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적 존재에서 인간형 기계로 탈바꿈… 2050월드컵에선 로봇축구 돌풍 있을까

2050년 월드컵에서는 누가 돌풍의 주역이 될 것인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컴퓨터과학자 마누엘라 벨루소는 로봇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인간을 닮으려는 로봇들은 지금 자체 월드컵을 통해 실력을 연마한다. 5년 전만 해도 로봇들은 공을 인식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공을 놓치지 않고 드리블을 시도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로봇들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게 꿈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쯤되면 창조성 없는 플레이를 일컫는 ‘로봇 축구’라는 말은 로봇에 대한 모독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언제까지 ‘로봇 축구’를 비난할 건가

지금 로봇들은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로봇이라는 말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기계라는 뜻의 ‘로보타’(Robota·강요된 노동력)에서 비롯됐다. 체코의 극작가 차페크는 에서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인조인간을 로봇으로 묘사했다. 노동에서의 해방을 꿈꾸는 인간을 대신하겠다며 산업현장에 들어간 로봇, 자본의 논리에 충실히 복무하는 로봇. 그런 로봇이 인간의 감성과 지능을 이식받아 이성적인 ‘인간형 기계’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의 기세라면 ‘로봇사피엔스’(Robot-sapiens)가 출현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진화하는 로봇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현재 로봇은 생산현장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 1962년 미국 뉴저지의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공장에 유니메이션사의 ‘유니메이트’(unimate)가 처음 등장한 이래 산업용 로봇은 생산현장의 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로봇이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산업용 로봇은 크게 진화하지 못했다. ‘예정된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사전에 철저히 프로그래밍된 원칙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탓이다. 그래도 산업적 수요는 엄청나 전 세계 로봇 시장의 60%를 장악한 일본은 2000년 한해에만 로봇으로 57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로봇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한다. 하지만 유연성이 필요한 작업에는 무용지물이다. 사람의 손 동작 하나도 따라하지 못한다. 이런 로봇들이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유연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깊은 바닷속이나 원자력발전소 중수로, 유해가스 방사선 노출지역 등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기는 힘들다. 폭발물을 찾기 위해 건물에 매설된 파이프를 탐색하고, 우주의 진공 상태나 활화산 등 극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로봇도 있다.
로봇 전사도 출현… 고령화 사회의 버팀목

로봇 군대도 등장할 태세다. 전방에서 주위 화학무기를 감지해 경고신호를 보내고,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억류하였을 때 내부를 샅샅이 파악하는 ‘로버그’(Robugs)들이 부대를 이루는 것이다. 원격 로봇은 비디오 카메라와 소형 마이크, 인터넷으로 신호를 보내는 무선 전송기 등을 장착하고 있다. 원격지에서 마우스로 ‘명령’을 내려 작전을 수행한다. 최근 미 국방부의 국방첨단연구계획청(DARPA)과 보잉사는 폭탄 1350kg을 실을 수 있는 로봇 항공기 X-45프로그램을 공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 아이로봇사의 원격 로봇 ‘팩봇’(Packbot)과 캐나다 이넉턴사의 ‘마이크로트랙’(MicroTrac)은 9·11 테러현장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로봇들은 산업현장과 특정환경에 얽매인 작업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인간과의 교감을 꾀하는 로봇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도우미(Helper) 로봇’들은 인간과의 협동작업을 벌이며, 사람과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정신적·감정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물론 감정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게 사람들 사이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적 요소까지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가에 있다. 포항공과대학 도낙주 교수(로봇공학)는 “로봇이 인간생활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인간과 로봇 간의 의사소통을 정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얼굴 표정을 지표화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내다봤다.
도우미 로봇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든든한 친구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립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는 노인과 로봇의 감정 교류를 측정하는 지표를 마련해 노인복지센터에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노인과 로봇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감정의 농도가 진해지고 의료진의 방문 횟수도 줄어들었다. 일본 마쓰시타사는 오사카에 병실 107개짜리 로봇 요양원을 지난해 12월 설립했다. 이 요양원에서는 로봇 곰이 간호사들의 도우미로 쓰인다. 로봇 곰은 환자와 교류하며, 인사를 해도 환자의 반응이 없으면 중앙간호실에 신속히 연락한다. 로봇이 기계 아바타로서 수호천사 구실을 하는 셈이다. 언젠가는 가사활동도 로봇의 몫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측된다. 처음에는 기묘한 모양으로 거실을 떠도는 로봇이 거추장스러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첨단장비로 감정을 나누고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면 마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로봇밖에 대안이 없을 것이다. 일본 로봇 협회는 도우미 로봇 시장이 5년 뒤에 2억5천만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살아 있는 로봇이 인체에 들어온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일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로봇의 움직임만을 따지면 인간처럼 행독하는 게 안정적일지 모른다. 기술적인 혁신도 이뤄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2족 직립보행이 가능한 로봇이 개발 시판되고 있다. 이들은 각종 센서를 토대로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인공지능이 리얼타임으로 연산해 다음 행동을 예측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전 로봇은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행동계획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머물렀다. 수동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있는 고도의 인간형 로봇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사회환경과 가정생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처럼 가전제품형 로봇도 등장할 태세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운 로봇으로는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ASIMO)를 꼽을 수 있다. 아시모는 자연스럽게 직립보행하며 5개의 손가락도 서로 독립해 움직인다. 인간의 일상생활을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전등 스위치를 작동하거나 주방에서 여러 작업을 돕는 것도 가능하다. 교토대학과 AIST는 키 154cm에 60kg의 휴머노이드 로봇 ‘HRP-4’를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의 휴먼형 로봇과 달리 등에 배터리팩을 짊어지지 않고도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30° 각도로 움직이며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한다.

인간을 닮으려는 로봇의 다른 한편에는 살아 있는 기계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원자 단위의 물질을 다루는 나노기술과 생체공학기술이 만나 미세 생체로봇을 실현하는 것이다. 미세로봇인 ‘나노봇’(nanobots)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서 초당 10억여개의 새로운 원자를 바라는 대로 구조물에 배치한다. 나노봇은 인체 내부로 들어가 질병을 치료하거나 엄청나게 낮은 비용의 원료를 가지고 정교하게 설계된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을 복제하기도 한다. 설계에 따라 또는 돌연변이에 의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 원자세계에서 나노봇 사회가 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모든 원자를 맘대로 조작하는 ‘마술 손가락’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나노봇이 미래학자들의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기계가 아니다
로봇 공학은 전혀 새로운 생물종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두뇌 컴퓨터 장치, 세포 기술학, 복합 인체 로봇 등이 필연적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신체 조직을 대체하는 ‘신경보철’을 이용해 청각·시각·동작 등의 기능을 얻고, 특별한 기기를 이용해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이동할 것이다. 인간형 로봇이 몇 단계 진화한 형태의 사이보그가 스크린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셈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두뇌에 신경보철이 몸을 받쳐주면 로봇이 ‘노예적 존재’에 머물 까닭이 없다. 언젠가는 로봇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며 인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날개를 녹여버릴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게 된다’는 그리스 신화의 다이알로스 이야기는 로봇 공학자를 향한 오래된 경구인지 모른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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