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수상 거부로 촉발된 이상문학상 사태는 불공정 저작권 계약 문제의 단면을 보여줬다. 이상문학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출판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제도적 장치 미흡은 계속 지적돼왔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는 2월2일 발표한 ‘이상문학상 불공정 관행 규탄’ 성명서에서 “출판권이 아닌 저작권을 요구하며 실질적인 매절을 강요하는 업계의 불공정한 저작권 양도 관행과 문학상이 그 권위를 무기 삼아 부당한 계약을 요구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실제 작가들이 경험하는 저작권 침해 사례는 다양하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임정자 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은 “인세 미지급, 후인세 정산, 계약서와 원고료가 없는 작품집 출간 등 피해를 호소하는 작가가 많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를 계기로 출판계의 낡은 계약 관행뿐 아니라 문학상 혁신, 문단 내 갑질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 한명 한명의 문제제기로 불붙은 저항의 불씨가 어디까지 번져갈까. 이명원 문학평론가가 이상문학상뿐만 아니라 중·단편 소설문학상의 의미와 직면한 문제를 짚고, 장은정 문학평론가가 창작자의 권리에서 출판계 노동환경 문제로 이어지는 논의의 확장을 분석했다._편집자
제44회 이상문학상은 큰 파행을 겪으며 문학상 제도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표면적으로 그 원인은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와 수상 작가 사이의 ‘저작권’과 ‘출판권’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행한 (아르코지원컨설팅센터, 2008)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독점적 성질의 권리”(15쪽)로 정의된다. 이에 따르면,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독점적 성질의 ‘권리 주체’이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우수상 선정 거부를 선언한 소설가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뿐만 아니라 전년도 대상 수상자이자 이번 사태로 절필을 선언한 소설가 윤이형은 저작권의 ‘독점적 권리 주체’로서, “3년간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는 문학사상사 쪽의 부당한 요구에 당연히 거부 의사를 표할 수 있다.
사실 작가의 배타적 권리인 저작권을 양도한다는 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다만 출판사는 저작자인 작가와의 ‘출판권 설정계약’을 통해 저작물을 배타적으로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출판사의 출판권이다. 그런데 출판권 설정계약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반적으로 저작권자의 저작물이 단행본인 경우에 해당하며, 이번의 문학상 사태에서 불거진 것처럼 중·단편 소설을 재수록하는 수상작품집의 경우 “저작물을 단순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출판허락계약”(52쪽)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IMAGE2%%]<font size="4"><font color="#008ABD">저작권 vs 출판권</font></font>출판허락계약에서 ‘주체’는 당연히 저작권자인 작가다.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권리를 줄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비배타적 출판허락과 배타적 출판허락”을 선택할 수 있다. 배타적 출판허락이란 계약한 출판자에게만 저작물을 제작·배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이다. 배타적 출판허락이든 비배타적 출판허락이든 “허락”의 주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인데, 문학사상사는 이러한 작가의 권리와 무관하게, 출판권과 저작권 모두를 3년간 독점하려 했기에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수상작이 된 작품을 이후 작가가 출판할 창작집(작품집) 표제로 써서는 안 된다는 계약 조건이다. 저작권의 명백한 주체는 작가인데, 문학상 시행으로 일부 저작물의 이용 권리를 한시적으로 획득한 출판사가 저작권자 자신인 것처럼, 작가에 대한 권리침해를 당연시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관행적으로” 벌어져왔다는 것이 작가들이 분노한 이유이고, 수상 거부에서 나아가 여러 작가의 기고 거부 선언까지 이어진 배경이다.
작가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문학사상사 쪽은 “저작권 3년 양도” 규정을 “출판권 1년 설정”으로 바꾸고 “표제작 규제도 수상 1년 후부터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계약 조건에 대해서도 문학계와 출판계에서 충분히 합의할 만한 논의와 숙고를 할 필요가 있다.
[%%IMAGE3%%]<font size="4"><font color="#008ABD">문학상과 출판의 기묘한 유형화</font></font>그렇다면 이것으로 모든 논의는 봉합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측면도 있다. 현재 문제되는 이상문학상은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 소설 가운데, 심사를 거쳐 대상과 복수의 우수상 수상작을 선정하고 이를 작품집으로 출간하는 형태의 문학상 출판 모델이다. 문학상을 시행하는 출판사 쪽에서 보면, 상의 명망을 높이는 것과 함께 앤솔러지(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한 작품집에 모아놓은 것)를 출판해 영업적 이익을 꾀하려는 목표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출판사의 고유한 영업행위에 해당하기에 그 자체로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유형의 문학상과 출판 형태가 어느 순간부터 유형화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간의 변별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의 가치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문학에 대한 독자 대중의 관심 역시 쇠퇴하는 현상과 맞물리면서 문학상 제도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수상작품집 출간으로 이어지는 문학상은 여럿이다. 언뜻 떠오르는 것만 나열해도,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문학동네 젊은작가상·문지문학상·김유정문학상·김승옥문학상·이효석문학상·현진건문학상과 함께 현재는 시행이 중단된 황순원문학상 등이 있다. 언급되지 않은 문학상도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문학상을 검토해보면, 기묘한 현상 하나가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이라는 호칭이 남발되는 측면이 있다. 가령 이상문학상의 경우, 대상 작품이 1편, 우수상이 4∼5편 정도 선정된다. 문학동네가 시행하는 젊은작가상 역시 대상과 우수상이 동시에 선정돼 수상작품집이 출판된다. 다른 문학상 역시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많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격려 아닌 상처 되는 문학‘상’</font></font>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문학상 수상작은 1편이고 나머지 작품의 경우 후보작으로 수상작품집에 게재됐는데, 언젠가부터 대상과 여러 편의 우수상이 함께 수록되는 수상작품집이 출간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다보니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양적으로 많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문학상은 작가의 고된 문학 작업을 격려하는 의미를 일차적으로 띤다. 그런데 격려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작가의 자부심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생각해볼 문제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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