. “중국 고위지도부도 베이징 탈출.” 결국 미루고 미룬 끝에 출장 이틀 전에야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날의 텔레비전 뉴스들도 꺼림칙한 내용들이었다. “홍콩 보건당국 발표, 사스 치사율 14%.” “국내 사스환자 엿새 만에 또 발생.”
아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베이징도 베이징이었지만, 출장기간이 연휴와 끼여 있었으므로 더더욱. 나는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다른 기자 한명이랑 둘이서 간다. 가면 특파원 선배도 있다” 등등의 이야기로 뭉갰다. 그러면서도 의식의 밑바닥에선 혼돈이 잠복하고 있었나 보다. 떠나기 전 며칠 동안 계속 꿈자리가 사나웠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머리를 치는 생각들. “이거 혹시 가지 말라는 신호 아닌가? 내가 뭐 사스퇴치의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출장계획이 잡힌 것은 4월30일 오후였다. 5월1일부터 5일까지는 중국 연휴라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5월6일 오전에 비자를 급행으로 신청해 그날 오후 비행기를 타는 일정을 잡았다. 취재비자는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 그날 비자를 못 받을 수도 있었다. 기자라는 게 밝혀지면 중국 대사관에서 비자발급을 위한 인터뷰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그날 비자가 안 나온다면, 그건 중국 가지 말라는 계시다. 가지 말자”로 정리했다. 그런데 5월6일 아침 예상 못한 일이 터졌다. 10시까지 비자신청을 해야 하는데, 비자를 들고 가던 여행사 직원이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신청을 못 한 것이다. 여행사쪽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저… 오늘 꼭 가셔야 하나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허를 찔리자, 의외로 내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오늘 꼭 가야 합니다, 꼭!” “불안에 떨지 말고 빨리 가서 광명 찾자!”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실제로 베이징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는 순간부터, 불안은 베이징의 하늘로 휙 날아가버렸다).
서울 마포 홀리데이인서울호텔 맞은편 정류장에서 탄 인천공항행 806-1번 리무진 버스는 ‘나홀로 버스’였다. 기사 아저씨는 “요즘 대개 이렇다”고 설명했다. 사스 때문에 중국뿐 아니라 해외여행 자체를 안 가는 분위기인 듯했다. 그리고 텅텅 빈 비행기. 귀국할 사람들도 다 귀국했는지, 돌아오는 비행기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 하나. 베이징에서 서울로 오는 차이나항공 CA125편 기내. 옆자리 조선족 여자 승객이 머리가 아프다며 나에게 “진통제가 있으면 좀 달라”고 한다. 없다고 하자 승무원을 찾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승무원은 약 대신 체온계를 가져온다. “체온부터 먼저 재라”는 것이다. 황당한 표정의 그 승객은, 체온계를 순순히 몸 속에 넣었다가 빼준다. 정상이다. 그래도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 승무원 왈. “너무 빨리 빼서 그런 것 아니냐. 길게 한번 더 해봐라. 그래야 약 준다.”
베이징=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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