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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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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도 엉터리 피폭량 제공

‘승무원에 월별 정기 제공’ 발표와 달리 사내 전자게시판에

연간 누적량만 올려… 회사 쪽 “매달 누적량 업데이트”
등록 2018-07-03 17:02 수정 2020-05-03 04:28
한 교육박람회에서 승무원 체험을 하는 학생들. 정작 승무원의 세계로 들어서면 방사선 피폭량 등 건강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연합뉴스

한 교육박람회에서 승무원 체험을 하는 학생들. 정작 승무원의 세계로 들어서면 방사선 피폭량 등 건강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연합뉴스

“회사는 피폭방사선량을 승무원에게 공지하고 승무원은 피폭방사선량을 확인해야 함.”

지난 6월22일 아시아나항공이 승무원들에게 보낸 ‘승무원의 방사선 선량한도 기준 및 피폭방사선량 확인방법’이라는 공지사항에 담긴 내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뉴욕·시카고 노선을 운항할 때 각각 월 2회 북극항로를 이용한다. 승무원들의 피폭 우려는 오래된 얘기다. 보도(제1216호 표지이야기 ‘스튜어디스는 왜 백혈병에 걸렸나’) 뒤 대한항공에서는 승무원들의 개인 피폭량 정보 제공 요구가 빗발쳤다. 아시아나항공은 승무원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사내 공지를 해 피폭량을 확인하도록 한 셈이다.

15년 경력 승무원 “피폭량 공지는 처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보고서(왼쪽)는 피폭량 정보에 대해 회사 쪽 주장을 베꼈다. 실태조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한겨레21> 보도 뒤 아시아나항공은 승무원들에게 피폭량을 확인하라는 갑작스러운 공지(오른쪽)를 보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보고서(왼쪽)는 피폭량 정보에 대해 회사 쪽 주장을 베꼈다. 실태조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한겨레21> 보도 뒤 아시아나항공은 승무원들에게 피폭량을 확인하라는 갑작스러운 공지(오른쪽)를 보냈다.

공지를 본 승무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15년 가까운 경력의 승무원 A씨는 “피폭량을 확인하라는 공지는 처음이라 갑작스러웠다”며 “그럼에도 일하는 처지에선 무심코 지나쳤다. 회사에서 취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방사선 피폭이) 근골격계 질환처럼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여 년 경력의 승무원 B씨는 “회사는 공지를 했으니 각자 알아서 확인하면 된다는 식”이라며 “공지를 보고 피폭량을 확인해봤더니 원자력안전위원회 (피폭) 권고치보다 아래인 것은 맞다. 그런데 회사가 준 정보만으로 내가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아시아나 승무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2017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사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검토했다.

우선 아시아나항공이 원안위에 2017년 실태조사 당시 내놓은 “승무원에게 월간으로 정기 제공하고 있다”는 보고는 사실과 달랐다.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아시아나항공이 승무원에게 월 단위로 피폭량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실태조사 보고서의 별첨 자료(서면조사표)에는 ‘제공 방법’과 관련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내 전자게시판인 ‘크루월드’ 내에 개인별 수치와 기록을 게시하며 개별 승무원이 필요시 자유롭게 조회 가능하도록 했다”는 설명이 달렸다. 말하자면 회사는 승무원에게 매달 피폭량 정보를 건네는 대신 1년을 기준으로 월별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생방법) 제18조에서 “승무원의 건강 보호 및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시행령(승무원에 대한 우주방사선에 따른 피폭방사선에 관한 정보 제공)에 둔 취지에 맞지 않다. 승무원들의 자율적인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항공사가 피폭량 정보를 단순히 게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승무원에게 정확히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다수의 승무원들은 피폭량 정보 업데이트 자체를 몰랐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기준으로 삼으려야 삼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승무원 A씨를 통해 사내 게시판을 들여다보니, A씨는 2017~2018년 2년치 연 단위 정보를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는 “이를 두고 월별로 정보를 제공해왔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연도별 수치가 기록된 것 말고 해당 자료가 월별로 업데이트되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6월22일 공지에도 “연간 피폭방사선량 상시 확인 가능”이라는 간단한 언급 외에 해당 자료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은 없었다.

