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삶은 무너졌다. 삼성웰스토리 영업부문 직원 이아무개씨는 2016년 10월28일부터 11월7일까지 회사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회사는 이씨가 회사 경비를 변칙 처리하고 부하 직원 5명을 폭행했다며 감사를 진행했다.
“진술서를 네 번 다시 썼다”감사가 시작된 된 첫 번째 이유인 경비 변칙 처리는 회사에서 영업 목적으로 지급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상품권 2천만원어치를 고객사에 지원했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 고객사의 요청 등으로 163만원어치 식자재를 개인 돈으로 구매해 보내준 뒤 나중에 보전받은 일 등을 추궁받았다. 이씨는 억울했다. 대부분 회사에 보고한 내용이고, 영업부문에선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씨 외에 영업부문에서 감사를 받은 20여 명도 변칙 처리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이씨보다 훨씬 더 큰 액수를 변칙 처리한 직원도 있었지만 징계받은 이는 없다. 당시 감사를 받은 직원 가운데 징계를 받은 것은 이씨 혼자였다.
문제의 핵심은 폭행이었다. 부하 직원을 실제 때렸다면 징계를 받아 마땅하다. 실제, 이씨에게 맞았다는 직원들의 증언이 나왔다. 이씨는 승복할 수 없었다. 2017년 2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씨는 결국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정직 등 구제신청’을 냈다.
이후 새로운 진술이 나왔다. 감사 과정에서 이씨의 폭행을 처음 제보한 직원 ㄱ씨와 최대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된 ㄴ씨가 ‘폭행당한 적이 없다’고 진술을 바꾼 것이다. 이씨에게 맞았다고 증언한 5명 가운데 이 2명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삼성웰스토리를 그만두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지난 1월 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씨의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ㄱ씨는 “내가 영업부문에서는 처음 감사를 받았다. 감사를 받으며 많은 압박을 받았다. 나에 대한 제보를 한 게 이씨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가만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씨가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을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사실 이씨에게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다.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스킨십이었는데 감사 때 과장해서 말했다”고 전했다.
ㄴ씨 역시 “이씨에게 폭행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와 회사에서 가장 친했다. 그래서인지 감사가 나를 불러 계속 이씨의 잘못이 없는지 캐물었다. 폭행과 관련해 감사에게 ‘나도 장난으로 때린 적이 있다. 친해서 그랬던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감사는 계속 ‘너는 맞은 거다’라고 강요하며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좀 약한 표현이 들어가면 ‘이런 단어는 틀렸다’며 새로 쓰라고 했다. 그렇게 진술서를 네 번 다시 썼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감사가 길어지니까 그럴 수 없었다. 그 점이 아직까지 이씨에게 미안하다.”
폭행을 당했다는 이들의 진술 번복이 있었지만, 이씨는 결국 경기지방노동위에서 패했다. 피해 당사자 일부가 폭행당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 등 감사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지만, 경기지방노동위 심판위원회는 2017년 5월 “당초 사실확인서를 작성한 ㄱ씨와 ㄴ씨는 이 사건 감사 당시 강압, 협박 및 유도심문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당초 진술을 번복하는 내용의 확인서 등을 제출하고 있다. 그런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사용자가 제출한 각 사실확인서 등이 강요 내지 협박으로 인하여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적시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이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ㄱ씨는 이에 대해 “중앙노동위와 지방노동위가 이상했다. 최초 신고자와 최대 피해자가 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는데도 회사 쪽은 ‘때린 것은 맞지 않냐’라는 질문만 계속 해댔다. 그걸 노동위가 인정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퇴직 요구 따르지 않자 무단 캡처 시도징계를 받게 된 데엔 이씨 자신의 잘못도 있다. 그는 회사의 강도 높은 감사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폭행 등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일이 많았고 과장된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감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실확인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감사 중에 받은 스트레스로 이씨는 공황장애에 걸렸다. 그가 최초 진료를 받았던 의료기관이 2017년 10월 발급한 진단서에는 “공황발작, 극도의 불안감, 예기 불안,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 대한 회피 욕구 등의 증상으로 2016월 11월5일 본원 초진 이래 2017년 4월22일까지 상기 진단하에 본원의 외래치료를 받았음. 2017년 10월21일 현재 불안, 답답함, 흉부압박감, 호흡이 불편한 느낌, 불면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음”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씨는 감사 이후 인사팀장으로부터 퇴직해달라는 회사의 요구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따르지 않았다. 정직 2개월을 마친 뒤 돌아온 이씨는 업무평가에서 매번 하위 등급을 받았다. 또 같은 회사를 다니던 이씨의 아내에게 상사가 이씨와 회사의 소송 상황 등을 캐묻는 등 압박이 이어졌다. 결국 이씨 아내는 2017년 10월 회사를 그만뒀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회사 쪽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컴퓨터 화면 캡처 시도를 경험해야 했다.
이씨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 된 감사가 왜 이뤄졌는지에 대한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이씨는 “감사가 대규모로 이뤄지기 전인 2016년 여름께부터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감사를 받기 몇 개월 전 그룹 쪽에서 내게도 회사의 경영 상태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삼성SDI의 경우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 이후 대규모 감사를 수단으로 인력을 줄이려 했다는 의혹(제1183호 표지이야기 ‘직원 퇴출 감사 대작전’)을 산 바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이 회사가 인력 축소를 위한 감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이씨와 함께 감사를 받은 이는 40~50명 수준이고, 이후 회사를 그만둔 직원이 20여 명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측도 있다. ㄴ씨는 “감사를 시작했는데 큰 비위가 안 나오다보니 관련 부서 쪽에서 파트장 등 보직을 맡은 적이 있던 이씨를 징계해 ‘이 정도 성과를 냈다’고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삼성웰스토리 쪽은 이씨에 대한 감사는 정상적인 것이었으며, 폭행이라는 중대 비위를 저지른 직원을 중징계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에 “이씨 사건은 부하 직원의 자발적인 제보로 시작된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이씨가 술을 마시면 부하 직원을 때리는 일이 있다’는 다수 직원들의 일치된 진술이 있었다. 감사 과정에서 이씨 본인 역시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 ㄱ씨와 ㄴ씨가 노동위원회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과 관련해서는 “ㄱ씨는 이 사건 비위 사실의 최초 제보자고 ㄴ씨도 조사 과정에서 폭행 경위를 구체적으로 진술했기 때문에 번복 전의 최초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서도 이씨의 구제 신청과 재심 신청을 기각해 징계가 정당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인사팀장의 사직 종용과 관련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사직을 종용한 사실은 없으며, 사직을 종용할 이유도 없다”면서 “단지 이씨의 채용을 담당했고 군대 선배이기도 했던 당시 인사팀장이 면담 과정에서 ‘부하 폭행’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징계 처분을 받을 경우, 회사 내에서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 등을 우려해 한 개인적인 제언이었다”고 밝혔다.
이씨의 부하 직원 폭행이 사실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회사를 나온 2명은 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회사를 다니는 3명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불이익으로 의심되는 일에 대한 평가 역시 이씨와 회사 쪽의 입장은 크게 갈린다.
고통의 수렁 언제 벗어날까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감사 이후 “정말 열심히 일하며 회사 실적을 올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ㄴ씨)는 동료들의 평가를 받았던 이씨가 고통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올해 1월부터 병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제, 응급약, 수면유도제, 수면제 등의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씨는 현재의 건강 상태에 대해 “어지럼증이 심하고 왼쪽 반신에 마비 증세가 있어 거동이 불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회사와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릴 생각이다. 법정에서는 진실이 가려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씨는 언제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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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