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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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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알린 그가 죽자 휘파람이 들렸다

의사 리원량 죽음 소식에 중국 전역에서 휘파람 추모
중국 당국에 대한 분노글들 SNS에서 말끔히 지워져
등록 2020-02-15 14:47 수정 2020-05-03 04:29
‘코로나19’를 경고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고초를 겪고, 2월7일 새벽 감염 합병증으로 의사 리원량이 사망하자 중국인들이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인증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동아시아국제연대 제공

‘코로나19’를 경고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고초를 겪고, 2월7일 새벽 감염 합병증으로 의사 리원량이 사망하자 중국인들이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인증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동아시아국제연대 제공

“휘~익 휘~익 휘~익….”

2월7일 밤 9시쯤, 창문 밖으로 긴 휘파람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졌다. 휘파람 소리는 10여 분간 계속되다 차츰 잦아들었다. 그날 밤, 휘파람 소리는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울려퍼졌다’. 7일 새벽 2시58분, 서너 시간의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생을 마감한 ‘의인 리원량’ 의사를 추모하기 위한 중국인들의 ‘휘파람 불기’ 행동이었다.

7일 새벽,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온라인을 타고 알려지자 위챗과 웨이보 등 대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타임라인은 순식간에 눈물과 통곡, 분노와 절규, 비통한 추모글들이 바다를 이뤘다. 리원량이 생사의 사투를 벌이던 2월5일 베이징에는 밤새도록 많은 눈이 내렸다. 다음날 오후까지 눈발은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알겠다” 강요에 대한 분노

2월6일 23시25분(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 트위터 계정에는 “리원량 의사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모두 그가 했던 일을 기념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그의 사망 시각은 2월7일 새벽 2시58분. 그는 죽은 뒤에야 중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의인’으로 불렸다. 중국인들은 그를 진실을 밝히다 죽어간 ‘휘슬러’라고 불렀다.

우한시의 한 병원 안과의사인 리원량은 2019년 12월30일, 약 150명이 모인 동문들 단체대화방에 ‘7명의 사스 확진환자가 병원에 격리 치료 중’이라며 모두들 ‘조심하라’는 문자를 남겼다. 며칠 뒤인 2020년 1월3일, 그는 파출소에 불려가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죄명으로 훈계를 받았다. 그가 파출소에서 쓴 ‘훈계서’에는 그에게 서명과 답을 요구하는 두 항목이 있었다. “앞으로 이런 위법활동을 중지할 것.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앞으로도 반성하지 않고 계속 이런 위법활동을 할 때는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겠는가?” 리원량은 두 항목에 한두 단어로 간단하게 답했다. “할 수 있다”(能), “알겠다”(明白).

리원량이 죽은 뒤, 중국 SNS에선 “不能. 不明白.”(할 수 없다. 모르겠다.)라는 글귀를 적은 팻말이나 종이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타임라인 밑에 해시태그를 붙여서 올리는 이른바 ‘언론자유’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사라진 지’ 거의 2주 만인 지난 2월10일, 마스크를 쓰고 다시 등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동정을 다룬 저녁 뉴스. 박현숙 제공

‘사라진 지’ 거의 2주 만인 지난 2월10일, 마스크를 쓰고 다시 등장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동정을 다룬 저녁 뉴스. 박현숙 제공

‘생선젓갈’ ‘난징협객’ 등 SNS에서 당국 비판글 폭주

상하이에 사는 시인 ‘보들레르’ A의 위챗 타임라인은 2월7일 새벽부터 폭주했다. 마찬가지로, 고향 후난에 잠시 머무는 자칭 ‘반항하는 화가’ B의 타임라인도 그가 즐겨 타는 오토바이처럼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톈진에 사는, 만화 속 캔디처럼 큰 눈을 가진 ‘생선젓갈’ C의 타임라인도 분노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D의 타임라인도 기염을 토했다. 나도 덩달아 화나서 그들의 타임라인을 퍼나르는 ‘유언비어 유포자’가 됐다.

“시작하자! 우리는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자. 친구들이여! 지금 이 순간의 분노를 잊지 말자. 지금 이 순간 모든 말과 생각을 잊지 말자. 언론 자유야말로 가장 절박한 문제다. …만일 인민에게 기억이 있다면 내년 오늘, 인민광장에서 정오에 만나자.”(상하이에 사는 시인 ‘보들레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이렇게 말했다. ‘언론 자유는 목적이자 수단이다. 언론 자유는 정부가 빼앗아서는 안 되는 시민들의 기본 권리이자 동시에 그 기본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언론 자유로 정부에 필요한 통제를 할 수 있고 정부의 권력 남용을 줄일 수 있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의 증명에 따르면, 언론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는 기아가 발생할 수 없다’고…. 여기, 항상 뭐든지 ‘세계 제일’이고 매일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홍보되는’ 중국에 사는 우리 인민은 도대체 어떻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반항하는 화가’)

“이언 존슨이 최근에 쓴 어떤 글에서 인용한 문장을 아주 좋아한다. ‘권위주의 정부는 마치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 있고 다른 손가락은 없는 무리와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극도의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 정부는 오직 하나의 엄지손가락을 가졌고 그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오직 무력이라는 한 가지 방법을 써서. 우리가 진짜 짚신벌레 사회로 변하지 않는 이상, 단 한 개의 엄지로 어떻게 (여러 일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무력을 쓸수록 재난만 가중할 뿐이다.”(‘비판적 지식인’)

