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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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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 제재 완화의 중간 지점을 찾아라

북-미 회담 동력을 되살리는 방안…

앞으로 한국 중재자 역할이 중요한 과제
등록 2019-03-11 15:03 수정 2020-05-03 04:29
지난 3월5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을 마치고 평양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왼쪽)과 2월28일 2차 북-미 회담을 끝내고 백악관에 온 도널드 트럼프 미
국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3월5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을 마치고 평양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왼쪽)과 2월28일 2차 북-미 회담을 끝내고 백악관에 온 도널드 트럼프 미 국 대통령. 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회담 결렬의 막후 주역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북제재 강화 가능성까지 내비쳤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재건 움직임까지 관측됐다.

이러한 북한과 미국의 움직임이 후속 회담의 전망을 무조건 어둡게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협상 재개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신경전과 기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 거래 성사 가능성 낮아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를 떠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외교 역량과 남북관계 관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일시적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변 핵시설 폐기로부터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면서 경제제재 해제를 얻어내려고 했던 북한의 시도가 미국의 ‘영변+α’ 요구로 인해 장애물에 부딪힌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과 미국 사이에 ① ‘영변+α’ 폐기를 조건으로 2016년 이후 5건의 유엔 제재를 모두 해제하거나 ②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5건에 이르는 유엔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는 두 방안 중 한 가지 타협안에 합의할 때만 차기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①번 방식을 따르는 과감한 비핵화 협상을 통한 ‘빅딜’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북핵 협상의 역사에 비춰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올인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도 올인하라’고 밝혔다는 미 국무부 관계자의 발언대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의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빅딜이 가능했다면 지난 25년간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제한된 임기 내에 불가역적 수준의 비핵화를 성취해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에 따른 불확실성은 ‘빅딜’ 방식보다는 영변을 출발점으로 하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②번 방식에서 북-미 회담 재개의 모멘텀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AP 연합뉴스.

AP 연합뉴스.

신뢰 구축 조치, 핵무기 일부 선제 폐기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북·미 간 입장 차이를 중재하기 위해 ②번 방식을 통해 북-미, 남북, 또는 한-미 간 회담을 시작하더라도 중간 지점의 타협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시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영변 핵시설 폐기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나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재 해제 과정을 쪼개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영변 내 5MWe(전기출력 단위)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 등 모든 시설의 폐기 의사를 기반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에 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고정변수로 놓고 부분적 제재 완화의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 회담의 동력을 되살리는 방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위한 구체적 조치에 들어갈 경우, 2016년 시행 제재 조치인 석탄 수출 상한을 그대로 둔 채 2017년 말 채택된 유엔 제재 2397호의 정유제품 수입 상한선 50만 배럴을 일부 상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재 완화를 시작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 완료 시점에 이르러 석탄 제재의 상한선을 완화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영변+α’ 폐기 조치가 마무리되는 시점과 5건의 제재 해제 시점을 일치시키는 방식이다.

문제는 북한이 최종 목표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단계별 조치를 통한 제재 해제에만 관심을 보이고, 미국이 중간 단계를 도외시한 일괄 타결만 고집해서는 차기 회담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북미 간 신뢰 수준이 낮은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이런 동상이몽이 지속되는 한 트럼프 임기 내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미 신뢰 구축 조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가능한 신뢰 구축 조치는 핵무기 일부의 선제 폐기, 종전선언 또는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남북경협 활용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의 발목을 잡는 미국 내 여론을 되돌릴 수 있는 핵심적 조치는 핵무기 일부의 선제 폐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식에 북한이 동의한다면 미국은 유엔 제재 중 북한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광물, 의류와 섬유, 수산물 중 일부에 한해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 신뢰 구축을 위한 세 가지 조치 중 비핵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되살리는 데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이다.

또한 북한이 9·19 평양공동선언 제5조 ①항에서 천명한 대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유관국 전문가 참관 아래 폐기를 이행한다면 이를 계기로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함으로써 북-미 협의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도록 하는 보장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남북경협의 일부 재개 방안도

동창리 시설 폐기가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합의 이행을 전제로 남북경협의 일부 재개를 신뢰 구축 조치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제재 해제나 완화 조치 없이도 가능한 유엔 결의 2397호의 사안별 면제조항(제25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 구축 조치로서 남북경협 재개가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비핵화 추가 협상의 동력을 떨어뜨리거나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유념하면서 한-미 공조로 위험성을 배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비례성 원칙에 따라 영변 핵시설 폐기 프로세스와 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연동시키는 방식은 이러한 신뢰 구축 조치와 병행할 때 효과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 교착상태 장기화를 방치하지 않고 상호 후속 행동에 나서도록 양쪽을 설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미국을 향해서는 ‘빅딜’ 형식의 포괄적 협상이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북핵 협상의 역사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북한을 향해서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불가역적 비핵화 수준을 달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중재와 조정 역할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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