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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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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당신이 기억해주실 거죠?

기자들이 스스로 뽑은 올해의 문장, 올해의 사진, 올해의 표지
등록 2019-12-25 10:39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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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피아르(PR) 시대’란 말은 21세기가 오기도 전에 유행한 것 같은데, 기자들은 유달리 쑥스럽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하는 문장’이라는 기획에 “못 찾겠다”며 1년 쓴 기사를 통째로 다 읽었다는 기자가 많았습니다. 쑥스러운 게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문장 하나하나 신경 쓰며 지난 1년을 지나왔습니다. 사진기자는 한장 한장 신경 쓰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최선을 다해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쑥스러운 기자들 대신, 이제 독자분들이 의 최선을 기억해주세요.

류이근 편집장 “조금 더 뻔뻔해지기를 부탁드린다.”

-제1254호 만리재에서 ‘뻔뻔해지겠습니다’
아마 ㄱ씨의 이 말이 없었다면 후원제 또한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역사의 단초는 ‘그래 한번 해봐’처럼 작은 말이 뿌린 씨일는지 모른다. 지난해 11월27일 전자우편으로 보내준 ㄱ씨의 이 말은 할까 말까, 하면 언제 할까 머뭇거리던 나에게 용기를 줬다. 뻔뻔해질 수 있을까 혼자 중얼거리던 나를 움직인 말이다.

이승준 기자 “이들의 열망은 앞으로 ‘남·북·미 삼각형’ 안에서 끊임없이 붙었다 떨어졌다 다시 붙기를 반복할 것이다.”

-제1270호 표지이야기 여는 글
6월30일 판문점 김·도널드만에서 만난 세 사람(문재인 대통령·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며 썼다. ‘붙었다 떨어졌다’라고 썼지만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후 이들의 열망은 계속 엇갈렸고, 남·북·미 관계는 출렁였다. 한반도 평화의 시계는 언제 다시 돌 수 있을까.

서보미 기자 “최. 최선입니까/ 저.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임. 임마/ 금. 금 너도 함 살아봐”
-제1248호 표지이야기 여는 글

제1248호 설 합본특대호는 최저임금에 관해 거의 ‘통권호’로 꾸며졌다. 그중 ‘노동자 편’의 여는 글을 최저임금 4행시로 썼다. 2019년 최저시급 8350원이 너무 많다는 이들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 EBS 아이돌 연습생 노동자 펭수라면? “최. 최선입니까/ 저.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임. 임마/ 금. 명중!”

박태우 기자 “타협의 산물이라는 정치에서 양보해야 하는 것은 늘 노동자다.”
-제1289호 경제 ‘도둑놈 심보에 누더기 된 노동시간 단축’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대의보다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 할증’을 막기 위한 경영계의 요구로 시행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후속 대책’이라며 유연근로제 완화,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양보는 왜 노동자만 해야 할까?

변지민 기자 “나는, 당신은, 우리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제1266호 표지이야기 ‘교도관은 “에이즈”라 불렀다’

오늘도 에이즈/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 중 누군가는 ‘악의 없는’ 사회적 왕따로 고통받는다. 의학이 발달해 HIV가 일상생활에선 감염되지 않는다고, 약만 꾸준히 먹으면 성관계를 해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설사 감염되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우리의 막연한 두려움, 누군가에겐 폭력이다.

하어영 기자 “김일성 만세”
-제1292호 “프락치 5년 지옥 같았다”

마감을 뜻하는 ‘데드라인’이 실제였다면 지난 1년 수없이 이승과 저승을 오갔다. 국가정보원 프락치 ‘김 대표’의 고백을 손에 쥐고 기사를 쓰던 그 주도 마찬가지였다. 마감날인데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헤매었다. ‘그들’이 지하혁명조직은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주체사상이란? 3대 세습은? 제보자 말이 자판 위에서 헝클어졌다. 답답함을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60년 전 김수영 시인의 시구 하나를 빌렸다.

이정우 선임기자

이정우 선임기자

【올해의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제1290호 ‘이정우의 한 컷’

낯선 여행지에서 잠 설친 새벽, 자리 털고 일어나 숙소 주변을 배회하다 만난 풍경이다. 11월11일 베트남 붕따우.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1289호 ‘눈’

고등학교 3학년 때 제주도의 한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이민호군 2주기를 맞아 열린 조형물 제막식. 아들의 품에 기대 오열하는 어머니 박정숙씨와 이를 바라보는 아버지 이상영씨. “우리는 왜 죽은 자리에서 거듭 죽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라는 시구가 행사장 한쪽을 메우고 있었다. 11월19일 제주.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제1292호 포토스퀘어

경찰이 쏜 최루가스를 마신 기억은 개인적으로 국민의 정부 때 열린 노동절 집회가 마지막이지 싶다. 그 뒤로 취재 중 더 이상 최루가스 맡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낡은 방독면도 다 정리해버렸고. 홍콩에서 다시 최루가스를 마시며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서 있기만 해제1250호 포토스퀘어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르는 후텁지근한 홍콩에서 말이다. 8월25일 반정부 집회가 열린 홍콩 신계 지역 스카이워크 쇼핑몰 일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시위대가 흩어지는 장면이다.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제1250호 포토스퀘어

‘전태일 옆에 묻힌 김용균’.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들의 동료들 사이에 서 있다. 지난 사진을 꺼내보다 어머니의 이 눈을 마주치면 멈칫한다. 아들의 죽음 뒤 어머니는 톨게이트, 현대기아차… 수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 2월9일 찍었다.

