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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삭제 주체 증거 없는데 안희정 재판부

안희정 재판 과정 문제 ③ 증거보다 추정
등록 2018-08-28 12:37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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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비공개됐던 피해자의 법정 증인신문 녹취서와 피해자 심리 분석을 의뢰받은 전문심리위원의 법정 신문 녹취서를 통해 1심 재판부가 무죄라는 종착역으로 가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지켜야 하는 피해자 보호 의무는 휴짓조각이 되었고, 피해자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은 비전문성과 편파성으로 얼룩졌다. 파편화되고 불완전한 휴대전화 기록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등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증거주의’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무죄라는 결과보다 무죄에 이르는 과정이 문제였던 셈이다.
8월14일 1심 재판부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포토라인에 선 안 전 지사는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8월14일 1심 재판부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포토라인에 선 안 전 지사는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1심 재판부의 판결문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때 많이 쓰이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4차례 성폭행 피해 가운데 서울 강남 호텔에서의 성폭행 피해를 뺀 나머지 3건의 피해에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는 근거가 됐다.

러시아에서 벌어진 성폭행 피해를 재판부는 보도자료에서 “이 당시 피고인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대부분 삭제돼 있는데, 그 과정이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피해가 있었던 시각에 남아 있는 텔레그램 메시지는 단 4개(새벽 1시28분 ‘누구랑?’, 새벽 1시31분 ‘옙’, 새벽 2시7분 ‘자니?’, 오전 8시33분 ‘글고 여기 문자’)로 맥락을 읽을 수 없는 조각난 메시지들이다.

메시지 삭제 피해자가 했다고 ‘추정’

피해자는 새벽 2시7분 ‘자니?’ 문자 이후 맥주를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받고 객실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를 유인한 결정적인 메시지가 삭제된 것이다. 피해자는 검찰 진술 때는 물론 법정 증언 때도 “지사님이 지우셨을 수도 있는데 저는 지운 적이 없다”고 답했다. 피해자는 검찰의 최초 조사 때 텔레그램과 관련해, 안 전 지사는 텔레그램 비밀방을 개설해 “미안하다” “잊으라”고 했으며 일반방의 관련 문자도 지우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는 일반방으로 피해자를 불렀고, 성폭행 이후 사과는 비밀방에서 했다는 얘기다.

텔레그램은 나와 상대방 채팅방 모두에서 나의 메시지 기록을 삭제할 수 있다. 카카오톡은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발송되면, 상대방 채팅방의 기록은 삭제할 수 없다. 텔레그램 비밀방의 경우 카카오톡 비밀방과 달리 휴대전화로 화면 캡처(갈무리)도 되지 않는다. 텔레그램 비밀방은 둘 중 하나가 ‘자동삭제 타이머’를 설정해놓으면(초 단위~1주일), 주기적으로 메시지 전체가 삭제된다.

누가 삭제했는지가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인데도 재판 과정에서 삭제 주체와 관련한 심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 신문 때는 ‘지사님이 하셨을 수도 있고, 저는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만 확인됐다. 검찰은 텔레그램 삭제 주체와 관련한 디지털포렌식 정보를 증거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텔레그램 삭제 주체는 포렌식으로 확인 안 된 거냐’는 질문에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관계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메시지 삭제를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는 근거로 썼으나, 추정일 뿐 증거가 없다.

직접 증거 하나도 없어

텔레그램 삭제는 마포 오피스텔 성폭행 관련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때도 쓰였다. 재판부는 “2018년 2월23일과 2월25일 사이에 ‘2월24일’ 대화 내역은 아예 없고, 통화 내역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한 번도 ‘전화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적이 없다. 그리고 재판부가 말하는 텔레그램은 비밀방이 아니라 일반방 기준이다. 피해자는 2월25일자로 안 전 지사가 삭제한 텔레그램 비밀방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캡처 자료를 제출했다. 다른 여러 대화방 목록 가운데 끼어 있던 비밀방 개설 흔적을 캡처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반방과 비밀방의 차이를 따지지 않았다.

수행차량에서 한 성추행도 당시 경선캠프 때 만나 친분이 생긴 ㅅ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근거로 피해 사실이 배척됐다. 22:33경 ‘그냥 또 다시 시러짐요’라고 보낸 것과 23:54경 ‘또 괜찮고 / 아’라고 보낸 것을 근거로 재판부는 “성추행 발생 시각을 이 사이로 특정했다. 성추행 이후에 ‘또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추정’이다. 6개 추행 사실 가운데 안 전 지사 쪽이 유일하게 인정한 이 성추행의 범죄 사실 여부는 결국 시간대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추행 시점 신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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