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쿠스쿠스> 팀 알퍼 지음 조은정 옮김 옐로스톤 펴냄 1만5천원
음식 만드는 법을 복잡하게 늘어놓는다거나 음식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적어놓은 것만 같은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독자에게 음식에 대한 호기심, 탐구심 같은 것을 불어넣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세계에 대한 위화감만 느끼게 하니까 더욱 그렇다. 먹고 마시는 일을 주업으로 삼으면서 음식 관련 책을 멀리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만의 세계’에서 표류하는 듯 낯선 기분만 느꼈다. 흔히 ‘전문용어’라 하는 이 세계의 언어가 집약된 음식 관련 책을 보면서 오히려 동떨어진 기분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철학을 공부한 영국의 요리사팀 알퍼의 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리책이 늘 부담스러웠다. ‘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유럽 음식 여행’이라는 부제는 사실, 흥미를 끌어당기기에 어색하고 식상했다. ‘유럽 요리사가 쓴 그저 그런 요리책일 수도 있겠다’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저자의 이력을 보는 순간 흥미가 생겼다. 영국에서 태어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고, 영국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호텔의 수셰프(부주방장)까지 되었다는 저자의 삶이 궁금했다. 한국에서 10여 년 살고 있다는 사실에도 구미가 당겼다. 철학자가 보는 유럽의 음식은 어떨까? ‘미식의 지옥’이라고까지 하는 영국에서 나고 자란 요리사가 만난 유럽은 어떤 맛일까? 이런 생각으로 열어본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다채로웠고 예상보다 깊이 있었다.
영국, 스웨덴이 속한 북부 유럽에서 시작해 미식의 고장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남부 유럽을 거쳐 음식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 스위스로 이동했다가 아직도 낯선 불가리아와 러시아로 향하는 여정을 담았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쫓아다니는 미식 투어에 참가한 기분이 들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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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유럽의 요리법을 소개하거나, 음식 종류만 늘어놓는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내 흥미를 끌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각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그 색채와 결이 모두 다른 유럽 요리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 그 나라의 날씨,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는 농산물, 사람들의 성정 등을 통해 그 요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왜 ‘영혼의 음식’이 되었는지 찬찬하고 섬세하게 설명해주는 기행문에 가깝다.
영국의 셰퍼드 파이, 프랑스의 테린, 이탈리아의 마르게리타, 스페인의 파에야 같은 익숙한 나라의 알려진 요리부터 벨기에의 물 프리트, 불가리아의 플젠 트사트사, 러시아의 세르드 포드 슈보이 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를 넘나드는 호기로움을 감상하는 것도 즐겁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싶을 때 요리만큼 중요한 매개체가 또 있을까?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문화이고 국민성일지도 모른다. ‘미슐랭 레스토랑 리스트가 아니라 진짜배기 맛 기행을 떠나고 싶은 모험가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설명이 딱 맞다. 지금 먹고 마시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백문영 푸드칼럼니스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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