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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은 어디 있는가

1980년대 베트남 ‘보트 피플’ 등 난민 지원한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이승열 사무총장 “어려움 처한 약자 구별 말고 선한 이웃 되어줘야”
등록 2018-07-03 16:37 수정 2020-05-03 04:28
이승열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이 6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승열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이 6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예수도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난민이었습니다. 헤롯왕 때 박해를 피해 도피하는 과정에서 마굿간에서 태어날 정도로 비참한 난민의 모습이었지요.”

은 최근 일부 보수 기독교도와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제주도 예멘 난민 혐오 주장들을 철저히 ‘기독교적 시각’에서 살펴보기 위해 지난 6월26일 이승열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이하 이 목사)과 서울 대학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만났다.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한 이 목사는 “예수도 난민”이라는 얘기부터 꺼냈다. “구약시대 아브라함도 나그네였고 그 후손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 이후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나그네들이 참여했지요. 구약성경에도 나그네 되었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돼 있어요.(신명기 26장 11절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제주도 예멘 난민 보호에 반대하지만, 오히려 기독교가 앞장서 난민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간결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보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예수도 난민이었다</font></font>
할랄식품 반대 시위. 연합뉴스

할랄식품 반대 시위. 연합뉴스

기독교에서 ‘복음의 진수’로 일컫는 로마서를 펼쳐봐도 교회가 난민을 외면하는 건 반성경적으로 보인다. 이 목사는 “로마서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돼 있어요.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에만 초점을 두지만, 로마서 12장에 보면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돼 있어요. 기독교 교리로 보면, 값없이 은혜(믿음으로 의롭다 함)를 받은 우리가 난민과 함께 우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교회의 ‘이웃사랑 실천 가이드라인’으로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착한 사마리아인’(누가복음 10장) 사례 역시 난민 보호를 거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과는 다른 길로 보인다. 이 목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의미가 좀더 분명히 드러난다. “성경에서는 불우이웃이 누구인지(난민인지 과부인지 고아인지)가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그 주체성을 중시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이웃이 필요합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에게도 선한 이웃이 되어줘야 한다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

이 목사는 한국의 보수 교회가 예멘 난민 등 무슬림에 배타적 태도를 가지게 된 데 미국 교회의 근본주의적 신앙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공화당 계열 대통령들은 미국이라는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문제를 중시하고, 이 미션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적을 이슬람으로 간주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국 근본주의에 경도된 한국 교회</font></font>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 교회는 미국으로 경도돼 있다. 한국 교회가 미국의 잘못된 국익 이기주의를 쉽게 관용하고 미국 교회에 쉽게 동화되면서, 무슬림에 배타적인 입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지적이다. 이 목사는 “누구든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음식을 먹고 자기 옷을 입고 익숙한 고향 땅에서 사는 게 행복합니다. 난민은 살기 위해 떠난 사람들이고, 소나기를 피하려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 심사 기준을 완화해주고, 우선 안전하게 하루 세끼 밥 먹고 잠자며 ‘좋은 때’(예멘의 평화)를 기다리게 해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보수 기독교도와 단체의 반무슬림·반난민 혐오 표현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지만, 이 목사는 기독교 내에서 예멘 난민을 돕는 조용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주민소위원회는 6월26일 ‘4대 종단 이주·인권협의회 호소문’을 발표했다. 천주교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전국협의회·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원불교 인권위원회와 함께 “상처 입은 나그네를 따뜻하게 환대해달라”며 “근거 없는 루머를 바탕으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일각의 움직임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이 호소문에는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마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지 않았느냐?”는 구약성경 출애굽기 22장 21절이 인용돼 있다. 이 밖에 중동전문위원을 맡기도 했던 김동문 목사가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초반부터 난민들을 도왔다. 하현용 목사는 자녀 5명을 둔 예멘인 가정을 자신의 제주도 집에 초청해 살고 있다. 한국디아코니아 대표인 홍주민 목사는 예멘 난민을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이 목사 역시 개인사로나 학문적 배경으로나 현재 담당하는 사역으로 보나 한국 개신교 안에서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우선 이 목사 스스로 난민 정체성을 갖고 있다. 부모님과 두 형 모두 이북에서 태어났고 선친이 중국 만주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48년 선양(심양)에서 마오쩌둥 군이 “목사들부터 잡아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부모님은 미국의 베이징 선교부가 비행기를 세 차례 띄워 베이징으로 “목사 가족들을 실어나를 때” 급히 한국으로 도피했다. 이 목사의 가족은 그렇게 남쪽 땅을 밟았다. 이 목사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한 뒤 “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목사는 독일에서 10년간 ‘디아코니아’를 공부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디아코니아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때 독일 교회의 역사를 연구한 터라, 디아코니아에 대한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전거들을 꿰뚫고 있기도 하다. 디아코니아는 “다양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자립적으로 자기 삶을 이뤄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조건과 차별 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 교회, 디아코니아가 있는가</font></font>

