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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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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 논쟁

교육부, 초·중·고 새 역사교과서에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병용…

역사과위원회 심의 의결과 무관한 결정에 “여전히 비민주적” 비판 목소리
등록 2018-07-31 16:33 수정 2020-05-03 04:28
2011년 10월28일 서울 중구 필동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토론회’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를 주제로 보수와 진보 학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0월28일 서울 중구 필동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토론회’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를 주제로 보수와 진보 학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역사교육을 정치도구화했던 2011년 자유민주주의 파동, 2015년 개정 교육과정 강행 과정에서 보여준 지난 정권의 적폐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식 폐기된 지 1년2개월 만인 7월26일 역사학자들이 다시 교육부를 향해 “적폐 재현”이라는 날선 비판을 내놨다. 교육부가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 심의 의결과 무관하게 지난 7월23일 느닷없이 2020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함께 쓰기로 한 데 따른 항의였다. 교육부는 두 용어를 병용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고 역사교과 교육과정 개정안과 집필 기준을 확정하고 7월27일 관보에 고시했다. 6월22일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때까지만 해도 기존의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겠다던 교육부가, 이후 교육과정심의회와 일언반구 상의 없이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절차상 하자가 많은 역사과 교육과정 발표</font></font>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의 학습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교과서 집필과 수업 등의 기준이 된다. 이번에 개정되는 교육과정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확정에 따라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적용 시기를 2018년에서 2020년으로 연기하기 위한 ‘후속 조처’다. 새로 개발한 역사과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은 역사과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통해 교육부 장관이 공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역사과위원회 심의 의결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절차상으로 하자가 많은 역사과 교육과정 내용을 발표했다. 역사과위원회는 성명에서 “이번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 기준 개정안이 어떤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는지 명확히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교육부 주장대로 역사과위원회가 아니라) 교육과정운영위원회를 거쳤다면, 누가 참여하고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하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일종의 ‘정치적 타협’으로 해석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시작된 역사교과서 ‘자유민주주의 논란’을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함께 쓰는 방식으로 절충해 풀어보려 했다는 분석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지난 2월4일 이낙연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답변한 내용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이 총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은 “연구진 개인 의견”이라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총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정부 입장이 아닌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원 역사과위원회 위원장(대림대 교수)은 과 한 통화에서 “발표 당일 오전까지도 교육부 공무원들이 아무 말 없었다”며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해진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정권이 아닌 교육부 공무원들의 문제이고 이들이 지난 정권의 적폐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한종 역사과위원회 부위원장(한국교원대 교수)도 “2011년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꿀 때도 심의회에서 아무 얘기가 없었고, 박근혜 정부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꾼 것도 마찬가지”라며 “민주 정부가 들어선 사회에서 여전히 교육부의 의사결정 방식이 굉장히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뉴라이트 성향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 </font></font>

사실 2000년대 이전 역사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역사교과서에서 의식적으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쓰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교과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도 모르게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다. 뉴라이트 성향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조처였다.

당시 주류 역사학계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고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도덕(윤리)·정치·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역사 과목만 자유민주주의를 쓰는 것은 과목 간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는 헌법 전문에 쓰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거로 들이댔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헌법 전문에 처음 나온 것은 1972년 12월27일 7차 개정된 유신헌법이다. 그나마도 헌법에 쓰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의미한다는 게 정설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것이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는 교과서 집필진이 선택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할 수는 있으나, 이를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에 명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서술을 심각하게 제한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확대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를 자유민주주의로만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이며, 이를 써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지난 2월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초안을 내놓자,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시절 ‘국정화 전도사’로 불리던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재 1998.5.28. 96헌가4등)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당 논평 62회 중 ‘자유민주주의’ 10차례 그쳐 </font></font>

역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대부분 민주주의를 썼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는 자유·평등·인권·복지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해 자유민주주의만 쓸 경우 지나치게 협소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실제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 2011년 이전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해왔다. 첫 국정 국사교과서가 발행된 3차 교육과정 당시,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에는 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 용어와 관련된 기준이 아예 없었고 교과서 서술 내용에 민주주의가 등장한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1년 4차 교육과정에서는 ‘민주국가의 수립’을 다루도록 하고, 교과서 내용에 민주주의가 등장한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5차 교육과정에선 “광복 이후의 현대사를 민주정치의 발전 (중략) 등을 중심으로 파악”하도록 했다. 당시 편찬 준거(안)에서도 “4·19를 민주주의의 자유 혁명의 성격에서 설명”하라고 돼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2년 6차 교육과정에선 “광복 이후의 민주정치의 발전 (중략)”을 다루게 하고, 편찬 준거(안)에서 “5·16 군사정변 이후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을 중심으로 서술”하라고 돼 있다. 이때 처음 편찬 준거(안)과 교과서 본문 학습정리에 자유민주주의가 등장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7년 7차 교육과정에선 국정 역사교과서와 검정 한국근현대사교과서가 공존했다. 국정 집필 준거에서는 “민주주의의 시련과 경제개발”을 다루도록 하는 한편, 집필 준거에서도 “유신체제의 성립으로 장기 집권과 독재정치가 이뤄져 민주주의가 시련을 겪게 되었음을 설명”하라고 돼 있다. 같은 시기 검정 교육과정에서는 “현대사회는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신장 및 민족 통일을 위한 부단한 노력의 과정으로 인식한다”거나 “6월 민주항쟁 이후 (중략) 민주주의 발전이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하였음을 이해한다”고 돼 있다. 노무현 정부가 공고하고 이명박 정부가 검정한 2007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정, 집필 기준 모두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도 정작 논평·성명에서는 민주주의를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한경 경기도 부천 중원고 교사(전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가 2004~2018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대변인 공식 논평·성명 제목 가운데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나온 사례를 분석해보니 총 62회였다. 민주주의가 52차례 쓰인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10차례에 그쳤다. 조 교사는 “자유한국당은 민주주의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쓸 때 미처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꼬집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북한 인민민주주의와 구별하려는 시도” </font></font>

조 교사는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쓰는 맥락을 크게 두 가지로 짚었다. 우선 ‘지켜야 할 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다. 조 교사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경의를 표하며… 오늘 우리는 국민들의 열망과 희생을 통해 지켜낸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고”(전희경, 2018년 4월19일) 등을 예로 들었다. 조 교사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구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6·25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북한과의 갈등·경쟁 구도에서 정의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지배 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경향도 보였다. “자유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이 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모두 부정당한 꼴”(장제원, 2018년 1월2일) 등이 그 사례다. 조 교사는 “만일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이란 것이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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