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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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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괴리 큰 ‘좋은 죽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끈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 인터뷰…

“가족동의 등 절차 너무 복잡해”
등록 2018-07-17 16:49 수정 2020-05-03 04:28
허대식 교수 제공

허대식 교수 제공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3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암환자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는 “마지막까지 무의미한 항암제를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그렇게 가는 것이 최선의 죽음인 것처럼 생각하는 ‘의료 집착’이 심각하다”면서 “사실은 그럴수록 환자가 더 고통당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올해 2월 시행을 이끌었으며, 그 한 달 전에는 연명의료 현장의 생생한 경험 등을 다룬 책 을 펴냈다. ‘좋은 죽음’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허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법 절차 이행 비율은 10~20% 불과”연명의료결정법이 올해 2월 시행되고 다섯 달이 지났다. 현장에선 잘 시행되고 있나.

법이 너무 복잡해서 대형병원 말고는 법을 지킬 수가 없다. 현행법은 임종을 맞는 모든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여부 의사를 밝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법 절차를 이행하는 사람은 10~20%에 불과하다. 한 해 죽음을 맞이하는 28만 명의 대다수 환자가 자기 뜻과 상관없이 여전히 연명의료의 고통을 당한다는 뜻이다. 정부에선 서류(연명의료계획서 등)만 쓰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게 된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실례를 들어보자.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던 암 환자가 집 근처 요양병원에서 병간호를 받다가 임종을 맞은 적이 있다. 진작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했고 서울대병원에 전산 등록까지 마친 환자였다. 그런데 요양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을 피할 수 없었다. 환자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 간에 전산 기록만 공유하면 되는데, 왜 그런 것까지 막아 환자의 고통을 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5명 이상의 자체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라는데 소규모 요양병원에서 어떻게 그런 걸 갖출 수 있나. 의사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2명 이상의 확인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의사 혼자 진료하는 영세 의료기관이 많다. 또 환자의 가족이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경우엔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어 연명의료 여부를 당장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서류를 어떻게 다 갖출 수 있나.

“우리나라에서 임종을 맞은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가 아직 드물어요. 가족들은 환자한테 임종이 가까웠다고 알리고 연명의료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여전히 꺼리고요. 이러다보니 해마다 3만~5만 명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로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연장하고 있어요. 환자가 원해서가 아니라 연명의료 결정의 책임을 모두 회피하는 거예요.”

허 교수는 “극소수의 악용 소지를 막자고 복잡한 법 절차를 만들어놓았다는 건데, 그 때문에 선의를 가진 대다수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동의 가족의 범위 간소화해야”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려 해도, 동의 절차가 까다로워 문제라는데.

현행법은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면 자식들뿐 아니라 손자·손녀까지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의 가족의 범위를 바로 위아래 직계로 간소화하는 법 개정안이 이미 제출돼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진이 가족과 의논해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선진국형으로 개방돼야 한다.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일본과 대만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사정이 궁금하다.

두 나라는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가장 보수적이다. 대만은 우리가 올해 처음 도입한 연명의료결정법 수준의 국가 지침을 일찌감치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임종 말기 환자뿐 아니라 식물 상태 환자와 치매 환자까지 연명의료 중단 범위를 확 넓힌다. 일본은 2007년 국가 지침 도입 때부터 의료진이 가족과 의논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유럽식 보편적 가치를 반영해 10년 이상 시행하고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일본은 추가로 법 개정을 한다고 들었다. 가족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반영한다는데….

이혼과 별거가 많고 홀몸노인이 늘어나지 않나. 가족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개정안의 요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가족 범위를 더 넓히는 방향으로 간다. 직계에 국한하지 않기로 했다. 또 하나는 의료기관뿐 아니라 가정이나 119구급차 등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장소에서 이 법을 적용키로 했다. 지금은 집에서 임종을 앞두고 구급차를 부르면, 119요원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한다. 앞으로는 이런 경우에도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015년 영국 경제주간지 가 세계 80개국의 ‘죽음의 질’ 지수를 매겼는데, 우리가 18위더라.

통증 완화 치료, 치료 환경, 인력, 치료의 질, 지역사회 참여 등 5개 카테고리로 나눠 조사한다. 영국이 1위이고,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6위, 일본이 14위로 우리보다 높았다. 2010년 첫 조사에서는 우리나라가 40국 중 32위였는데, 5년 사이 순위가 급상승했다. 임종 말기 환자의 항암제 투여가 줄고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늘어난 게, ‘완화 치료’ 점수 상승으로 반영됐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항암제 대신 강한 진통제로 통증을 덜어줘야 하는데, 그전에는 환자도 의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람 살리겠다고 항암제 투여에만 매달렸다.

올해 초 펴낸 이란 책 제목이 눈에 쏙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책을 내게 됐나.

항암 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여서 임종하는 환자들을 늘 만난다. 의사로서 또 개인으로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 ‘의료 집착’이 너무 심하다. 무의미한 항암제를 마지막 순간까지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그것이 최선인 것처럼 생각한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또 치료받다가 끝나는 게 죽음의 길인 것처럼 인식한다. 그럴수록 환자는 더 고통당한다.

품위 있는 죽음의 길을 찾아서

그는 “연극에도 1막부터 4막까지 있듯이, 한 인간이 환자로서만 죽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집안의 아버지이고, 누구의 친구일 텐데, 각자 나름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두서너 달이라도 가지도록 해야죠. 그런 게 품위 있는 죽음의 길일 텐데, 우리 사회에선 완전히 무시되고 있어요. 그게 큰 잘못이고 그게 바뀌어야 해요.”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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