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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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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록엔 있고 수사결과엔 없는 방용훈

수사 당국, 조선일보 사주인 방씨 일가 보호 위해

스포츠조선 전 사장 희생양 내세운 모양새
등록 2018-04-03 14:43 수정 2020-05-03 04:28
조선일보 사옥(왼쪽 사진),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류우종 기자/ 연합뉴스

조선일보 사옥(왼쪽 사진),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류우종 기자/ 연합뉴스

“피의자 방상훈(조선일보 대표)은 고 장자연이 작성한 문서에 ‘조선일보 사장’이라는 기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피의자가 장자연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았다거나 성매매를 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

‘장자연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2009년 8월에 내린 결론이다. 맞다.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사장은 검찰 수사 발표대로 분명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아니다. 당시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보면, 고 장자연씨의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씨가 2008년 7월17일 스케줄표에 “‘조선일보 사장 오찬’이라고 기재한 것은 스포츠조선 사장 ○○을 지칭하는데, 비서가 잘못 기재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고 장자연씨와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인물은 스포츠조선 사장 ㅎ씨임이 분명해 보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수사 

그러나 그날 김 대표를 만났던 이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도 스포츠조선 사장 ㅎ씨도 아닌 조아무개 기자였다. 김 대표의 비서가 메모를 잘못한 기록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입수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기록을 놓고 볼 때, 검·경 모두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수사를 한 경찰은 ㅎ 전 사장을 조사하며 “2008년 7월17일 스케줄에 대해 한미리라는 식당에서 홍○○ 회장, 이○○ 칼럼니스트와 같이 3명이서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이 되었는데”라고 말했다. ㅎ 전 사장은 이에 화답하듯 “2008년경 김종승과 식사를 한 사실이 없다”고 재차 답했다.

검·경은 수사 과정에서 ㅎ 전 사장의 7월17일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동석자를 조사했고, 식사대금 지불도 확인했다. 그런데 왜 경찰과 검찰은 7월15일 ㅎ 전 사장이 김 대표와 통화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둘이 함께 식사한 것으로 결론 냈을까. ㅎ 전 사장은 “‘조선일보 사장’이란 메모가 등장한 이후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조선일보 사장’을 ‘스포츠조선 사장’이라고 만들어 발표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후 혐의가 없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예정대로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9년째 의혹이 풀리지 않은 ‘고 장자연 리스트’를 둘러싼 의혹은 이처럼 첫 단추를 일부러 잘못 끼운 수사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장자연 리스트가 언급될 때마다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는 뭘까. 2008년 7월 모임이 아닌 그로부터 10개월 전인 2007년 10월 모임 때문이다. 고 장자연씨가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와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0월 중순 청담동 ‘이닝’이라는 중식당이었다. 당시 수사를 받았던 한 참고인은 “이날이 장자연의 데뷔 무대였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승 대표는 고 장자연씨를 스포츠조선 전 사장 ㅎ씨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주최한 이는 또 다른 ‘방 사장’이었다. 방상훈 사장의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다. 그가 주도해 만든 이날 이 모임에는 방용훈 사장, ㅎ 전 사장, 윤아무개 주한미대사관 공사, 이아무개 <cnn> 한국 지사장 등이 참석했다. 당시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이 모임엔 총 9명의 인사가 참석한 것으로 확인된다. 방용훈 사장이 자리를 만든 만큼 밥값 계산을 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이들을 모두 지우고 ‘스포츠조선 전 사장-김종승-장자연’ 3인으로 참석자를 단순화해 발표했다. 조선일보 사주인 방씨 일가 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같은 조선일보 고위 관계자인 스포츠조선 ㅎ 전 사장을 희생양으로 내세운 것 같은 모양새다.
 
사주 일가 추문 막기 위한 ‘희생양’ 
당시 수사당국은 왜 방용훈 사장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은 지우고, ㅎ 사장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수사를 지휘했던 한 검사는 최근 과 한 통화에서 ‘경찰이 방용훈 사장과 스포츠조선 전 사장 ㅎ씨를 혼동한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이 경찰에 “방용훈 사장을 수사하라”고 수사 지휘를 했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할, 범죄를 구성할 근거가 안 나와서 못했다”고 해명했다.
물론, 이 증언이 사실일 순 있다. 그러나 검·경은 방용훈 사장을 ‘참고인 조사’도 하지 않고, 장자연씨가 등장한 모임을 주최한 그의 존재 자체를 일부러 지웠다. 그리고 김종승 대표의 비서가 조아무개 기자를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잘못 기술한 메모 등을 끌어와 이 모임에 참석한 이가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이 아닌 ‘스포츠 조선 사장’ ㅎ씨라고 결론 냈다. 이에 대해 ㅎ 전 사장은 인터뷰에서 “방상훈 사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사주 일가인 방용훈 사장의 이름을 등장시키지 않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사주 일가의 추문을 막기 위한 ‘희생양’이 됐다는 ㅎ 전 사장의 증언은 2011년 3월9일치 기사에서 일부 확인된다. 이날 는 ‘장자연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 게 오해 불러’란 긴 제목의 긴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일부 언론 매체가 마치 조선일보 사장이 이 사건과 관련 있는 듯이 보도하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고 장자연씨 문건에 ‘조선일보 사장’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씨가 쓴 ‘조선일보 사장’은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의 전 사장인 것으로 명백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를 두고 사주 일가를 둘러싼 추문을 덮기 위해 신문사 지면을 활용한 게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의 한 기자는 “방상훈 사장이 (장자연 사건과) 관련 없다는 것은 신문사 내부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주(방용훈)가 관련되었고, 이것을 함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ㅎ 전 사장도 “훗날 들어보니 조선일보가 편집인을 중심으로 사회부장, 법조팀장 등이 참가한 대책회의를 열며 방용훈 사장 이름을 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이 그 회의에 왜 들어왔겠나. 언론의 힘을 이용해 수사에 개입하려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불기소 뒤 ‘카더라 뉴스’ 취급 
방상훈 사장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된 뒤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문제의 인물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 ㅎ씨’임을 공표했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사장’이라는 언론 보도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며 총 3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 사장’은 ‘스포츠조선 사장’이 되었고, 조선일보 일가가 고 장자연 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주장은 ‘찌라시’ 수준의 ‘카더라 뉴스’로 취급됐다. 그러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이며, 조선일보의 2대 주주이자 코리아나호텔의 사주인 방용훈 사장은 고 장자연씨와 분명히 만났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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