독일 교회는 1848년 이후 디아코니아와 사회선교 차원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해왔고, 복음을 전파하는 전통적 선교관과 달리 사회선교 중 디아코니아를 가장 중시해왔다. 인본주의 바탕 위에 기독교적인 계율과 명령이 더해졌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나고, 이웃을 돕는 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바람직한 자세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체성”이라는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와 번영신앙의 영향으로 사회봉사의 책임, 사회참여적 신앙, 디아코니아를 건강하게 이루지 못했다는 게 이 목사의 진단이다. “한국 교회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보수적이라는 것은 근본주의 신학적 바탕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주의 신학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근거로, 이 세상이 망하고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때가 오는데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해서 천국에 들여보내는 것 외에는 중요한 게 없습니다. 사회 불의나 구조 개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전도와 선교입니다”라고 이 목사는 근본주의를 설명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 선교사들이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 정책을 세운 것 역시 한국 교회가 오직 선교에만 힘쓰게 하는 배경이 됐다. 정치적 중립이란 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인데, 한국 교회는 아예 ‘탈정치화’가 됐다. 아직도 보수적인 교단은 목사가 설교 때 사회문제나 시국문제를 언급하면 장로들이 “말씀만 전해주세요”라며 ‘클레임’을 거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목사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는 미국교회협의회 산하 기독교세계봉사회(CWS) 한국 지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 지부는 설립 이듬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쟁 피란민과 과부와 고아 구호 사업에 가장 앞장섰다. 미국 등 북아메리카는 물론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구호물자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창구였다. 1963년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5개 교단이 “도움을 받아오던 위치에서 완전히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 형제를 도와주는 교회로서 새로운 위치에 서야”겠다는 책임감으로 한국기독교봉사회(KCS)를 만들었다. 한동안 두 봉사회가 공존하다가 1971년 기독교세계봉사회가 직원과 재산을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철수했다. 이것이 현재 9개 교단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로 이어졌다.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는 1991년 한국이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기 전부터 난민을 도와왔다. 베트남전이 끝날 무렵 베트남의 ‘보트피플’이라는 난민 수백 명이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베트남 난민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다행히 이들을 먼저 보살피고 있던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의 도움으로 난민 일부가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고, 그 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기독교봉사회는 지금도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을 돕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부가 확고하면, 나머지는 정리된다”</font></font>

한국 교회가 사회문제나 나라 밖 문제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오랜 세월 기독교 내 사회봉사를 담당해왔던 이 목사의 경험에 비춰보면 “한번 ‘불길’이 일면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티 지진 당시, 이 목사는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36억원을 모금했는데 당시 교단의 1년 총회 사업비가 14억~15억원에 불과했다. 한국 교회는 북한 동포 돕기에도 보수적 입장이었으나, 막상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정부 차원에서 햇볕정책으로 방향을 잡자 교계 분위기가 확 바뀐 적도 있다. 이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도 10년간 8번이나 북한 동포 돕기 모금을 했다.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 역시 정부가 난민 보호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면, 나머지 크고 작은 잡음들은 정리될 거라는 지적이다.

이 목사는 “한국 교회는 너무 감성적인 사랑만 이야기하지 행동하는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독일의 19세기 디아코니아 신학자 요한 힌리히 비헤른의 ‘네 가지 찾는 사랑’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했다. 뷔헤른은 “첫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 사랑, 둘째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사랑, 셋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 넷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구원하는 사랑”을 강조하며 구원을 가져오는 힘은 ‘사랑’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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