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인권조례 폐지 과정을 지켜본 인권보호관, 인권위원들은 기독교와 자유한국당이 ‘혐오 프레임’으로 동성애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복주(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우삼열(충남도 인권위원), 이윤상(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서창호(대구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충청남도는 성소수자와 외국인 등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진보 진영과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려는 극우세력이 맞선 인권운동의 최전선으로 급부상해 있다. 이 전투의 1막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극우세력이었다. 자유한국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충남도의회는 2월2일 충남도인권조례(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조례를 폐지한 근거는 단순했다. 충남도인권조례가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옹호하고,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테러집단까지 인권의 보호를 받게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인권조례는 이런 헌법 정신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2012년부터 각 시도가 만들었다. 현재 인천을 제외한 1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조례를 유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우리 삶이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전보다 나은 정치집단이 권력을 잡아도 어떤 인권 문제들은 쉽게 개선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 더 나빠지기도 한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충남도인권조례 폐지 재의를 요청하기 사흘 전인 2월25일, 이번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서울·충남·대구의 인권활동가들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날 대담자들은 “역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권을 더 적극적으로 얘기해 합리적인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출마의 결정적 변수2월2일 충남도의회에서 충남도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됐다. 왜 이런 극단적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인가.우삼열(충남도 인권위원회 위원·목사) 출발은 지난해 5월 대통령선거였다. 지난 대선에서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던 안희정 도지사가 한 팟캐스트에 나가 “성소수자 인권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것에 충남 지역 개신교 단체들이 모인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반발했다. 도지사를 항의 방문하고 사과를 요구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후 이들은 충남도인권조례에 성소수자 보호 규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충남 지역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인권조례 폐지 청구 명부가 대대적으로 돌았다. 최종적으로 8만 명 넘는 사람이 서명한 충남도인권조례 폐지안이 도의회에 청구됐다. 지역사회의 요구와 별 관계 없는, 교회 내부의 작업이었다.
극우 기독교 세력의 힘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줬다는 말인가.우삼열 충남 전역의 교회에 “가정 파괴의 주범, 에이즈의 주범, 충남도인권조례 폐지하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교인들이 중심이 돼 주요 충남 지역을 돌며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교회마다 특강 형태로 동성애 반대론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했다. 몇몇 대형 교회는 ‘초·중·고에 동성애 교육이 의무화된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다’ 등 거짓 선전을 펼치며 대대적인 대중 사업을 벌였다. 서울의 대형 교회와 연합해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시·도의원들을 압도하는 방식을 썼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 이들인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물량 공세가 이어지자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잠재적 대권 주자인 도지사의 위상, 야당 비율이 높은 도의회 의석 구도 등으로 충남이 목표 대상이 된 것 같다.
서창호(대구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극우 기독교 세력의 움직임에 보수 정당이 적극 호응했다. 자유한국당 충남도당이 당론으로 인권조례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당이 폐지안에 대한 태도와 6·13 지방선거 공천을 연계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 우리가 만난 도의원들은 인권조례 문제를 지방선거 공천을 위한 결정적 변수로 보고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종교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조례가 흔들리고, 그 조례를 흔드는 쪽이 세력을 키우게 됐다.
전국적 인권 행정 역풍 맞을 우려2012년 서울시 인권헌장을 만들 때, 서울에선 이미 치렀던 홍역이 아닌가.이윤상(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2012년 서울시 인권헌장을 시민 참여형 모델로 만들고 선포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공격해 큰 홍역을 치렀다. 그때도 혐오자 공격으로 결국 선포하지 못했다. 충남도인권조례는 도의회 의결로 폐지가 됐으니 그 파급효과가 걱정이다. 서울시 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뒤, 시민인권보호관과 인권 옴부즈맨 제도 등이 도입됐고, 이런 제도들이 지난 5년간 다른 지자체들로 확산되고 있었다. 물론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제도가 한 번 더 발돋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제 막 활성화하려는 인권 행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배복주(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충남도인권조례 폐지는 전국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권은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려는 노력과 연결돼 있다. 조례가 폐지되면 행정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삭제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했던 국가인권위도 고민이 크다. 결국 이 문제가 (오로지 인권이 아닌) 정쟁의 대상이 되면, 인권조례를 폐지해선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의 주장도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권조례가 지역주민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고, 나와 인권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체감하는 쪽으로 성과를 냈다면 충남과 같은 무지한 방식의 서명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삼열 인권조례의 뿌리가 약했던 것과 별개로 충남도인권조례 폐지에 영향을 끼친 것은 극우 개신교가 내세운 가치와 보수 이데올로기였다. 두 요소가 결합해 극우정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2010년 차별금지법 제정 때 반대 세력은 극우 개신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였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결합해 구체적 이슈에 대해 정치활동을 벌인 지 벌써 10년이 돼간다. 극우 개신교는 2016년 국회의원선거 때 기독자유당을 만들었다. 이들은 2.6%의 지지율을 얻어 비례의원 1석을 획득하기 직전까지 갔다. 이들이 국회에 진출해 하겠다는 일은 성소수자 혐오와 간통죄 부활로 요약된다. 극우 개신교는 2012년 총선 때는 별도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했지만, 현재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결합돼 있다.