“권위주의 전제정치 국가는 전능한 정부 외에 전능한 지도자가 있어서 뭐든지 다 이해하고 매일매일 오늘은 이걸 지시하고 내일은 저걸 지시한다. 엉덩이가 머리를 지휘하고 문외한이 전문가를 지도한다. 진짜로 더럽고 부끄러운 낯짝이다. 참고로 절대 우리나라 지도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난징 협객’)

“생전에 리원량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건강한 사회에는 한 종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바로 그런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시민불복종’ 운동을 해야 한다. 정부의 행정명령 등이 불합리할 때는 주동적으로 그러한 강권적인 법률과 명령에 따르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절대로 폭력에 호소하는 운동이 아니다.”(톈진에 사는 ‘생선젓갈’)

유언비어였어야 할 그의 죽음

청두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개학을 앞두고 학생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 다음과 같은 긴 글을 남겼다(중요 내용 발췌).

“오늘은 미래의 과거다. 우리가 오늘 눈앞의 고난을 애도하는 건 뼛속 깊이 기억하기 위해서다. 몇 년 뒤, 봄이 오고 또 가고, 햇빛이 운동장 위로 따사롭게 내리쬐고, 우리가 자유롭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즐겁게 만날 때,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이 땅 위로 눈이 내린 적이 있다고. 죽음은 한 사람의 비극이지만, 망각은 한 민족의 비극이다.

우리는 참회해야 한다. 진정한 애도는 참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루쉰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시키는 대로) 베껴쓴 거짓말은 피로 쓴 사실을 덮을 수 없다’고. ‘어떤 사람은 관 속에 넣어 가지도 못할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탐욕 때문에 자기 양심을 집어삼킨다. 그들이 습관적으로 거짓말할 때 역시 자신들의 친구와 동포들도 나락으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카뮈도 에 이렇게 썼다. ‘이 모든 것 안에는 결코 영웅주의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성실성의 문제만이 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식은 성실성이다’라고.

리원량 의사가 죽었다. 우리는 당신의 경보가 유언비어로 치부된 것에 분노하고, 오히려 당신의 죽음이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진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마땅히 기념비를 세워줘야 한다. 기념비에는 성과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모든 익명의 기념을 거절해야 한다.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애도와 참회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재난 앞에서 인간성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전염병은 누가 진정한 출장입상(出将入相·난세에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장군이 되고 평상시에는 재상이 되어 정치를 한다는 뜻)인지를 밝혀준다. 또한 어떤 요망한 자들이 사람들에게 사탕발림 소리를 하며 피 묻은 만두를 줍고 있는지도 알게 해준다.

어찌하면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지 않을 것인가. 어찌하면 다음 재난이 닥쳤을 때, 마스크는 더 많아지고 공포감은 더 적어지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책임감은 더 많아지고 책임회피는 더 적어지게 할 수 있을까.

오늘 이런저런 통계와 이야기, 사람들, 정신, 교훈, 반성은 몇 년 뒤 교과서에서만 나와서는 안 되고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는, 단단한 핵심 답안이 돼야만 한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지금도 아니고 미래에는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끝없이 먼 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모두 나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2주 만에 나타난 시진핑 주석

리원량이 죽기 전인 2월4일, 중국 전역의 공안기관 수장들이 모여 영상회의를 했다. “정치 안전을 최우선 임무로 두며, 국내외 적대세력들의 각종 불순한 행동을 엄단하고, 공공위생 위험 상황이 사회 안정을 해치는 것을 결연히 방지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만들어지는 유언비어를 적시에 조사해서 처리하고….”

2월10일 ‘사라진 지’ 거의 2주 만에 시진핑 주석도 ‘드디어’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전 당과 전 군과 전국 각 민족 인민은 후베이와 우한 인민과 함께합니다. 우한은 영웅의 도시이고, 후베이 인민과 우한 인민은 영웅의 인민입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고난과 역경으로 무너진 적이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전국의 의료 일꾼들과 각계 사람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감을 새기며 당의 부름에 적극 호응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전염병 방역의 제일선으로 달려갔습니다.”

과 등 관방매체는 시 주석의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구구절절 보도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시 주석이 ‘제일선으로 달려갔다’는 보도는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리원량이 사망한 날 새벽을 기점으로 인터넷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언론 자유’ 구호와 여러 해시태그가 담긴 타임라인은 다음날부터 ‘조용히’ 삭제됐다. ‘보들레르’가 타임라인에 절규한 글도, ‘반항하는 시인’이 미친 듯이 써내려간 문장도, ‘비판적 지식인’이 올린 각종 ‘펌글’도 지금은 볼 수 없다. 청두 고등학교 교사의 글도 말끔히 삭제됐다. 리원량이 죽던 날, 우한의 대학교수 10명이 공동 작성해서 발표한 ‘리원량 의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글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인터넷에선 코로나19 사태 글을 올렸다가는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된다’는 유언비어가 파다하게 퍼졌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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