방준호 기자 “한 사람이 집을 사고, 짊어지다, 마침내 풀려난다. 이것은 1938년생 박화규와 집이 얽히고설켜온 이야기다. 한국 사회 도처에 널린 흔한 이야기, 결말은 흔치 않다.”
-제1289호 경제 ‘살려면 사야 했던 집 한 채, 여기서 갈리는 노후 복지’

풍선 매달아 정말 집을 짊어지고 다니다가 놓아버리는 애니메이션 의 주인공 할아버지 모습을, 알 듯 말 듯 인용하고 혼자 좋아했다. 은 일상과 꿈(또는 욕망) 각각의 소중함을 인정하지만, 끝내 놓고 새로 출발해야 할 시점도 있다고 얘기한다. 박화규씨 얼굴, 평생 부동산과 얽힌 한국 노인의 얼굴들이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묘하게 겹쳤다.

조윤영 기자 “Tôi muốn sự thật.”(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제1256호 표지이야기 ‘Tôi muốn sự thật’(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희생자 103명을 대표해, 4월4일 청와대에 청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직접 방문한 두 응우옌티탄이 들고 온 손팻말에 적힌 문장이다. 손에 들린 청원서에는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5개월 만에 돌아온 국방부의 첫 회신서에는 사과도, 조처도, 사실 인정도 없다. 하여 이들은 여전히 말한다.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허윤희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기록하는 일상의 음식과 삶 이야기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집밥 같다.”
-제1279호 특집 ‘모든 부엌에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 한가위 책 특집 ‘먹방 대신 먹독(讀)’ 기사에 나온 문장이다. ‘맛의 기억’을 기록하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난 거다. 누군가는 ‘아빠표 김치말이’ 레시피를 이야기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고, 또 누군가는 가자미식해를 하며 유년 시절을 추억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음식 이야기 덕분에 허기진 마음을 채웠다. 참 맛깔났다.

김현대 기자 “전우회를 배신한 고엽제전우회를 고발합니다.”
-제1246호 표지이야기 ‘고엽제전우회처럼 돈 버는 법’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는 옛 보수 정부의 관제데모를 이끌었다. 그 대가로 돈이 따라왔다. 한 해 1천억원이 넘는 공공기관의 수익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문제는 단 서너 명의 간부가 막대한 수익금을 독식했다는 것. 관제데모에 동원됐던 10만여 전우회원들은 ‘배신’에 분노했다. “전우회를 전우의 품으로” 돌리고 “군림하는 보훈단체에서 존경받는 보훈단체로” 가는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재호 기자 “모든 정신장애인을 폐쇄병동에 가두면 사회는 안전해질까?” -제1260호 사회 ‘50만을 영원히 가둬둘 수는 없다’

2019년 내가 쓰고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문장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너무 복잡해서 절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는 질문 그 자체, 질문을 계속하는 행위가 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8년 세밑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고, 올해 4월 경남 진주에서 중증정신장애인에게 5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커졌다. 한 번 더 묻는다. 가두면 안전해질까?

전정윤 기자 “남편은 내 아픔을 몰랐고, 나는 남편의 진가를 몰랐다.”
-제1277호 표지이야기 ‘나의 #오빠미투, 적어도 해피엔딩’

남편에게 어린 시절 사촌오빠 성폭력 피해 사실을 힘겹게 털어놓은 조이가 뜻밖에 남편에게서 진심 어린 위로와 지지를 받은 뒤 했던 말. 조이 부부가 서로에게 감췄던 진실과 진심을 꺼내 보인 뒤, 평생 지속될 것 같았던 조이의 고통이 끝나고 얼어붙었던 부부 관계가 녹아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장수경 기자 “이상할 것 없는 언니들의 축구대회는 계속된다.”
-제1272호 사회 ‘이토록 뜨거운 언니들의 축구’

중년 여성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 기사의 주어는 ‘○○언니’였다. ‘○○○씨’와 ‘○○언니’를 놓고, 고민했다. ‘○○언니’를 주어로 놓는 것 자체가 여성들이 축구 하는 것을 특이한 것, 예외적인 일로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언니’를 주어로 삼은 건 여성들이 더 이상 ‘관중’으로 소비되지 않고, 남성 스포츠로 여겨진 축구로 피치(운동장)를 뛰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의 축구장 안에서는 여성이 축구 하는 게 어색한 일이 아니었듯 축구장 바깥에서도 여성은 매니저, 남성은 선수라는 구도가 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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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표지】

장광석 디자인주 실장
최대한 단순하지만 여러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작업이었으면 했다. 연속 기획이어서 연작 성격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했다. 유지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제1269호와 제1271호가 그랬는데, 애착이 가는 작업이다. 작업을 위해 소스를 촬영하는 경우가 있다. 몇몇 표지는 나의 육신 등을 이미지 자료로 활용했다. 제1261호, 1285호에는 손을, 제1260호에는 오래전 군복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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