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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사드 밀어낼까

남·북·미 회담 뒤 바뀐 ‘정세’에 사드 철회 시사한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 ‘적절한 처리’ 해야 할 시기
등록 2018-06-26 16:36 수정 2020-05-03 04:28
“사드는 북한 탄도미사일 대비용이다.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한국에 배치할 필요가 없어진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지난 6월14일 미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해리스 지명자가 태평양사령관 시절이던 2017년 4월25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드는 북한 탄도미사일 대비용이다.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한국에 배치할 필요가 없어진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지난 6월14일 미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해리스 지명자가 태평양사령관 시절이던 2017년 4월25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기대한다.”

지난 3월5일 평양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평창겨울올림픽 때문에 4월로 연기한 한-미 연합 독수리 훈련을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정세’가 바뀌면 훈련을 중단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게다. 실제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잠시 삐걱댄 것도 한-미 공군 연합 ‘맥스선더’ 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 때문이었다. ‘정세’가 바뀌었음에도 훈련에 대한 ‘적절한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북쪽의 항의였던 셈이다.

‘적절한 처리’ 바라는 중국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기대한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면서 중국 쪽이 내놓은 말이다. 전임 정권이 전격 결정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알박기’까지 해놓았다. 그러니 중국 쪽 반응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쪽의 반응과 맥을 같이한다. 현실은 이해하지만 ‘정세’가 바뀌면 사드 체제를 철수시켜달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는 뜻이다.

‘정세’는 바뀌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에 발맞춰 한미 군 당국은 6월19일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연습”이라며 “도발적”이라고 표현했다. 또 대화가 진쟁되는 동안에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적절한 처리’였다. 사드는 어떤가?

“(북-미 협상 과정에서) 가장 큰 위험은 중국과 북한이 한미 사이를 갈라놓으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경우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약화할 수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공화당·플로리다주)은 지난 6월14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에 대한 인준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루비오 의원은 이어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을 비판하며 이렇게 질의했다.

“한국에 배치된 사드를 보자. 사드를 철수하면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도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는 반한다. 단계적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은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비핵화 협상이 정점에 이르기 전임에도 협상을 가로막는 나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동의하나?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밝혀달라.”

해리스와 루비오 의원의 설전

해리스 지명자는 미 해군 제독(4성장군) 출신으로, 제24대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을 3년여 한 뒤 지난 5월 말 전역했다. 그의 답변은 명료했다. 첫째, 동맹국인 한국과 의견을 일치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주한미군 병력 규모나 사드 배치 등은 동맹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루비오 의원의 질의가 이어졌다.

“지명자의 과거 경험도 있고, 한국에 이미 미사일방어 체계가 배치돼 있기도 하니 묻겠다. 북한이 더는 장거리미사일이나 핵능력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북한의 위협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을 놓고 볼 때 한국에 미사일방어 체제를 계속 배치하는 게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지 않나?”

해리스 지명자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드 체계를 한국에 배치한 것은 동맹의 결정이었으며, 배치 이유는 북한의 위협 때문”이라는 게다. 그는 “(사드는) 중국이나 러시아, 그 밖의 다른 대상을 겨냥한 게 아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처가 유일한 배치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루비오 의원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질의와 응답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그럼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사드를 계속 배치할 정당성이 없다는 얘기인가?”(루비오 의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정당성 문제가 아니다. 사드 체계를 (한국에) 배치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드는 매우 전술적인 무기 체계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 때문에 배치된 것이다.”(해리스 지명자)

“미국 본토를 겨냥한 위협 말인가?”(루비오 의원)

“아니, 아니다. 사드는 한국으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에 대비해 배치된 것이다. 한국에 있는 미국인과 동맹인 한국, 그리고 한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해리스 지명자)

경북 성주의 골프장에 한밤중 기습 작전이라도 하듯 사드 체계가 배치된 것은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4월26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국회 의결 직후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두 차례 미국을 다녀온 뒤 ‘조기 배치’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대통령 없는 청와대에서 김 전 실장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사드를 향한 중국의 고집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논란으로 정부가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사드 배치 철회’ 결정은 내려지지 못했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시험과 북·미 간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말의 전쟁’이 불을 뿜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한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에서 ‘조속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며 사드 문제를 ‘봉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중국은 ‘사드 배치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반한다’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선 바 없다. 해리스 지명자가 밝힌 것처럼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정세’가 바뀌었다. ‘적절한 처리’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는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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