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의 이재명 시장은 1개 선거구에서 2명씩 뽑는 2인선거구는 ‘살당공락’의 선거라고 표현했다. 살인자도 거대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고, 공자도 공천 못 받으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것이 풀뿌리 생활정치의 공간이 되어야 할 대한민국 기초의회의 현실이다.
당선자 419명 중 415명이 새누리·새정치문제의 원인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지방선거 때까지는 기초의회 선거에서 정당공천이 배제됐다. 그러다 2006년부터 정당공천제가 도입됐다. 이것에 ‘기초의회까지 거대 정당이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자, 국회는 기초의회 선거에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1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도록 한 것이다. 그 취지는 ‘소수정당이나 정치 신인도 의회에 진입할 기회를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문제가 일어났다. 기초의회 선거구는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추천 인사 등이 참여하는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안을 만들고 시·도의회가 최종 확정을 하도록 돼 있었다. 이에 따라 2006년 시·도별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1개 선거구에서 4명씩 뽑는 4인선거구를 161개 만들었다. 하지만 시·도의회가 대부분의 4인선거구를 쪼개 2인선거구 2개로 바꿔버렸다. 시민단체들이 반대할 것 같으니까 버스 안에서 날치기를 하고 심야에 날치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살아남은 4인선거구는 전국 39개에 불과하다.
이는 다양한 세력의 진입을 보장하겠다는 중선거구제의 도입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었다. 중선거구제에서는 1개 지역구에서 2명을 뽑느냐, 3명을 뽑느냐, 4명을 뽑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현실적으로 소수정당이나 정치 신인이 2명 안에 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투표용지에 찍히는 앞번호를 거대 정당들이 받는 상황에서, 뒷번호를 받는 후보가 2등 안에 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실제 선거 결과도 그러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도봉구 의원 후보로 나온 33살 청년 후보 이창림씨는 무소속이었지만 무려 25.5%를 득표했다. 그러나 2인선거구였기에 3등으로 낙선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 관악구 의원 후보로 나온 이기중 후보(정의당)가 27.95%라는 높은 득표를 했지만, 아깝게 3등을 하는 바람에 낙선했다. 이기중 후보 역시 30대의 청년 후보였다.
의정 활동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현역 의원도 2인선거구에서는 밀려나기 일쑤였다. 대한민국의 지방선거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투표용지에서 뒷번호를 받는 소수정당 후보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현역 마포구 의원이던 오진아 후보(정의당)는 21.53%로 2인선거구에서 낙선했다. 현역 관악구 의원이던 노동당의 나경채 후보도 17.05%로 2인선거구에서 낙선했다. 둘 다 모범적인 구의원으로 평가받던 이들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서울시 구의원 419명 중에서 415명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고 그 외의 당선자는 무소속 3명, 노동당 1명이었다.
무투표 당선자가 늘고 있다2인선거구로 기초의원 선거를 거듭하면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지역구 구의원을 뽑는 선거인데 무투표 당선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거라면 최소한 경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선거의 기본조차 사라진 것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지방선거 때 서울 은평구에선 16명의 지역구 구의원 가운데 무려 6명이 무투표 당선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왔다. 3개의 2인선거구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각각 1명씩만 공천했고, 나머지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출마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2인선거구에서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후보 출마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다. 거대 정당 공천이 아니면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은평구만이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구의원 무투표 당선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무투표 당선자가 없었고 2010년에도 2명에 불과했는데, 2014년에는 무려 26명의 구의원이 무투표 당선됐다.
무투표 당선이 서울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도 2014년 지방선거 때 4명의 기초의원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그러니 이재명 시장이 ‘살당공락’을 지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선거구제의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인위적으로 쪼갠 2인선거구를 통합해 4인선거구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나왔다. 그 의견을 반영해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성된 서울시 자치구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인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4인선거구를 38개 만드는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반발이 너무 거세다.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치 개혁을 얘기하면서, 당장 닥친 지방선거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데 골몰하는 것이다. 이들이 4인선거구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인선거구면 최소 1석 이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4인선거구가 되면 경쟁 구도가 복잡해지고 ‘공천=당선’ 구도가 흔들린다.
서울의 구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는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연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적폐’라 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적폐 세력과 연대해서라도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4인선거구 반대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더구나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는 서울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추미애 대표는 광진구, 우원식 원내대표는 노원구, 박홍근 수석원내부대표는 중랑구다. 이른바 개혁적이라는 의원들도 서울에 지역구를 둔 경우가 많다. 이재명 시장은 ‘살당공락’을 외치는데, 서울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침묵의 의미는 사실상 개혁에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은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서를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의회들도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4인선거구를 38개 이상 늘리겠다던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원안은 이들의 반발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누가 개혁 세력이고 ‘정치 적폐’인지 가려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적폐 연대를 중단하고 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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