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기자
죽은 뒤 장례를 비롯한 삶의 마무리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후자기결정권’을 일본에 처음 제도화해 실행에 옮긴 곳은 도쿄에 있는 ‘리스(LISS·Living, Support, Service의 약자)시스템’이다. 비영리사단법인인 리스는 생전 계약을 통해 죽은 뒤 장례 업무 처리를 위임받고, 숨지기 전 요양시설 입소 등에 관한 신원보증인 역할을 하며, 계약자의 판단능력이 결여될 것을 대비해 ‘임의후견계약’도 맺는다. 현재 약 3500명이 가입했다.
리스시스템은 이런 서비스 형태를 ‘계약가족’이라 표현한다. 한국만큼이나 혈연과 가족을 중심으로 법체계가 만들어진 일본 사회에서, 혼자 살고 혼자 죽게 되는 노인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는 계약을 하는 리스가 ‘가족’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리스를 창립한 마쓰시마 조카이(82·사진)는 사후자기결정권에 대해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는 망자의 인권을 강조했다. 마쓰시마는 9월19일 화우공익재단과 나눔과나눔에서 주최한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가, 이튿날 <한겨레21>과 인터뷰했다.
리스시스템을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1988년부터 도쿄에서 묘지를 운영했다. 그런데 죽어서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 늘어났다. ‘내가 죽으면 내 제사는 누가 지내주지?’라는 고민을 하던,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모야이의 모임’을 만들었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뜻에 따라 묻힐 수 있다는 취지다. 사후자기결정권은 ‘내가 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했다. 생전계약과 망자의 인권이라는 말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태어날 때부터 인권을 가지듯이,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의 의지가 반영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살아 있는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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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가족’이란 말이 눈길을 끈다.
전쟁 뒤인 1947년 일본 민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호주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호주의 동의가 없으면 결혼도 할 수 없고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없었다.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는 가족이 일왕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민법이 개정돼 이런 조항이 없어졌다. 결국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가족주의를 없애는 것과 연결된다. 우리가 계약가족을 말하는 것은 가족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가족 기능을 만들려는 거다.
25년째 사업을 운영하는데, 주로 어떤 사람들이 계약하나.
90%는 돌봐줄 사람이 아예 없는 경우고, 나머지 10%는 (가족은 있지만) 죽은 뒤 처리할 것을 자기 의지대로 하고 싶은 분들이다. 사후자기결정권이라는 ‘운동’ 차원으로 일을 시작했기에 회원들 사이의 동질감도 컸다. 회원들이 죽을 때 입을 수의를 환경을 생각해 종이로 직접 만들고, 여행도 함께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동료 의식보다는 사업으로 접근하는 시각도 생겨 안타깝다. 이 사업은 인권 존중 철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겨서는 안 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회원이 숨질 때 기부한 재산 등 전체 예산의 60%가 기부금이다. 적자가 많은 상황이어서 죽기 전까지 손익을 맞추고 싶다. (웃음)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안심하고 맺을 수 있는 생전계약을 만들어,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생전계약을 맺은 사람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생전계약과 사후자기결정권이 보편화된 사회 말이다.
통역 정현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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