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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보가 계엄령 문건 낳았나

기무사 탄핵 기각 대비 왜…

“탄핵 기각” 정보보고에 청와대가 지시?
등록 2018-07-17 17:08 수정 2020-05-03 04:28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2017년 3월 탄핵 정국 때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에 대비한 문건이다. 당시 탄핵 찬성 여론이 80%에 이르고 학계와 법조계 등 전문가 집단에서도 탄핵 인용 전망이 우세했는데 기무사는 왜 이런 문건을 만들었을까,
기무사가 탄핵 기각에 대비한 것은 당시 청와대의 ‘판단’과 관련 있어 보인다. 한광옥 비서실장 체제의 청와대는 헌재의 탄핵재판 선고일(3월10일) 직전까지 기각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헌재와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을 통해 재판관 4 대 4 또는 5 대 3으로 탄핵 정족수(6명)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정보보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는 “민정수석실의 정보 수집 차원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탄핵 선고일 직전까지 오판
‘4 대 4 기각’ 정보는 탄핵재판 변호인단을 통해 수집했는데, 기각 의견으로 분류한 재판관들이 왜 그런 의견을 낼지 그럴듯하게 설명돼 있었다고 한다. 변호인단이 기각으로 분류한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이 추천한 서기석·조용호 재판관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안창호 재판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추천한 김창종 재판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이 아닌 다른 루트로 청와대에 보고된 정보는 ‘5 대 3 기각’이었다. 보수 성향의 한 재판관이 탄핵재판 초기에 기각 의견을 갖고 있었으나, 증거로 제출한 검찰(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별수사팀) 수사기록을 본 뒤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앞서 김기춘 비서실장 때의 청와대는 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 헌재의 평의 결과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한 바 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선고(2014년 12월19일) 이틀 전 메모에 헌재의 결정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가 2016년 12월5일 김 전 수석 유족의 동의를 받아 확보한 비망록을 보면, 2014년 12월17일치 메모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을 의미하는 ‘장(長)’이라는 표시와 함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또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소장 의견 조율 중(금일)”과 함께 “당 공천(정당국가) 당 대표/국민의 선택. 헌재 권한 범위 外(외). (사회주의제국당)은 상실 선언 사례 有(유)”라고 적혀 있다. 당시 헌재가 정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지역구 의원직까지 박탈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이견이 있다는 내용의 메모다. 비례대표는 당에서 지명했기 때문에 의원직 박탈에 문제가 없지만, 지역구 의원은 유권자가 결정했기 때문에 헌재가 결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독일 사회주의제국당은 지역구 의원직까지 박탈한 선례가 있다.
실제 당시 헌재는 지역구 의원직 상실 여부를 두고 선고일 전날까지 일부 재판관이 의견을 확정하지 못했고, 박한철 헌재소장이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 메모는 청와대가 헌재의 결정 내용을 선고 이틀 전에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헌재는 선고 당일에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선고 하루 전인 12월18일 메모에는 청와대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른 후속 조처를 논의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①국고보조금 환수-계좌 압류-동결 ②공문 발송-채무 부담 등 원인 행위 금지 등 ③의원직 판단이 없는 경우-비례:해산유지 법조항 전원회의-지역:조치 불가 국회 윤리위가 해결”이라고 적혀 있다.

황교안 “지시도 보고도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탄핵 정국 때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이 보고한 탄핵 기각 정보에 근거해 기무사에 관련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7월12일 과 한 통화에서 “지시한 것도 없고 보고받은 것도 없다”고 밝혔다. 조대환 당시 민정수석도 “기무사 문건은 민정수석실 업무가 아니다. 그런 문건을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탄핵 기각’ 정보보고는 당시 헌재 상황과 크게 달랐다. 복수의 헌재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찰 수사기록 검토가 끝난 2017년 1월 초에 이미 재판관들 사이에서 탄핵 인용 의견이 대세였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헌재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매우 탄탄하게 잘돼 있어서 수사기록을 본 재판관들이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말을 종종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국회가 2016년 12월9일 탄핵소추를 의결하자 이틀 뒤인 12월11일 주심에 강일원 재판관을 배당하면서 탄핵재판에 본격 착수했다. 박한철 헌재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퇴임(각각 2017년 1월31일과 3월13일)을 앞두었던 헌재는 재판을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탄핵 정국에서 새 재판관 임명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고 이로 인해 탄핵재판이 표류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헌재소장은 자신의 임기 만료 6일을 앞둔 1월25일 9차 공판에서 이정미 재판관 퇴임일인 3월13일 이전에 선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2명이나 빠진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자칫 정당성 시비를 일으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의 이런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김평우·서석구 변호사를 중심으로 노골적인 재판 지연 전술을 펼쳤다. 특히 김 변호사는 박 헌재소장에 이어 재판장을 맡은 이정미 재판관 앞에서 막말 변론을 해 방청객들의 빈축을 샀다.
두 변호사의 ‘막가파식’ 변론은 오히려 재판관들을 자극했다. 또 다른 헌재 관계자는 “두 변호인의 무례한 행동으로 이정미 재판관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른 재판관들도 몹시 불쾌해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탄핵재판 막바지에 등장한 태극기 부대는 그때까지 탄핵 인용에 가까웠던 일부 보수 성향 재판관들의 심경에 변화를 줬다고 한다. 평의 과정에서 재판관 2명이 탄핵 기각 쪽으로 기운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기각 의견으로 헌재 결정문을 쓰기에는 논리가 빈약했다.
두 재판관은 대신 ‘세월호 7시간’ 부분을 다수의견(탄핵 인용)에서 빼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사건 발생 초기에 박 전 대통령의 불성실한 직무수행을 파면 사유에서 빼는 조건으로 다수의견에 가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실제 헌재결정문에서 세월호 7시간 부분은 “파면 사유는 아니더라도 성실직무수행의 의무를 방기한 점은 맞다”는 보충의견(이진성·김이수 재판관)으로 정리됐다.

정보보고와 딴판이었던 헌재
재판관들은 8 대 0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당시 보수 성향 재판관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달리 탄핵 인용을 결정한 것은 ‘탄핵 기각에 따른 국가적 혼란’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만약 청와대에 보고된 대로 5 대 3으로 탄핵이 기각됐다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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