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가 서울대 산학협력단(이하 산단)에서 민간 기업 툴젠으로 이전되는 과정은 부실 그 자체였다.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국민 세금 수십억원을 지원받아 기술을 개발하고도 발명신고서에 이 사실을 적지 않은 점, 그 결과 특허가 헐값에 툴젠으로 넘어간 점, 산단이 수많은 내부 규정을 위반한 점 등이 점차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한국 최고의 명문대라 하는 서울대에서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걸까. 그 배경에는 여러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사태와 같은 ‘특허 부당 이전’을 막으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 특허 전문가와 서울대 관계자 등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정부 성과평가에서 특허 양적 지표 빼야정부는 연구과제 성과를 평가할 때 연구 결과로 나온 특허의 양과 질을 반영한다. 경제적 성과를 내도록 장려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지만 교수들이 연구비를 받기 위해 불필요하게 출원하는 ‘실적용 특허’를 대량 양산하는 부작용도 있다.
전직 서울대 산단 직원은 “서울대 산단이 출원하는 특허 중 실적용 특허가 상당수다. 변리사는 5명 수준인데 특허 출원이 매년 1천여건에 이르다보니 가치평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 틈에 누군가 특허를 부당 이전해도 적발하기 어렵다. 출원 비용과 시간 낭비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특허를 다수 출원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와 일부 연구자들의 비양심이 결합된 결과다. 서울대만 이런 게 아니다. 2017년 12월 특허청·한국특허전략개발원에서 발간한 ‘2016년도 정부 R&D 특허성과 조사·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에서 정부연구비를 받아 출원된 특허가 기업으로 이전된 비율은 6.4%에 불과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2016년 4월 낸 ‘창출단계에서의 특허 질 제고 방안’ 보고서를 보면 연구개발비 투입 10억원당 한국의 특허출원 건수가 세계 1위지만 “다수의 저질 출원이 양산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성과평가에서 특허의 양적 지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직 서울대 산단 직원은 “특허를 얼마나 많이 출원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경제적 가치가 없는 특허라도 얼마든지 출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산단 직원에게 ‘무가치한 특허를 출원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산단의 단장과 부단장 등 주요 보직을 이공계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등 교수의 권력이 직원보다 훨씬 커 출원 거부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술가치평가 제대로 해야공채에서 1차 서류면접을 보고 2차·3차로 필기시험과 면접을 보듯, 돈이 될 만한 특허를 한 차례 걸러내 소수정예 특허를 남긴 다음 외부 전문기관에 기술가치평가를 맡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툴젠 같은, 교수가 창업한 기업과의 계약에서 특허가 헐값으로 이전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기술지주회사 사장은 “특허의 잠재가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현재는 특허 양도 계약이 주로 이뤄지는데, 이보다는 대학이 기업에 특허 사용권을 주고 지분이나 실시료를 받도록 정부가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에게 정당한 보상을연구자가 특허를 개발해 기업에 양도하면 발명자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대학에서는 교수가 발명자 보상금을 자기 마음대로 나눌 수 있다. 2011년 한 서울대 교수는 발명자 보상금 11억6천만원 중 10억5천만원(90.5%)을 혼자 가져갔다. 과제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 24명은 고작 450만원(0.4%)씩 받았다. 감사원 감사 결과 나온 내용이다.
보상금을 공정하게 나누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김진수 교수 연구실 출신의 한 연구자는 “미국의 경우 대학본부가 특허를 개발한 연구자들을 한 명씩 따로 만난 뒤 기여도를 직접 판단한다. 한 명이라도 동의를 안 하면 기술이전이 안 된다”고 했다.
홍지수 서울대 대학원총학생회 사무총장은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서울대 산단의 운영 상황에 지속적으로 여러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허 관리 문제 외에 간접비 관리와 연구자 지원 현황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툴젠 중앙연구소’. 김진수 교수가 서울대 화학부에서 연구실을 운영할 때 대학원생 일부가 연구실을 이르던 별칭이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건지, 툴젠에 고용돼 연구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는 자조적 의미가 담겼다.
교수가 회사와 연구실을 동시에 운영하다보면 이해충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점점 더 많은 이공계 교수가 창업하고 있지만, 학내에서 이해충돌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교수가 회사를 만들면 사업에 몰두하느라 수업과 연구를 제대로 못하는 문제도 있다. 홍 교수는 “창업하면 일정 기간 휴직하고 사업에 전념하게 하는 방안이나, 창업하고 3~5년 정도만 겸직을 허락하는 등 대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노트 활성화하자연구자들이 평소 연구노트를 제대로 쓰면 특허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연구노트는 연구자 본인이 수행하는 연구, 실험 등 모든 과정을 적는 기록물로 연구기관이 보관한다. 연구보안 분야 전문가인 강선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획예산팀장은 “연구노트 작성이 활발해지면 특허 분쟁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또 “연구자가 이직할 때 기관끼리 만나서 해당 연구자의 지식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있는 규정부터 잘 지키자앞의 내용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김진수 교수와 서울대 산단 직원들이 서울대 내부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지금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 교수를 옹호하는 일부 교수들은 산단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며, 특허를 빠르게 외국 각지에서 출원하고 그 뒤 진행될 분쟁에 대응하려면 민간 기업 툴젠이 특허를 가져가는 게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도적 문제와 일부 교수들의 비양심적 행동으로 산단의 업무가 과부하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교수가 진짜 급하다고 하면 산단 직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교수와 직원의 권력관계를 생각해보라. 규정과 절차를 지켜도 충분히 특허를 빨리 출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규정상 산단이 특허출원을 거절할 경우 교수 개인이 직접 출원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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