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경제·교통·교육·문화 인프라에서 대한민국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위에 있다. 허나, ‘1%만의 강남성’은 지금 강남에 사는 이들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 또한 강하게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자산을 강남에 집중적으로 몰아준 결과라는 것이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동안 진보건 보수건 어떤 정부도 강남 집값을 잡지 못했다. '시장의 실패'도 '정부의 실패'도 충분히 학습했다.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치렀다. 문재인호가 연일 공세적인 부동산정책의 보따리를 풀고 있다. 이 만난 전문가들은 눈앞의 집값 잡기에 조급하게 휘둘리지 말고 큰 그림을 일관되게 그려나갈 것을 주문한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강남만이 누리는 서비스에 상응하는 비용을 강남이 치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_편집자 </font>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 주상복합 타워팰리스를 끼고 양재천 다리를 건너가자, 낯선 강남의 풍경이 눈앞에 안겨온다. 1980년대에 지은 초라하고 낡은 저층 아파트인 개포주공아파트 단지다.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낡은 2층 상가 건물은 말 그대로 ‘부동산 천국’이었다. 상가 건물의 앞면과 옆면은 물론이고 발을 딛는 계단도, 복도 천장도 사람 눈길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부동산’ 간판이 줄지어 있다. 흡사 부동산 전용 미니 상가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7평 재건축 아파트가 18억4천만원</font></font>1월24일,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진 혹한의 날씨만큼이나 ‘부동산 상가’ 내부는 썰렁했다. 가게마다 블라인드로 창을 내려놓고 문을 닫아걸었다. “국토교통부에서 불시 단속을 한다고 발표했잖아요. 서울시에서는 단속반원 교육을 시작했대요. 열흘 전부터 이렇게 숨죽이고 있어요.” 복도에서 만난 중개인 ㅂ씨의 푸념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안에선 제법 활발한 상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블라인드만 내려놓았지, 다들 나와 일을 해요. 여기 개포동은 ‘세금 폭탄’(재건축 부담금)을 피해 간 곳이라 물량은 거의 없지만,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거든요.”
“이거 어쩌나요. 18억3천만원으로 더 올려달라 하네요.”
중개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기 반대쪽에서 “장난치는 거냐!”는 화난 음성이 들려왔다. 통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 전날 17평 아파트(재건축 뒤 38평 입주)를 18억원에 흥정했거든요. 1천만원 더 달라, 다시 2천만원 더 달라 해서 두 차례 그러기로 했는데, 매도자가 이젠 3천만원을 더 달라는 거예요. 하루 사이에 몇 차례씩 올려대니, 매수자가 열받아서 전화를 끊는 겁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른 중개업소에서 해당 물건의 거래가 성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8억4천만원에 팔았다는 것이다. 하루 만에 가격이 4천만원 뛴 셈이다. 부동산중개인 ㄱ씨는 “개포1단지는 지난해 재건축 관리처분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초과이익 부담금(재건축 부담금)을 맞지 않아도 되고, 입주권 전매제한도 피해 간 예외적인 곳이에요. 재건축 아파트를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보니, 극단적인 매도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어요.”
다음날, 개포동 ‘부동산 상가’를 다시 찾았다. 이날은 개포 4단지 15평 재건축 아파트의 거래가 이뤄졌다. 2021년 31평 입주 예정인 아파트였다. “오늘부터 10년 이상 보유, 5년 이상 거주자에 대해서는 조합원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리잖아요. 그 매물이 나온 거예요. 15억5천만원에 거래하기로 하고 오전에 매도자와 매수자가 만났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매도자가 5천만원을 더 요구하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재건축 물량이 모자라는데. 결국 16억원에 거래됐어요.”
