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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의 무게, 민주당의 미래는

‘선거의 법칙’ 적용 안 된 21대 총선, 전무후무한 의석 얻은 민주당의 미래는
등록 2020-04-18 14:16 수정 2020-05-07 10:34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이해찬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등이 4월16일 오전 국회에서 선거 결과에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이해찬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등이 4월16일 오전 국회에서 선거 결과에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① 대선에 견줘 총선 투표율은 낮다.

②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이 유리하다.

③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 심판론’이 좌우한다.

④ 공천 물갈이 비율(현역 교체율)이 큰 쪽이 승리한다.

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연속 승리한 정당은 없다.

①~⑤는 그동안 한국 선거를 좌우해온 ‘선거의 법칙’이다. 하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전략가, 후보자, 정치평론가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말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선’이었다. ‘코로나19 블랙홀’에 모든 쟁점이 빨려 들어가며 기존 공식과 법칙에 선거 전망을 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투표함을 열어보니 ①~⑤ 법칙은 모두 틀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선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66.2%. 투표율은 2000년 이후 치른 총선에서 가장 높았다. 투표율은 높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80석을 얻으며 전체 의석(300석)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공룡 여당’이 탄생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은 현재 122석에서 10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4명(김태호·권성동·윤상현·홍준표)을 합해도 107석에 불과하다. 민심은 ‘정권 심판론’ 대신 ‘야당 심판론’을 택했다.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의 현역 교체율은 28%로 통합당의 43%에 못 미쳤지만, 민심은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결국 민주당은 1987년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차례(2016년 20대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 연속 승리한 첫 정당이 됐다.

숫자로 보는 21대 총선 결과

숫자로 보는 21대 총선 결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총선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 앞에 ‘선거 법칙’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총선 이후 ‘촛불’과 세 차례 선거를 거치며 ‘보수 우위’의 유권자 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린 것일까. 민주당-통합당 양당 체제의 회귀는 21대 국회를 어떻게 좌우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2022년 대선의 향방까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그늘 아래서도 한국이 놀라운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ap통신> 4월15일)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 외국 언론의 평가대로, 총선 투표율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낮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었다. 70%대인 대통령선거와 달리 총선 투표율은 16대(2000년) 57.2%, 17대(2004년) 60.6%, 18대(2008년) 46.1%, 19대(2012년) 54.2%, 20대(2016년) 58.0% 등 60%대를 밑돌았다.

정치학자나 전문가들은 보통 총선의 높은 투표율을 유권자의 분노로 읽는다. 현 정부를 심판하려는 의지가 투표율로 연결된다는 것인데 ‘회고적 투표’라고 이름을 붙인다. 유권자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국정 운영 성과를 잣대로 투표에 나선다는 ‘회고적 투표’는 과거 총선을 늘 지배했다. 김대중 정부 3년차인 16대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으로 야당인 한나라당(133석)에 제1당을 내줬다. 박근혜 정부 4년차에 치른 20대 총선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이 제1당이 되며 새누리당을 눌렀다.

숫자로 보는 21대 국회

숫자로 보는 21대 국회

과거 청산 못한 통합당에 대한 심판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는 회고적 투표 대신 미래를 바라보는 ‘전망적 투표’를, 정권 심판 대신 ‘야당 심판’을 택했다. ‘코로나19에 누가 잘 대응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총선 일주일 전에 진행된 한국갤럽 여론조사(4월7~8일 1천 명 조사)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응답자의 73%가 ‘잘한다’고 답했다. 4월15일 문화방송(MBC)이 출구조사에서 3142명에게 진행한 심층조사에서도 유권자 74.1%가 ‘잘한다’고 긍정평가를 내렸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긍정평가가 높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코로나 국난 극복을 위한 힘을 실어달라’는 선거 캠페인 기조를 유지했고, 통합당의 정권 심판론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코로나19로 쟁점도 인물도 주목받지 못했다. 민주당·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으로 3당이나 소수정당이 목소리를 낼 공간도 없었다. 유권자는 인물·공약·구도 등 기존 잣대 대신 사실상 선택지를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 두 가지로 좁혔다. MBC 심층 출구조사에서 유권자는 후보 선택 이유로 ‘후보의 소속 정당’(48.0%)을 꼽았다.

결국 선거 결과는 유권자가 보수 진영 대표인 통합당이 정당으로서, 제1야당으로서 ‘실격’이라는 ‘레드카드’를 꺼낸 것으로 읽힌다. 통합당 지지층 중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는 이미 2016년부터 통합당에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 중 일부는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통합당)의 공천 파동으로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이탈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참여하고 2017년 촛불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며 통합당에 경고를 계속 보냈다.

