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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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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투표는 봄보다 설레었다.

만 18살 새내기 유권자 5명이 말하는 첫 선거
“어른” “시민” 된 느낌… “교실 정치화 필요해”
등록 2020-04-18 15:11 수정 2020-05-07 10:43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인 4월15일 세종시 새롬고 3학년 박시은 학생이 생애 첫 투표를 한 뒤 ‘인증사진’을 찍었다. 박시은 제공,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인 4월15일 세종시 새롬고 3학년 박시은 학생이 생애 첫 투표를 한 뒤 ‘인증사진’을 찍었다. 박시은 제공, 연합뉴스

“이번 선거 투표율이 엄청 높대요.”(조서희) “주변에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것 같은 친구들도 다 투표했더라고요.”(최연우)

4월15일 저녁 6시15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출구조사 공개와 함께 개표방송이 시작되자, 만 18살 유권자들이 흥분한 기분을 뽐내며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에서 수다를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번 선거에서 ‘18살들’이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막차를 탄 것이다. 18살들은 66.2%로 집계된 역대급 국회의원선거 투표율을 가장 먼저 화제로 올렸다.

“아무래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때 우리의 행동으로 정치가 바뀐다는 걸 경험한 효과인 거 같아요.” 높은 투표율과 관련해, 조서희가 촛불집회로 정치권력을 교체하는 정치적 효능을 경험했던 ‘18살들의 기여’가 있었을 거라는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김서준도 “첫 투표에 대한 주변 18살 또래의 투표 열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최연우 등 다른 참여자들도 웃음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번 선거에서 만 18살(2001년 4월17일~2002년 4월16일생)이 새로 유권자가 됐다. 이들은 54만8986명(전체 유권자 중 1.2%)이고, 이 중 약 14만 명이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한겨레21>은 만 18살 새내기 유권자 5명과 함께 개표방송을 보면서 생애 첫 투표를 한 소감을 나눴다. 5명은 만 18살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고3, 학교 밖 청소년, 고등학교 졸업생, 대학교 1학년 등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려고 한 장소에 모이지는 않았다. 대신 각자 집에 머물며 단톡방에 참여했고 일부는 <한겨레21>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후보자 많아 막막했지만…

18살들은 첫 투표를 설렘과 기대로 맞았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조서희는 “첫 투표라 꽃놀이보다 설레었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고3 학생 신수연도 “첫 투표인데다 내 손으로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을 직접 뽑는다는 게 굉장히 신나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제야 비로소 사회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시민으로 여겨진다는 소감도 나왔다. 강원도 강릉에 사는 권혁진은 “그동안 나는 목소리 없는 시민이었는데 이제는 목소리를 가진 진짜 시민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또한 “강릉은 그동안 모든 선거에서 덮어놓고 보수정당을 찍어줬는데 내가 시의 17만 표 중 1표이긴 하지만 견제할 수 있는 한 명의 시민이 됐다는 점에서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18살 유권자들은 투표 뒤 인증사진을 찍고 부모에게 ‘어른이 됐다’는 축하도 받았다. 개표방송을 가족과 함께 보는 동안, 최연우의 엄마는 아들에게 “투표를 했으니 우리 아들이 이제 어른이 됐네. 소감이 어때?”라고 물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대학교 1학년 최연우는 “참정권을 가지니 어른 대접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답했다. 조서희의 언니는 “어른이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으니 생활을 잘 해야 한다”고 농담을 건넸고, 조서희는 맞장구치며 함께 웃었다.

첫 경험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어색함과 어설픔을 홀로 감당하기도 했다. 투표라곤 학교에서 학급반장과 학생회장을 뽑아본 것 외에 경험이 없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학교에서도 지지 후보를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새내기 유권자에게 체계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탓이다. 바싹 긴장한 채 투표장에 들어갔다는 최연우는 “민증(주민등록증) 검사하고, 마스크를 잠시 벗으라고 하며 (선거관리위원이)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굳은 채로 투표장에 후다닥 들어갔다 나온 거 같다”고 말했다. 권혁진은 “많은 후보자 중 내가 누굴 뽑아야 하는지 좀 막막했다. 중앙선관위나 학교에서 지지 후보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구체적으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듯 교육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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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이 주는 눈치 속, 깐깐하게 ‘한 표’

이들은 “거대 양당의 눈치”를 봤다고도 했다. 이 말을 “소수정당을 향한 투표가 사표가 될 걸 우려했다”는 의미라고 조서희는 설명했다. 최연우도 “부모님이 은근히 (거대 양당 중) 누구 찍으라고 압력 아닌 압력을 가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야무진 새내기 유권자들은 이 ‘눈치 압박’에 굴하지 않고 깐깐하게 생애 첫 한 표를 행사했다. 우편으로 온 공보물과 인터넷을 통해 지역구 후보와 정당들의 공약을 꼼꼼히 비교했다. 첫 번째 투표 기준은 ‘내 삶에 와닿는 공약과 정책이 있는가’였다.