‘재건축’발 강남 부동산 폭등세를 견인한 개포주공아파트 단지의 아파트 물건은 불과 서너 달 사이에 3억원쯤 뛰었다. 4단지의 13평(33평 재건축 아파트 입주)은 지난해 9월 말 12억2천만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15억6천만원을 웃돌고 있다. 전날 18억4천만원까지 치솟았던 1단지 17평은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15억원 중반대에 머물렀다. ㄱ씨는 “매수 희망자들한테 ‘현금 10억원은 준비하고 계시냐’고 묻는 게 입에 붙었다. 분양아파트(또는 분양권)를 매수할 경우 중도금 대출이 어렵기 때문에, 입주 시점에 전세를 내준다 해도 현금 10억원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직접 들어가 살겠다면 15억원 이상은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강남 불패 저무는 게 아닌가”</font></font>다시 양재천을 건너 강남구 대치동 한복판의 은마아파트를 찾았다. 국토부는 1월21일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4구’ 15개 재건축 단지의 조합원 1인당 평균 재건축 부담금이 4억3900만원이며, 최고액은 8억4천만원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강남 최대의 재건축 후보지인 은마아파트도 15개 단지에 포함된다. 은마아파트 주변 상가에 줄지어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들은 개포동보다 더 어둡고 단단하게 블라인드를 쳐놓았다. 문을 닫은 곳도 있지만, 대다수는 사무실 안에서 상담 전화를 받거나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재건축 부담금 부과의 충격으로 거래는 사실상 중단됐다. 일부 집주인들의 흔들리는 모습도 뚜렷이 느껴졌다.
ㅇ부동산의 중개인은 “두세 달 사이에 2억원 이상 값이 뛰었다. 그런데 평균 4억원대의 재건축 부담금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놀란 몇몇 집주인들이 매물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4월 이후 시작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을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당연히 호가도 떨어졌다. 지난주까지 34평 아파트가 18억원, 31평 아파트가 16억5천만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그보다 각각 4천만원, 3천만원씩 내려갔다. 강남 불패의 시대가 저무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든다. 더는 여기 아파트 값이 안 오를 것 같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서초구 구반포역 주변 반포주공아파트 단지는 강남에서도 가장 비싼 재건축 지역이다. 반포주공아파트 근처 중개업소를 찾았다. 여기도 예외 없이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며칠 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듯 문 앞에 우편물이 쌓인 곳도 있었다. ㄴ부동산의 전광판엔 ‘32평 아파트, 27억5천만원’이란 시세표가 붙어 있었다.
“그거요? 지난해 8월 가격이에요. 지금은 일부 매도자들이 34억원까지 부르고 있어요.”
“왜 그때그때 시세를 적지 않나요?”
“워낙 급하게 가격이 오르니까요. 시세 자체가 유동적이에요. 34억원 매도 가격을 그대로 걸어놓으면, 주민들이 금세 그 가격으로 다 올려버려요. 혼란이 초래되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고수익 투자처</font></font>ㄴ부동산의 중개인은 “지난주 재건축 부담금 폭탄이 떨어지면서 모두 혼란에 빠졌다. 거래할 수도 없을뿐더러, 매수자가 문의해도 거래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토부가 ‘8·2 대책’의 재건축 전매제한 지역에서 1월25일부터 거래할 수 있는 숨통을 열어주긴 했어요. 32평과 42평 재건축 아파트의 1가구 1주택자가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경우라면 조합원 지위양도(전매)가 가능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개인들이 5년 거주와 1가구 1주택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정부의 후속 조처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어요. 22평 아파트는 재건축 부담금 대상이라, 더욱 전망이 불투명하고요.”
부동산 전문가들과 중개인들은 지난해 8·2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중 전매제한 조처가 최근의 강남 아파트값 급등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2만 채 이상의 강남 재건축 거래가 묶이면서, 강한 매도자 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높게 부른 호가가 다시 더 높은 호가를 부르는 악순환을 일으켰다. “강남에 살아본 사람은 알아요. 사거리마다 지하철이 사통팔달 뚫려 있고, 교육 환경이 좋고, 삼성과 아산 같은 최고급 병원들이 있잖아요. 공원과 문화, IT 산업도 물론이고요. 수십 년 동안 나라의 모든 것을 강남에 다 쏟아부었어요.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시티 주변 집값이 왜 비싼가요.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제 와서 잡는다고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개포동 ㅎ중개인)
그는 “강남 사람들은 강남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혹여 귀촌하더라도 강남 집은 팔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요즘은 손주들을 강남에서 키우고 싶어 해요. 어릴 때부터 강남의 고급 문화에서 강남 친구들을 사귀면서 커가도록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30대 젊은 부부들이 재건축 아파트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중 다수는 강남의 부모들이 집을 사주거나 돈을 보태주는 거지요.”