제공된 정보 자체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승무원 B씨는 “나에게 제공된 수치가 안전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며 “과거 자료를 일일이 기록해놓지 않으면 피폭이 과거에 어땠는지 알기 어렵다. 같은 북극항로라도 어떤 날은 고도를 달리하거나 아예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 위험성을 가늠하려면 최소한 내가 다닌 항로와 거기에서 받은 피폭량 정도는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서는 늘 안전하다고 한다. 진짜 문제될 것 없다면 전부 공개하면 될 일이다. 왜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대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회사 제공 피폭량 못 믿는 승무원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 홍보실 관계자는 “피폭선량의 사내 게시판 게시가 연간 누적량이라 제공 방식이 잘못됐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승무원 편의를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게시판을 이용하면 승무원이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비행 이력과 별도로 방사선 누적량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며 “1년치를 한번에 합산해 게시하는 게 아니라 매달 누적량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승무원들이 매달 확인하면 위험 수준에 이르기 전 대처하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승무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방사선량 정보를 아예 불신했다. 부실한 안전교육을 포함해 지금껏 보여온 회사의 태도가 문제였다. 노동조합 경력이 있는 승무원 C씨는 “(안전교육에서) ‘(북극항로를) 여러 번 갔다고 해서 바로 위험한 수치인 것은 아니다’ ‘회사가 관리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것을 다 믿는 승무원은 많지 않다”며 “교육 내용도 항로의 위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안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거나 그 이상의 자료를 요청할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승무원 B씨는 “회사가 (승무원) 안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용 절감이나 회사 이미지라고 다들 느껴왔을 것”이라며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항공편에 실리는 현지 음식을 포함해 (방사능 오염 등)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아 후쿠시마와 센다이 노선을 폐쇄해달라는 승무원들의 요구가 있었다. 안전성이 확보되면 다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한 임원급 관리자가 어느 날 딱 하루 그곳을 다녀온 다음 ‘아무 일 없어. 너희들 가도 돼’라고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마스크라도 쓰게 해달라는 승무원들의 요구도 무시했다. 그런 회사가 북극항로라고 승무원의 건강을 특별히 더 챙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무원들이 기댈 곳은 어딜까. 노조도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문제가 된 10여 년 전쯤부터 줄기차게 피폭 정보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공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정의당)이 된 권수정씨는 아시아나항공 노조 지부장 출신이다. 그는 이른바 ‘바지 투쟁’을 이끌며 승무원들이 바지 유니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만큼 현장의 목소리에 밝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방사선 피폭 문제만큼은 쉽지 않았다. 권 의원은 “(지부장으로 일할 때) 우주방사선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알았으면 의견도 모으고 회사에 요구도 했을 텐데 그것을 인식할 만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 이제는 회사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더 늦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우주방사선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 알고도 조처 안 한 원안위

그렇다고 정작 안전을 책임질 정부 당국인 원안위를 신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17년 8월 실태조사 단계에서 이미 월별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음이 드러났음에도 결과적으로 이를 반영하지 않았고, 사후 조처도 없었다. 오히려 아시아나항공이 먼저 나서서 “원안위는 연 1회 회사를 방문해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2017년) 조사 당시 우리 쪽의 공지 방법을 설명했으며, 이에 대한 지적 사항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쪽 말대로라면, 원안위는 제출된 자료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의) 구두 보고에서도 정보 제공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원안위 쪽은 “정보 제공 방식과 관련한 개선 사항에 대해 실제 관리·감독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협의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부실투성이 피폭량 실태조사


저가항공사도 피폭량 제대로 안 알렸다


승무원에게 피폭량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고 했던 항공사 세 곳(에어부산·에어인천·티웨이항공)이 정부의 실태조사 보고서 내용과 달리 △게시판 공지 △상급자 통보 △요청시 제공 등 편법을 썼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사례와 함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2017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사업 실태조사보고서’의 전반적인 부실을 드러내기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와 원안위가 공개한 2017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제노선 운영 항공사별 피폭방사선량 정보제공 현황’(2017년 5월31일 기준)에는 ‘승무원 정기 제공’ 여부에 대해 에어부산·에어인천·티웨이항공·제주항공 등이 ‘년’(연) 단위로 제공한다고 표기돼 있다. 이는 실태조사 전 각 항공사가 직접 작성해 제출한 별첨 자료인 ‘사전조사표’만 봐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전조사표에서 에어부산은 사내 게시판에 공지하는 방식으로 승무원 개별 통보를 대신한다고 기술했다. 에어인천은 1년에 한 번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보고할 때 승무원이 아닌 운항본부장과 관련 부서에 알리는 데 그쳤다. 티웨이항공도 승무원이 요청할 때 피폭량 정보를 제공했다. 다만 피폭방사선량의 종합적인 내용(연간·월간 평균, 최고 피폭량 등)은 사내망(인트라넷) 등에 공지하고 있었다. 티웨이항공은 사전조사표에 직접 “여성승무원(임신)의 경우와 같이 제한치가 낮은 사항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여 주의 필요시 해당 개인에게 제공한다”고 설명을 더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은 아예 제공 주기와 방법의 기록을 제출하지 않아 정보 제공 여부 자체를 알기 어려웠다.
일부 항공운송업자는 피폭량 정보를 승무원에게 직접 정기적으로 알리지 않는 이유로, 우주방사선 피폭 위험이 높은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거나 운항 횟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승무원의 건강 보호와 안전을 위해 정보 제공 의무를 규정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의 취지를 고려하고, 중소 규모 항공사들도 최근 항로를 늘려 국제선을 운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승무원에게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를 규제하고 감독하는 토대인 원안위의 실태조사가 부실로 드러난 만큼 이에 따른 책임을 묻고 항공운송업계 안전관리 대책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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