특성화고등학교 재학생으로서 졸업 뒤 취업을 꿈꾸는 신수연은, 이번 선거에서 사회와 직장에서의 고졸 차별 금지와 고졸 노동자 지원을 공약한 민중당을 지지했다. 취업한 선배로부터 “직장 상사가 이름이나 직함이 아니라 ‘야, 고졸’이라고 나를 부르고, 대졸자와의 임금 차이 등 차별과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신수연은 “고졸노동자지원센터 설립, 특성화고 교육 내실화 등으로 고졸 노동자에 대한 불평등 해소와 지원을 공약한 민중당이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강원도 춘천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최연우는 지하철 6호선 신내역 개통(2019년 12월 개통)에 힘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춘천에서 집으로 오는데 경춘선 타고 상봉역까지 안 가고, 신내역에서 내려 집에 오게 돼 매우 편해졌다”고 했다. 다만 정당은 민중당을 지지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과 관련해 다른 정당들에 견줘 민중당이 선명한 태도를 취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학도로서 현재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정의와 불평등과 관련해 그 역할을 한다고 봐서 지지했다.”

거대 양당에 대한 견제 심리와 청년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 투표 기준이 됐다. 권혁진은 “그동안 청년 정치인이 강릉에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청년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표를 줬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정당이 2개뿐인 줄 알겠어요”

“파랑과 빨강만 지도에서 보여 외국인이 보면 우리나라에 두 정당만 있는 줄 알겠어요.”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180석,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103석으로 거대 양당이 283석(94.3%)으로 국회 의석을 싹쓸이한 선거 결과를 보고 최연우가 말했다. 권혁진도 “파랑, 빨강밖에 안 보이네요. ㅂㄷㅂㄷ(부들부들)”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18살들이 거대 양당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청소년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인 김서준은 “학교 안에 있지 않은 청소년들의 존재, 그들이 학교 밖에 있게 된 이유 등에 거대 양당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런 문제에 관심 갖는 소수정당이 좀더 국회에 많이 진출하면 좋겠다”고 했다.

거대 양당에서 불거진 막말과 비례위성정당 논란에 이들은 비판적이었다. 특히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막말에 대한 성토가 잇따랐다. 신수연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무개념 막말로 큰 고통을 받았을 세월호 유가족들을 생각하니…. 최소한의 공감 능력도 없는 사람이 무슨 염치로 주민들의 삶을 바꾸겠다고 후보로 나오나. 그런 후보를 국민 대표라고 내놓는 통합당도 정말 어이 상실이다.” 김서준은 “정말이지 지겹다. 정당들이 제발 겸손하고 품위 있는 후보들을 공천하기 바란다”고 했다.

선거제 개혁 취지에 역행해 비례대표 의석을 싹쓸이한 비례위성정당을 만든 ‘파랑·빨강당’에 대한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권혁진은 “투표소에서 목격한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1번(더불어민주당)과 2번(미래통합당)이 없는 건 우리 정치의 후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김서준도 “지역구에서 막대한 의석을 쓸어담으면서, 소수정당을 위해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빈틈을 악용해 비례의석까지 죄다 가져간 거대 양당에 화가 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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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하향 만 16살까지”

그동안 ‘18살 선거권’에 대한 주요 반대 논리는 ‘교실의 정치화’였다. 선거 때마다 학교가 정치로 소란스러워지고, 교사가 학생에게 정치적 선입견을 주입하거나 학생들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갈라져 다투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새내기 유권자들은 실제 투표해보니 오히려 ‘교실의 정치화’가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혁진은 “정치는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인데, 10대들의 삶의 현장인 교실에서 정치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반문했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이라고 규정하는데 교실의 정치화가 이 이념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신수연도 “어떤 후보와 정당이 내놓은 공약이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 교실에서 활발히 얘기하고 의견을 나눈 걸 나쁘다고 하는 건 ‘꼰대식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생애 첫 투표 뒤 함께 개표방송을 보며 수다를 떤 새내기 유권자 5명은 모두 선거연령이 만 16~17살로 내려가 참정권 기회가 더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와 정책에서 청소년이 배제되는 원인을 청소년이 참정권을 갖지 못한 까닭이라고 분석한다. 조서희는 “교육정책은 청소년의 삶을 좌우하는데, 실제 정책 대상인 청소년이 그 정책 수립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권혁진은 “청소년은 어리니까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고, 선생님들의 정치적 주장에 좌지우지될 거라고들 하는데, 이는 청소년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무뇌아로 가두는 시선”이라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하면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사리 판단은 할 수 없다고 보는 건가”라고 했다. “OECD 회원국 중 오스트리아는 벌써 16살 투표권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은가.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최연우의 말에 18살들이 “마자욤”(맞아요)이라고 동의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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