강남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는 강남 외부의 수요도 꾸준하다. 경기 광명의 ㄱ씨는 지난해 9월 1억원, 2억원, 4억원대 아파트 3채를 모두 팔아 개포의 18평 재건축 아파트를 11억원에 샀다. 지금 시세는 14억원까지 올랐다. 경남 통영의 땅부자 ㄴ씨는 20년 갖고 있던 수만 평 농지를 팔아 지난해 말 34평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 14억5천만원이었다. 땅을 팔고 현금을 마련하는 데 한 달이 걸리는 사이, 1억원이 더 올랐다. 하지만 그 뒤 한 달 만에 아파트 값은 16억원으로 1억5천만원 더 뛰었다. 중개인 ㅎ씨는 “대규모 재건축은 강남에서 좋은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두 아파트는 입주할 때면 20억원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 돈의 흐름은 ‘기승전, 강남아파트’로 귀결된다. 사업이나 의사 해서 돈을 모은 이들도,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이들도, 강남 아파트를 사두려 한다. 장기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처라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점프 잘하는 사람이 돈 많이 번다” </font></font>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다니던 20대 후반의 ㅇ씨는 지난해 퇴사해 부동산 전문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내 주머니는 텅텅 비었는데 몇천만원은 돈도 아닌 것처럼 여기서는 느껴져요. 한번은 펜트하우스 찾는 손님한테 ‘1억원쯤 싸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렸다가 면박만 당했어요. ‘시시한 소리 하지 말고 물건이나 빨리 갖고 오라’는 거예요. 지금의 강남 아파트 시장은 이미 여왕개미와 여왕벌,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말았어요.”
그가 부동산 업계에 발을 담그며 느낀 것이 있다. “점프 잘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초반 개포주공1단지 분양가가 3천만원이라고 들었어요. 10년 전쯤 그 아파트를 팔고 대치동으로 옮겼다가 다시 반포주공이나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넘어가는, 그런 식으로 40억~50억원대 부자가 된 사람이 많아요. 이제는 그런 기회도 사라졌죠. 그나마 실낱같은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갭투자에 나서는 거예요.” 경제평론가 이원재씨는 칼럼에서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싸게 분양받아 비싸게 팔면서 재산을 만들었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 다니며 재산을 불렸다. 국가가 거품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꼴이었다”고 지적했다.
강남 집값 앙등은 강남 내부에서도 상대적 열패감을 키우고 있다.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주부 ㅈ씨는 “우리 남편이 의사다. 학교 공부 잘하고 평생 자기 병원 열심히 꾸렸다. 누가 봐도 고소득자다. 그런데 반포주공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그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30억원대 부자가 되더라. 우리 같은 전문직도 투기하지 않으면 그런 돈을 만질 수가 없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말했다. 반포구 잠원동에서 전세를 사는 주부 ㅇ씨도 “세 아이를 키우며 14년 동안 전셋집을 전전했다. 언젠가는 내 아파트를 사야지, 그런 꿈을 갖고 있었다. 이제 전셋값이 7억원인데, 아파트 시세가 15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남편이 잘나가는 대학교수지만, 강남에 집을 마련할 꿈은 아예 멀어졌다”고 허탈해했다. “이웃집 사람들 만나면 위화감을 많이 느껴요. 강남 아파트가 있고 없고가 사람을 좌우하게 된 거죠. 앞으로 전셋값이 많이 뛰면, 강남 바깥으로 이사 가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이들 학교를 포기할 수는 없거든요. 멀리 살면서 아이를 강남으로 통학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미래를 생각하면 더 화가 납니다. 좋은 학교 나와서, 높은 소득 올려도 영원히 강남 집을 사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계약갱신청구권 법으로 보장해야</font></font>권대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남 집값이 서민을 넘어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있다.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가 또는 다주택 보유자한테 보유세와 초과이익 부담금 등의 비용을 물리는 그 이상의 과감한 정책을 요구한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주거비용을 잡는 것입니다. 임차인들이 한 집에 들어가면 평생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우리도 이미 2년에 5% 이상 전월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으니,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계약갱신청구권)만 법으로 보장하면 됩니다. 독일 등 유럽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서,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고 있어요. 미국 뉴욕시에서도 전월세 상한제를 엄격하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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