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쟁은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용어와 개념이 어려운데다 실생활과 밀접한 주제가 아니다보니 전문가가 아니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들다. 하지만 수사권은 공권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잘못 사용되면 국민의 기본권에 심대한 타격을 준다. 언론이 수사권 조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언론은 그동안 수사권 조정 내용보다 검찰과 경찰의 갈등에 더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를 공격하는 말과 행동,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 등을 더 크게 보도했다. 두 기관도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여론전’에 힘썼다. 정치권은 두 기관 사이에서 눈치만 봤다. 이로 인해 본질을 따지는 차분한 논쟁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민주화가 진전될 때마다 수사권 조정이 개혁 과제로 제시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까닭이다.
검찰총장,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 ‘총대’이번에도 불길한 조짐이 보인다. 두 기관의 해묵은 갈등과 이를 부추기는 해프닝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합의문 발표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수사권 조정이 삐걱대는 상황이다. 포문은 검찰이 열었다. 지난 4월30일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의 신속처리대상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외국 순방 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한 문무일 검찰총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5월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재 국회에서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형사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점을 호소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호소’라는 완곡한 표현은 그의 반대 의지를 더욱 부각했다.
경찰, 전·현직 검찰 수뇌부 수사 착수경찰은 공식적인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앞으로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에 대한 불쾌감은 숨기지 않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5월14일 일선 경찰에 보낸 글에서 “국민이 요구하고, 정부가 합의안을 제시하고, 국회에서 의견이 모인 수사구조개혁의 기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동료 여러분을 대표하는 경찰청장으로서 경검 협력관계 설정 및 검사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의 1차적·본래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 부여, 검사의 직접 수사 제한이라는 원칙이 최종 입법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합의한 내용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두 기관의 ‘여론전’도 재연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월15일 임은정 검사가 고발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수뇌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김 총장 등은 2016년 부산지방검찰청 윤아무개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실을 알고도 감찰이나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고 윤 검사를 면직 처리한 혐의(직무유기)를 받는다. 임 검사는 그동안 검찰의 부당한 관행에 맞서 소신 있는 언행을 많이 해 검찰 수뇌부에겐 껄끄러운 존재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검찰 내부에 적잖은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는 사건이다.
또한 이 수사는 앞서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을 검찰이 수사한 것에 맞대응하는 성격도 있다. 강 전 청장 등은 2016년 총선에서 정보경찰들을 동원해 친박계 정치인을 위한 선거 전략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보경찰은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검찰은 경찰에 1차 수사권을 주려면 먼저 정보 업무를 수사(행정) 업무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와 수사 기능이 결합하면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찰은 강 전 청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수사권 조정을 겨냥한 것으로 의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은 검찰과 경찰 양쪽에서 모두 원성을 사고 있다. 박 장관은 5월13일 검찰로 송치된 사건의 직접 수사 범위 확대, 경찰에 대한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권 강화, 경찰의 1차 수사 종결 사건에 대한 검찰 송치 검토를 약속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검사들이 우려하는 사항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박 장관이 편지 말미에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팩트, 외국의 제도를 예로 들면서 주장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며 말조심을 당부한 것이 큰 반발을 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장관의 편지는 ‘인사권은 두 달 뒤 퇴임하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나한테 있으니 잘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으로 읽힌다”고 꼬집었다.
문 총장도 5월16일 간담회에서 장관 편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장관의 지적은) 큰 틀에서 어긋나 있다. 그런 정도로 손을 봐갖고 될 문제면 이렇게 문제제기를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의 편지는 경찰의 반발도 샀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합의문에 서명한 당사자가 합의 내용을 뒤집는 말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개혁 의지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경찰 의혹 사건’ 자체 종결 맡겨도 되나수사권 조정 논의가 불길한 조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검찰과 경찰 모두 과거보다 강도 높은 자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은 문 총장 취임 후 정보 관련 부서를 해체했다. 또 인지 수사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전국 43곳의 특별 수사 조직을 폐지했다. 경찰도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권력의 비대화를 막기 위한 제도를 추진한다. 이는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에겐 좋은 일이다.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문제제기가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는 것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검찰은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면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검찰의 권한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권이 명문화돼 있긴 하지만 경찰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면 보완 수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제2, 제3의 ‘버닝썬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버닝썬 사건 수사에 석 달 동안 150여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5월15일 버닝썬 쪽과 유착 의혹을 받은 윤아무개 총경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윤 총경에게 업소 단속 사항을 확인해준 혐의(직권남용)만 적용했다. 그가 받은 접대의 총액과 대가성 여부 등을 확인하지 못해 뇌물죄는 물론 김영란법 위반 혐의도 적용하지 못했다. 경찰은 윤 총경이 식사와 골프 접대, 가수 승리의 콘서트 티켓 등을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어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액수도 300만원 미만이어서 김영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다.
반면 경찰은 버닝썬 사건을 제보한 김상교씨는 성추행과 폭행, 업무방해 혐의 등을 걸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김씨는 이에 반발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러리라 예상했지만 청문회 특검 시위는 분명 필요해 보인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특검 요구 청원 글을 공유했다.
김씨의 혐의 여부와 김씨가 제보한 내용(경찰 유착과 마약 투약 등)의 범죄 유무는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로 최종 확정될 것이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안에 따르면 김씨가 제보한 경찰 유착 의혹 등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기 때문에 자체 종결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검찰에서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에 대한 보완 수사를 요구하더라도 경찰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보완 수사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든지, 수사권 남용이라든지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 검찰이 수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억울한 김씨가 경찰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사건 기록을 검토한 검찰이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수사를 한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낸 수사 기록을 보고 검사가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경찰 수사 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검찰 주장은 전문가들도 일부 공감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하는 시스템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 (중략)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를 사실상 놓아버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지금과 같은 수사권조정안을 통과시키려면 경찰 권한에 각종 통제 방안이 반드시 패키지(묶음)로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권 조정 기본은 ‘국민 기본권 보호’경찰은 검찰의 이런 주장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권, 시정 조치 요구권, 경찰에 대한 직무 배제·징계요구권 등 다양한 통제 장치가 조정안에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법안에는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따라야 한다’고 돼 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검찰이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다. 어느 공무원이 징계를 무릅쓰고 정당한 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의 주장은 수사 통제를 검찰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수사권 조정의 기본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다. 수사기관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수사권 조정 논의가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수사권 조정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과연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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