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개인별 자율적인 안전관리가 되기 위해 우주방사선에 대한 개인별 피폭방사선량은 기본적인 정보가 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017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2018년 2월 내놓은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 사업 실태조사 보고서’(실태조사 보고서)에 언급한 내용이다. 이는 승무원 개인이 자신의 ‘안전’을 관리하려면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하고 그 핵심이 개인별 피폭방사선량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원안위가 밝힌 ‘정보 제공’ 원칙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수일까, 꼼수일까문제는 실태조사의 부실을 감추기 위한 꼼수에서 출발한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원안위는 국회에 2017년 항공사별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 현황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정보 제공 여부에 실태조사 보고서를 인용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춘 뒤 ‘×’로 기재했다. 승무원에게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만으로는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재 내용이 실태조사 보고서(월간 정보 제공으로 표시됨)와 다르다는 게 뒤늦게 확인되면서 진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고서와 국회 제출 자료가 다르다는 의원실의 문제제기에 원안위는 곧바로 해명했다. “최근 대한항공 승무원 백혈병 관련 언론() 보도 등 관련하여 검토시 오기를 확인했다”는 설명과 함께 “보고서상의 결론은 ‘대한항공은 승무원에게 정기적 정보 제공은 없다’지만 보고서상의 표 한 곳에서 항공사별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의 현황을 작성할 때 오기를 했고 이로 인해 정확한 정보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출 전 (의원실에)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원안위는 보고서를 임의 변경한 것에 국회에 사과도 하고 정정해 제공했으면서도 국민 누구나 접근해서 열람할 수 있는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여전히 승무원에게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원안위가 “작성 당시 오기”라고 한 해명 또한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원안위가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할 때 잘못 기재했다고 해명한 114쪽의 표가 아닌 다른 부분(122쪽)에도 ‘월간 정보 제공’으로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와 ’○’의 혼란으로 인한 오기라고 믿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보고서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6개 항공사는 정기적으로 피폭방사선량을 승무원에게 제공하고 있었다”고 기술된 대목도 나온다. 단순 오기로 보기 힘든 여러 정황들이다.
원안위가 “대한항공은 월 단위로 피폭량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는데도 대한항공은 여전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은 월 단위 정보 제공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에 “오해가 있다. 원자력안전재단에 이미 설명했다”고 해명한다(실태조사는 원안위 책임 아래 원자력안전재단에서 시행). ‘오해’와 관련해 대한항공은 “승무원 본인이 기록을 요청하면 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원자력안전재단에) 추가 설명을 기재하기도 했다”고 했다. 대한항공이 에 공개한 내용에는 “매월 말 지난달 국제선 운항편에 대한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계산한다. 그 뒤 승무원 개인별 12개월 누적 피폭량을 계산한 값을 운항기획부와 객실승무기획부, 스케줄운영부와 항공의료센터에 통보하고, 승무원은 본인의 피폭방사선량 자료를 운항기획부와 객실승무기획부에 요청하여 제공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요청하면 피폭량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원안위는 이런 대한항공의 설명을 듣고서도 정작 보고서 곳곳에 대한항공이 승무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기록한 셈이다.
대한항공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더라도, 이는 12개월 누적 피폭량 계산값을 관련 부서에 통보하는 것 외의 설명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요청시 제공’을 전제로 한 월별 누적 계산값의 부서 통보와 월 단위 승무원 (피폭량) 통보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설명 그대로 믿은 원안위대한항공이 밝힌 대로라면, 원안위가 2017년 실태조사 때 대한항공의 제출 자료를 보고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원안위는 실태조사 현장점검이 있었던 2017년 8월에도 대한항공에 정보 제공 사안에 양호 판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은 에 “원안위로부터 승무원 개인별 피폭량 정보 관리와 통보 실태 등 전반적으로 양호 판정을 받았다”며 “다만 회사가 적극적으로 승무원 개인별 피폭량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보완 권고를 받기는 했다”고 밝혔다. 이는 원안위가 실태조사 당시부터 대한항공의 정기적 정보 제공을 인정했다는 것으로, “보고서의 결론은 ‘정기적 정보 제공은 없다’지만 정보 제공 현황 작성시 오기로 정확한 정보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국회에 해명한 원안위의 최근 입장과 배치되는 모양새다.
원안위의 직접 정보 제공 권고의 경우 대한항공은 현재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요청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는 제공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대한항공의 일관된 주장이다.
문제는 원안위다. 원안위는 대한항공의 ‘요청시 제공도, 제공과 다름없다’는 주장에 “관련 규정에는 정보 제공을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어떻게 한다고는 규정하지 않아 규정 위반이라고 법 적용을 하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있었다”고 여전히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안위의 태도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의 유권해석으로도 부적절하다 지적한다. “항공운송사업자는 우주방사선에 의한 피폭방사선량을 승무원에게 공지하여야 한다”는 시행령상의 규정에 따르면, 법령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돼 있는데, 정작 관리감독기관인 원안위가 ‘어떻게’가 규정돼 있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말장난 같은 논란이 계속되는 중에 피해는 고스란히 승무원들에게 돌아갔다.
불신과 불안은 계속된다사실 피폭량 정보 제공을 둘러싼 논란은 복잡하지 않다. 미비점이 있었다면 책임을 인정하고, 항공사가 승무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원안위가 그렇게 하게 하면 된다(예산이 더 드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원안위, 대한항공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논의해온 생명과 안전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한항공 승무원 9천여 명의 불신과 불안은 계속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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