서창호 이 상황을 예민하게 봐야 하는 이유는, 인권조례 폐지 흐름이 충남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부산 해운대구, 충남 아산시 등에서도 인권조례를 폐지하려 한다. 이 흐름이 전국화하는 것은 인권의 가치가 국민 기본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냐 진보냐’라는 정치 문제로 바뀌게 됨을 뜻한다. 인권조례를 정치 문제로 받아들이면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영남에선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인권조례뿐 아니라 인권이 들어가는 모든 조례나 정책이 정치적 공방 속에 부결될 우려가 크다. 대구는 벌써 그렇게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2016년 겨울 ‘촛불집회’ 국면에서 등장한 태극기집회로 보수 정당과 대형 교회가 결합했다. 당시 이들이 내세운 첫 번째 슬로건은 ‘종북’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들이 인권 문제인 ‘동성애 반대’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라고 보나.우삼열 한국 교회는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가 대중을 통제하는 장치로 양육된 측면이 크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이뤄진 교회의 폭발적 성장은 이 개념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태극기집회엔 성조기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기까지 나왔다. 외신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광경이었다. 한국 개신교가 극단적인 보수화를 넘어 유대교에 수렴되는 양상마저 보인다(구약성서에 동성애자들을 죽이라는 율법 구절이 있다).
서창호 현재 기독교 단체와 자유한국당은 ‘혐오’ 프레임으로 동성애 문제를 정치공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 눈높이에서 봤을 때 이는 비상식적이고 올바르지 못하고 퇴행적인 행태다. 그래서 이들을 공략하기보다는 고립시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성소수자에게 ‘미투의 질문’ 던져야 그러나 혐오세력들은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고착화하는 느낌이다. 인권운동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이란 표현을 쓸 때, 혐오론자들은 ‘동성애 합법화’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선 더 자극적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유리해진다.서창호 현재 상황은 하나의 과정이다. 최근 여성 성폭력과 관련한 ‘미투 운동’(#MeToo)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젠더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유독 성소수자에 대해서만 혐오가 만연하고, 비판하고, 폭력을 휘두를까. 이 불균형적 태도에 인권운동이 차별에 대한 미투 운동으로 확산해나가도록 성소수자, 외국인, 이주민의 미투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배복주 인권 가치가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오면 ‘내 몫을 빼앗기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어진) 지난 8년 동안 인권 가치가 너무 무시돼왔다. 그래서 미투 운동이 시작됐지만 낙태죄 폐지 같은 문제는 이 정권에서도 역시 힘들겠다 싶을 때가 있다. 저항세력들은 낙태죄가 폐지되면 저출산이 심해지고, 저속한 성윤리가 판칠 것이라는 단순 논리로 계속 공격해온다. 동성애 합법화도 마찬가지다. 결국 프레임이다. 인권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슬로건으로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우삼열 차별이 그 자체로 폭력이란 가치가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노동계에 고착화된 차별(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법이나 조례는 최종적 단계의 문제고,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차별은 폭력’이란 의식이 확산되는 게 중요하다.
이윤상 인권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가 ‘백러시’(역풍)가 오면 어쩌나 위축되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얘기하면 더 많은 합리적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정확한 데이터를 알려주면 문제를 이해하게 된다. 성소수자 문제를 좀더 자신 있게 공론화해야 한다.
진행·정리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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