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을 보고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 가운데 하나는 저 사람에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무죄가 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범인 맞는데 증거가 없어 무죄인 경우나 실제 범인이 아닌 경우나 판시 이유는 똑같다.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라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라고 판시한다.
형사재판은 오로지, 검찰이 유죄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reasonable doubt)가 없는지만 판단하면 된다. 따라서 정말 범인인지 여부는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이런 연유로 모든 무죄판결은 결국 ‘증거 없어 무죄’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두번에 걸친 고등법원 무죄판결은 이도행 피고인이 증거 없어 무죄일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명시했다.
첫 번째 쟁점은 화재발생 시각. 이도행이 7시에 병원으로 출근했고, 아파트 경비원과 이웃 주민들이 그 집에서 흰색 연기를 목격한 것이 8시50분. 검찰은 7시 전에 안방 장롱을 반쯤 열고 불을 질러 지연화재를 시도한 것이 8시50분에 흰 연기로 나타날 수 있다며 컴퓨터 모의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험의 전제가 된 조건들이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음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나 배제되었다. 화재소방학회 소속 교수들이 현장과 똑같이 모형을 만들어 재현한 실제실험결과 발화 뒤 수분 안에 장롱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10분이 채 되지 않아 흰 연기가 배출된 뒤 실내 산소부족으로 불이 꺼짐을 확인했다. 그 결과 법원은 화재발생 시각을 “08:30~08:40”으로 보았다.
그 다음으로 시강, 시반, 위음식물로 보아 언제 죽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가에 관해 수년의 재판기간에 치열한 법의학적 논쟁이 있었다. 사람 몸은 죽은 뒤 점점 굳어졌다가 다시 풀어지는데, 굳은 정도로 보아 사체검안으로부터 7~8시간 전인 새벽 3~4시라는 것이 검찰쪽 법의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37~42℃ 안팎의 더운물에서는 사체의 강직·소실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외국의 여러 법의학자들은 “7시 이전에 죽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7시 이후에 죽었다는 것은 아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
그 다음 쟁점은 죽 문제였다. 전날 밤 9시께 처가 당근·시금치를 썰어넣은 죽을 먹었는데 위에서 쌀 알갱이는 나왔으나 당근 알갱이는 없었다. 변호인쪽에서는 죽은 사람이 전날 밤 먹은 당근죽은 소화돼 없어졌고, 아침에 밥을 먹었다는 증거라고 추궁하자 검사는 관련증인을 세번 네번 불러 당초 증언을 번복시켰다. 당근·시금치를 썰어 끓인 뒤 체로 걸러내고 국물만으로 죽을 썼노라고. 나중에 한 TV에서 당시 국 만든 과정을 재현시키자 증인은 당근·시금치를 그대로 넣은 채로 쌀을 넣어 죽을 끓이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다.
범인이 거실 커튼줄을 잘라 범행에 썼을 것이라는 검찰 주장 역시 철저히 반증되었다. 검찰은 커튼줄을 잘라냈기 때문에 커튼이 파손돼 아래로 떨어졌다고 주장했으나 같은 현장검증 사진에 커튼이 제대로 걸려 있는 모습이 나오자 이번에는 나중에 복원해 찍은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커튼업자가 법원에 나와 반박당하면 다시 불러 제3의 방식으로 합리화하고 다시 모순이 드러나면 또 불러 말을 바꾸게 하기를 네댓번. 커튼줄은 세줄이 20~30cm 간격으로 매듭지어 묶여 있었는데, 시신에는 한줄만 나 있고 매듭 흔적도 없음이 드러나자 검찰은 피고인이 급박한 상황에서 3~4개의 매듭을 일일이 풀어 한줄만 가지고 졸랐다는 식으로 주장을 바꾸었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그날 밤 사용하지 않았다는 우유병이 1년 뒤 현장검증시 살펴보니 우유찌꺼기가 병 안쪽에 눌러붙어 굳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판결에서 검찰 논리는 깨어졌다.
거짓말탐지기 역시 그랬다. “새벽 4시”, “거실”이라는 질문에 이도행이 거짓말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 이전에 이미 수없이 수사관들이 사건시각과 장소를 이도행에게 암시 또는 추궁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증거에서 배척되었다. 법원은 그 밖에 죽은 이가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고 한약봉지가 가스레인지에서 발견된 점을 들어 “아침까지 살아 있었음을 나타내는 간접증거”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확인한 고등법원의 결론.
“피고인의 범행동기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는 점, 사망시각 추정에 관한 검찰 제출의 사체현상의 증거 가치를 부여하기에 부족한 점,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인의 출근 이후 발생하였다고 보여지는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로 한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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