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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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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세계 정상급 조씨 일가가 최대 위험”

1999년 조종사노조 설립 뒤 해고된 하효열씨…

조현민 ‘물벼락 갑질’ 이후 다시 복직을 꿈꾼다
등록 2018-05-08 15:45 수정 2020-05-03 04:28
18년 전인 2000년 10월20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서소문의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과도한 운항 시간 축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18년 전인 2000년 10월20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서소문의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과도한 운항 시간 축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10년 동안 지워졌던, 그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한 달쯤 된 것 같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사건이 터진 뒤부터다. “2001년 해직된 뒤 밤마다 같은 꿈을 자주 꿨어요. 복직돼 조종사로 돌아가는 꿈이에요. 조종사 옷을 입고 비행계획서를 받아 내 비행기를 찾아가는데, 비행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동승할 기장이 누군지 몰라 당황하는, 그런 똑같은 내용이죠. 한 10년 전부턴가 그 꿈이 사라졌는데, 최근 조씨 일가 갑질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해고노동자 하효열(56), 전직 대한항공 조종사다. 2001년 쫓겨났으니 해고 기간만 17년에 이른다. 1999년 8월30일 당시 불법이던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설립을 강행해 부위원장을 맡았다. 세 차례 파업을 주도하다 2001년 6월 구속됐고, 한 달 뒤 옥중에서 해고를 통보받았다. 같이 해고됐던 8명 중 5명은 복직했지만, 하씨와 다른 2명은 지금까지 해고자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하씨와 4월25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사무실에서, 5월2일 서울 성수동 ‘사단법인 공감인’ 사무실에서 두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복직 꿈을 꾸나.
무슨 소리냐, 복직해야지. 내 비행기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복직하고 싶다. 한 동기는 대통령 전용기를 몬다. 내가 몰던 A330 비행기도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닌다. 김 기자도 내 비행기 타보고 싶지 않나?

<font size="4"><font color="#008ABD">“조씨 일가 때문에 회사가 저절로 망한다”</font></font>

당시 부위원장을 맡았던 하효열씨는 이듬해 7월 해고됐다. 오른쪽은 ‘물벼락 갑질’ 물의를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지난 5월1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두한 모습. 류우종 기자

당시 부위원장을 맡았던 하효열씨는 이듬해 7월 해고됐다. 오른쪽은 ‘물벼락 갑질’ 물의를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지난 5월1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두한 모습. 류우종 기자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사실 오랫동안 복직을 잊고 지냈다. 그전에 복직하는 꿈을 꿀 때도, “대한항공 안 바뀔 건데” 그렇게 꿈속에서 중얼거렸다. 내가 복직되지 않을 거라고, 나 스스로 꿈속에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초 복직을 앞둔 철도노조 해고노동자들에게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도 복직할 수 있을까’ ‘복직하면 마음이 어떨까’라고 구체적인 상상을 하게 되더라. 묘하게도 그 무렵 조현민 ‘물벼락 갑질’ 사건이 터졌다.

왜 ‘강성’으로 콕 찍혔나.
우리가 파업할 때, 다른 회사의 노조 간부가 “그러다 대한항공이 망하면 어쩔 거냐”고 묻더라. 그때 “이대로 가면 조씨 일가 때문에라도 저절로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사노조조차 조양호 회장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어려워하던 시절이었다. 조 회장을 대놓고 비판하는 나에게 동료들이 “밥 먹여주시는 회장님한테 함부로 그러지 말라”는 식이었다. 조씨 왕국에서 아닌 걸 아니라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보고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미움을 샀던 모양이다.

‘땅콩 회항’ 사건의 박창진 전 사무장을 생각하면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겠다.

우리 같은 조종사는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라서 회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노조의 보호도 받고 있다. 감정노동을 하는 박 사무장은 자괴감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박 사무장은 혼자 싸워야 했다. 정말 외롭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조종사노조는 해고노동자인 하씨의 급여성 생활비를 지금까지 꼬박꼬박 지원하고 있다. 구속됐을 때는 ‘감옥수당’을 얹어 지급했다. 하씨는 해마다 조종사노조의 신입 조합원에게 노조 역사 등을 교육한다. 5월4일 저녁, 하씨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한항공의 후배 동료들이 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봐 모두 똑같은 (저항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 가면을 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복직 금지는 조중훈 선대 회장의 유훈 </font></font>

감회가 새롭겠다.
정말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 후배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재벌 총수 물러나라고 직원들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용감하게 외치는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른 재벌기업 직원들은 어땠나. 총수가 구속되면 그 앞에 도열해서 “회장님 힘내세요!” 외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예전과 어떻게 다른가.
나는 586세대다. 우리는 결심한 사람들끼리 모여 노조를 끌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못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주도했다. 소수의 과잉 지배가 일상적이었다. 그러니 큰 단결을 이루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조씨 일가의 갑질도 막아내지 못했다. 제보방(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의견을 모으는 후배들을 보면, 참 다르고 멋지다. 열려 있다.

