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존경을 받는 보훈단체로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일부 선진국 사례를 보면 간명한 답이 나온다.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돈으로부터 깨끗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1년에 설립된 영국재향군인회(Royal British Legion) 사례를 살펴보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영국군 복무자는 누구나 도움 받아</font></font>
영국에서 11월11일은 1·2차 대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쟁기념일이다. 붉은 양귀비(포피)가 전쟁기념일 상징물이라 이날을 ‘포피의 날’이라고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양귀비 모양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영국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영국재향군인회는 총예산 1억6320만파운드(약 2400억원)의 30.9%에 해당하는 무려 5050만파운드(약 740억원)를 각종 양귀비 상품 판매로 마련했다. 양귀비 상품은 배지 말고도 티셔츠와 노트, 만년필 등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양귀비 디자인을 활용한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도 인기를 끈다.
영국재향군인회는 우리로 치면 재향군인회와 상이군경회를 합친 보훈단체다. 7일 이상 영국군에 복무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가보훈처 최정식 홍보팀장은 “영국에서 많은 시민이 양귀비 리본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것을 봤다. 국민의 사랑과 존경의 힘”이라고 말했다.
영국재향군인회는 기부금(5010만파운드, 약 738억원)으로도 양귀비 상품 판매액만큼의 재원을 마련한다. 양귀비 상품 판매와 기부금으로 자체 마련한 금액을 합치면, 전체 수입의 61%가 넘는 1억60만파운드(약 1560억원)에 이른다. 이 밖에 복권 판매로 2050만파운드(12.6%·이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 상이군인 가족을 돌봐주는 사업으로 올리는 수입이 1680만파운드(10.3%)였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보조금 수입은 1410만파운드(8.6%)에 그쳤다.
재원은 대부분 상이군인과 그 가족을 돕는 데 쓰이는데 투명하게 공개된다. 연차보고서를 보면, 회원 복지에 드는 예산이 34.4%인 5690만파운드(약 840억원), 거동이 불편한 상이군인 등을 위한 가정돌봄 예산이 21.6%인 3570만파운드(약 526억원)에 이른다. 총예산의 절반이 넘는 56%가 회원 복지성 예산으로 쓰인다. 또 양귀비 상품 개발과 생산에 1500만파운드(9.1%), 기부금으로 1470만파운드(8.9%)를 지출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은 대부분 정부 사업과 보조금</font></font>
보훈단체 한 관계자는 “우리 상이군경회와 고엽제전우회 등은 연 1천억원대(2017년 기준)의 대부분을 정부(공공기관 수의계약 사업과 보조금)에서 조달하고, 회원 복지로 지출하는 예산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라면서 “사랑과 존경심의 힘으로 마련한 막대한 재원을 보훈 대상자를 위해 투명하게 집행하는 영국재향군인회가 부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영국재향군인회는 회비를 내는 회원 23만8천 명과 자원봉사자 12만8천 명이 단체를 끌어간다. 시민들 스스로 참여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권력의 비호가 들어설 틈이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원봉사자 등이 제대군인 전화 상담을 해준 것만도 18만7328건에 이른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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