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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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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콘 비즈니스, 수사를 촉구한다

공공재인 기부금을 사사롭게 세탁할 수 있는 구조
등록 2018-02-13 15:00 수정 2020-05-03 04:28

아르콘(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은 2011년 4월에 설립됐고 나는 이사로 참여했다. 내가 회사를 떠난 것은 2012년 2월이다. 아르콘과 관계사에서 근무했던 이들이나 협력관계를 맺었던 이들이 찾아와 ‘무언가 이상하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2013년부터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서울 성수동의 소셜벤처들 사이에서 아르콘을 미르재단에, 허인정 이사장을 최순실에 비유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지금에 이르렀다.

허 이사장의 '피해자 코스프레'

2012년 2월 마지막 근무일, 허 이사장과 단둘이 서울 남산의 하얏트호텔 옆 작은 카페에 마주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허 이사장이 구축한 사업모델이 보기에 따라 배임과 횡령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업구조에 혼란을 느낀다고 말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는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아르콘 누리집에 보도(제1195호 특집1 ‘착한 사업, 나쁜 거래’)에 대한 반박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다. 그러나 반박문이 지적하는 팩트 오류는 지엽적이었고,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이 반박문의 논리와 허 이사장식의 사업이 계속 통용되는 것이 공익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았다.

보도에서 내가 발견한 핵심은, 사회적 선의로 조성된 기부금이 아르콘과 ‘범아르콘그룹’이라 할 법한 몇 개의 회사를 거쳐 허 이사장과 그 가족의 개인 재산으로 세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고 합리적 의심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허 이사장이 이 지적에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한 만큼, 이제부터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볼드모트는 자신의 영혼을 나누어 담는 ‘호크룩스’를 만들어 마법의 세계를 지배하고, 그 공포감으로 인해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로 군림한다.

허 이사장은 여러 법인을 호크룩스로 만들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에 정기 섹션을 납품하는 법인이 본체였다. 미디어를 만드는 법인의 대표가 홍보대행사(모두스)를 만드는 파격을 보이더니, 곧이어 또 하나의 법인(미디어더퍼스트)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르콘이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대기업의 사회공헌 기부금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엔 100억원 넘는 기부금을 굴리기 위해 유한회사 언더스탠드에비뉴라는 또 하나의 호크룩스를 만들었다.

비즈니스를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 여러 형태의 실험을 해보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호크룩스들의 난립이 집요하게 공익생태계 관리의 사각지대를 겨냥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외견상 지배구조가 건전한 법인으로 기부금 등을 받은 뒤, 허 이사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법인으로 보내고, 다시 이 돈을 컨설팅이나 임대료 등의 명목으로 개인 재산으로 전환하는 구조. 이것이 합법적인가, 윤리적인가? 이것이 공익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고 신뢰를 키우는 방식인가?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한심한 아르콘 이사들의 태도

국정농단 사태를 거친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되돌아본다. 사실 지난 6년간 기업사회공헌 실무자, 비영리 활동가, 사회적기업 담당자들은 아르콘과 허 이사장의 비즈니스에 대해 다양한 의문을 품으며 수군거렸다. 다만 허 이사장의 영향력이 두려워 공론화를 못했을 뿐이다. 실무자에겐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였다. 이들을 두려움으로 이끈 또 하나의 요인은, 허 이사장과의 친분에 도취된 비영리 분야 리더들의 태도였다. 특히 아르콘 이사들은 보도 이후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 서울 성동구의 공무원들도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고 행동하자. 관계 당국은 아르콘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고대권 전 아르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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