이들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통합당이 과거와 단절하고, 보수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 정권 탈환 가능성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중도·무당층이 많은 수도권에서 통합당은 121석 가운데 16석만을 얻고, 49석의 서울에서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8석만 얻는 등 이탈한 지지층과 중도층에게서 차가운 평가를 받았다. 박형준 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5일 한국방송(KBS) 개표방송에서 “우리가 젊은 세대와 중도층의 접근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6일 국회에서 21대 총선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한 뒤 퇴장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6일 국회에서 21대 총선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한 뒤 퇴장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사전투표, 50대, 수도권이 성패 쥐어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높은 투표율과 선거 결과를 봤을 때 스윙보터로 불리는 중도보수가 통합당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국 사태 등으로 민주당에 실망을 느꼈던 중도진보 유권자도 통합당으로 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머물러 있는 통합당·보수 진영의 이야기가 이제 안 먹힌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통합당 일부 지지층은 부끄러운 상황이 됐다. 그런데 대선 패배 뒤 지방선거에서도 변화가 없고 황교안 전 당대표는 ‘아스팔트 우파가 결집하면 이긴다’는 방향으로 가고 공천 과정에서 취약한 리더십을 보였다. 보수층 처지에선 황교안으로 정권 탈환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연속 민주당이 승리하고 통합당이 연거푸 패하다보니 정치학에서 정의하는 ‘유권자 재편성’(유권자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영호남으로 양분된 선거 결과에 따라, 지역주의로 퇴행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지역주의 회귀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거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결집’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28개 의석 중 27석을 휩쓸고 통합당이 대구(12석 모두), 부산·울산·경남(TK) 40곳 중 32곳에서 승리하는 선거 결과로 지도에는 뚜렷한 색깔 대비가 그려졌다. 박성민 대표는 이를 ‘방어적 지역주의’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유력 주자들이 좌지우지하는 패권적 지역주의였다면, 이번에 영호남은 정치적 위상이 추락하는 데서 오는 방어적 지역주의다. 대선 주자를 갖지 못한 호남은 (전남 영광 출신인) 차기 대선 주자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려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 TK는 탄핵 뒤 힘을 쓰지 못하는 통합당의 무력함에 울분을 토하며 결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도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180석을 얻는다, 수도권 압승이다’라는 이야기 나오자, 영남 유권자가 일시적으로 결집한 것 같다.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도 “지역주의는 수도권 민심에도 영향을 끼쳐야 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선거에선 그런 면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권자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추후 공개할 전체 연령별 투표율 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한 문제지만, 50대와 60대 초반의 보수 지지세가 흔들린다는 징후는 이번 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다. 2017년 대선 뒤 치른 선거 결과와 총선 전까지 실시된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면 30~40대는 민주당 지지, 60대 이상은 통합당 지지로 양분된 가운데 20대는 부동층, 50대는 민주당과 통합당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 20~40대는 민주당 우위, 50대 이상은 통합당 우위라는 과거의 유권자 지형은 최근 몇 년 사이 바뀌고 있다.

4월10~11일 실시된 사전투표는 50대가 가장 많이 참여(21.9%)하고 60대(18.3%)가 뒤를 이었는데, 개표 결과 초박빙 지역에서 사전투표가 여당의 승리를 뒷받침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표 결과를 보면 서울 광진을에서 고민정 민주당 당선자가 오세훈 통합당 후보를 2746표 앞섰는데, 사전투표에선 고 당선자가 7883표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최인호 부산 사하갑 당선자(민주당)도 김척수 통합당 후보에게 697표 차로 이겼는데 개표 내내 1천 표 안팎으로 뒤처지다 새벽 4시께 개봉한 사전투표함에서 역전했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정의당 심상정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서울 득표율 민주 52.8% vs 통합 41.4%이지만

수도권 등 접전 지역에서 민주당이 다수 승리를 거둔 것을 고려하면 50대와 60대 초반에서도 여당 손을 들어준 비율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전문가들은 유권자의 정치 성향을 설명하는 기존 ‘연령 효과’(나이 들수록 보수화되는 경향)보다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386세대’가 50대에 진입하며 정치 성향을 유지하는 ‘코호트 효과’(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신진욱 교수는 “많은 연구가 50대가 중도 내지 중도진보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연령 효과보다 세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40~50대가 고령화되더라도 진보 성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에 이어 의회 권력까지 모두 차지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맞았다. 180석은 개헌(200석 이상 필요)만 빼면 법안·예산안 등 국회 안건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의석수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협치하라는 취지를 담은 ‘국회 선진화법’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지난해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통과시킬 때 군소 정당과 손잡았던 ‘4+1’도 더는 필요 없고, 야당의 견제 수단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중단시킬 수 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6석에 그치며 왼쪽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힘도 떨어졌다.

반면 민주당의 ‘착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압승은 1표라도 앞서면 당선되는 소선구제의 수혜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지역구 득표에서 민주당은 약 305만 표(52.8%), 통합당은 239만 표(41.4%)를 얻었지만 실제 민주당은 41석을, 통합당은 8석을 차지했다. 득표수와 실제 의석수의 괴리를 일으키는 소선거구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다. 비례대표 정당투표도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33.35%, 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은 33.84%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강자의 독주’에 취하는 대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관후 연구위원은 “민주당은 앞으로의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강자로 독주하겠다는 태도로 나오면 유권자의 마음은 금방 돌아설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지만 민심이 금방 돌아선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강자의 독주 대신 민심에 응답해야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사회 위기를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어깨를 누른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이번 선거에 표출된 유권자의 민심에 응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신진욱 교수는 “코로나19로 정책 이슈도, 현 정권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회문제가 표심의 균열로 표출되지 않았다. 정부·여당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문제가 무엇이고, 민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파악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포용적 복지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 경제·고용·소득·교육·돌봄을 아우르는 큰 틀의 포용적 복지 플랜2.0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진단했다.

이 점을 의식한 정부·여당은 승리의 기쁨보다 몸을 낮추는 데 신경 쓰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4월16일 미래선거대책위 회의에서 당선자들에게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더 겸손한 자세로 민심을 살피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위대한 국민의 선택에 기쁨에 앞서 막중한 책임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밝혔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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