직장의 직접민주주의가 표출된다는 느낌인가.
누구나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조직 운영에 반영하는 방법을 이젠 찾아낸 것 같다. 2천 명이 모인 ‘조씨 일가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이 엄청난 변화를 촉발했다.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훗날 직원을 존중하는 직장의 민주화를 이뤄낸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직접민주주의를 직장에서 구현하는 실험장이다.

해고노동자로 지내는 동안 하씨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마음을 살피는 심리상담사로 변신했다. 노동자·사회활동가 대상 심리치유 조직들의 네트워크인 ‘통통톡’(通統talk)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시민이 시민을 보살피는 치유 릴레이 단체인 ‘사단법인 공감인’도 이끌고 있다.

마음 치유 전문가로 팔자가 바뀌었다. 예전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가.
조중훈 선대 회장이 2002년 돌아가실 때, “하효열이는 절대로 복직시키지 말라”고 유언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그렇게 강성인 사람은 아닌데…, 어떻게 보면 좀 단순하고 순진했던 것 같다. 조합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게 사실은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인데…. 그래도 선대 회장은 직원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2세, 3세로 가면서 나빠졌다.

감옥생활도 했다. 구속 사유가 뭐였나.
업무방해라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하는데, 동시에 파업권을 행사하면 회사의 업무방해로 구속되는 이상한 법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노사가 대등하게 만날 수 없는 모순된 법구조가 재벌들의 갑질을 양산하는 뿌리다. 2001년 6월 파업 뒤 구속됐는데, 한 달 뒤 구치소로 해고 통보가 날아왔다. 어떤 사규를 위반했다는데, 정확한 사유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속되는 순간 ‘아, 해고되겠구나’ 각오했다. 100일 살다가 추석 전전날 보석으로 나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큰집 머슴이 낫다 했다</font></font>

하효열씨가 5월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갑질 스톱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정용일 기자

하효열씨가 5월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갑질 스톱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정용일 기자

1999년 노조 설립 목표가 직원을 머슴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나.
조씨 왕국이 문제라고 느꼈지만, 그때만 해도 조씨 왕국을 부순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우리 조종사들도 “(아시아나항공과 비교하며) 그래도 큰집 머슴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다. 머슴이 어찌 주인 말하는 데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런 분위기가 만연했다. 노조를 만들 때 대한항공은 ‘사고 왕국’이었다. 괌에서, 영국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포항에서 비행기 넉 대가 부서졌다. 말할 사람이 필요했고, 행동할 사람이 필요했다. 노조가 합법화한 뒤로는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없었다. 말은 안 했지만 일반 직원들도 진심으로 우리 노조가 하는 것을 반겼다. 지금은 그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조에서 구체적으로 뭘 이뤄냈나.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를 조사했다. 우리 조종사들은 외국 항공사들과 똑같은 비행기로 똑같은 노선을 운항한다. 승객이 내는 항공요금도 비슷하다. 그런데 30% 이상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절반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저임금으로 회사 수익을 내는 후진적 경영구조였다. 이것을 바로잡았다. 대한항공의 조종시간은 월 12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줄었다. 급여도 국제 수준으로 현실화했다.

조종사노조의 ‘투쟁’은 몇 년 동안 대한항공의 전반적인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는 반짝 효과로 이어졌다. 실제 조종사노조 설립 이듬해인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일반직도 연평균 10% 전후의 폭발적인 급여 인상 혜택을 누렸다. 2005년 이후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서, 대한항공의 임금 인상률은 다시 물가상승률 아래로 떨어졌다.

왜 굳이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강행하는 가시밭길을 걸었나. 노조 없이도 억대 연봉의 풍요로운 삶을 누렸을 텐데.
오랫동안 “국민을 볼모로 불법 정치 파업을 벌인 귀족노조 주동자”란 딱지가 나한테 붙어다녔다. (웃음) 1992년 제주비행훈련원을 졸업하고 대한항공에서 첫 비행을 시작했는데, 분위기가 참 이상하더라. 기장과 부기장은 주종관계이고,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 공항 근무 직원들끼리 서로 불친절했다. 잘 살펴보니 나도 그 사람도 윗사람한테 머슴처럼 쪼이고 있더라. 동료를 친절하게 대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정점에 조씨 왕국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다. 조씨 왕국에 공동 대응하자고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font></font>

대한항공 조씨 일가 퇴진 이후를 생각해본 적 있나.
대한항공이 재벌 세습 체제를 해체하고 전문경영인 회사로 가는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 대한항공의 최대 위험 요인이 직원이 아니라 조씨 일가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한항공의 노선과 영업력, 직원 같은 인프라는 세계 정상급이다. 조씨 일가의 재산 축적 ‘빨대’인 관계사와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기업)만 잘 정리해도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아닌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나아가보자고 말하고 싶다.

하씨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굴뚝에서 장기 농성 중인 노동자의 상태가 염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굴뚝으로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서던 심리상담사 하씨가 갑자기 외쳤다. “복직시켜주세요!”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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